[불법계엄 1년] '빛의 혁명'으로 되살아난 5월 공동체
선결제 등 새로운 형태 공동체 확산
응원봉·K-팝으로 채워진 시민 행진

12·3 불법계엄 사태로부터 1년이 지났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선포 소식이 급하게 전해지던 순간, 광주는 필연적으로 1980년 5월을 떠올렸다. 국가 기능이 멈추고 도로가 끊긴 상황에서도 주먹밥과 헌혈로 서로를 지탱했던 연대의 방식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난겨울,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 절대공동체의 기억, 45년 뒤 다시 서다
1980년 5월 광주는 계엄군 투입으로 교통과 통신이 마비됐다. 병원에는 부상자가 쏟아졌고 혈액은 부족했다. 헌혈 줄이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식량 공급이 끊긴 도심에서는 주민들이 임시 취사장을 꾸려 집에서 가져온 쌀을 모아 밤새 주먹밥을 지었다. 봉투에 담긴 주먹밥은 오토바이와 트럭에 실려 병원·도청으로 전달됐고, 양동시장과 대인시장 상인들은 빵·우유·약품을 무료로 내놓았다. 약탈은 단 한 건도 없었고, 시민들은 거리 청소와 질서 유지까지 스스로 맡았다. 학계가 '절대공동체'라고 부르는 장면들은 도시가 사실상 고립된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서로를 통해 일상을 지켜낸 기록이 됐다.
12·3 불법계엄 이후 광주에서도 이러한 공동체적 움직임은 즉각 되살아났다. 계엄 선포 직후 탄핵 정국과 시위가 이어지던 지난겨울, 5·18민주광장 인근 카페와 음식점에는 '시민들과 나누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선결제 스티커가 연이어 붙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시민들이 커피 수십 잔과 음료·빵값을 미리 결제했고, 일부 점포는 "필요한 분께 자유롭게 드려 달라"는 메모를 남겼다. 상인들은 "큰일 앞에서 서로 돕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말했다. 선결제는 1980년 광주의 주먹밥이 오늘의 방식으로 변주된 모습이었다.
집회 현장에서도 연대는 이어졌다. 아이돌 콘서트용 응원봉과 핫팩·담요 같은 방한용품을 시민들끼리 나눠쓰자는 글이 지역 커뮤니티에 속속 올라왔고, 대학생들은 직접 만든 피켓과 손팻말을 낯선 참가자들에게 건넸다. 시위가 끝난 뒤 주변 정리를 책임지는 청년·고등학생들의 모습도 흔했다. 45년 전 도시를 떠받쳤던 '함께 버티는 방식'이 세대와 시대를 넘겨 다시 작동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날 5·18민주광장에 있었다는 최민아(24)씨는 "정말 추웠다. 주변에서 핫팩과 따뜻한 음료를 계속 나눠줬다"며 "이름도 모르는 사람끼리 '조금만 더 버티자'고 격려하는 모습에서 80년 오월의 연대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 총칼의 자리 위에 선 빛…새로운 시민 연대의 장면
지난겨울 5·18민주광장, 옛 전남도청, 전일빌딩245 등 금남로 일대에는 응원봉의 불빛이 강물처럼 이어졌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군홧발과 총성이 이어지며 시민들이 거리에서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였다. 장갑차가 밀고 들어오던 금남로는 오랫동안 폭력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지만, 지난해 겨울 그 공간은 전혀 다른 풍경으로 덮였다.
매주 열린 집회에서는 뉴진스의 'ETA', 에스파의 '위플래시', 아이브의 'LOVE DIVE', NCT DREAM의 'Candy', 로제의 '아파트' 등 K-팝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참가자들은 노래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며 행진에 합류했다. 어떤 이는 응원봉에 '탄핵', '민주주의 지켜' 같은 문구를 붙였고, 어떤 이는 휴대전화 플래시를 들어 올렸다. 촛불이 광장을 메웠던 2016년과 달리, 이번 겨울 광장을 채운 것은 10대부터 60대까지 세대가 함께 만든 '빛'이었다.
광장 한쪽에서는 고등학생이 아이돌 응원봉을 흔들었고, 바로 옆에서는 5·18 단체에 소속된 중장년층 시민이 같은 박자로 손을 흔들었다. 부모 손을 잡은 초등학생들은 음악에 맞춰 뛰었고, 대학생들은 SNS에서 모여 만든 '응원봉 연대' 부스를 열어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응원봉을 나눠줬다.
시위에 참여했던 이지우(22)씨는 "콘서트용 응원봉을 광장에서 흔드는 게 처음엔 우스워 보일까 걱정됐는데, 막상 모여 보니 그 불빛이 서로를 찾아주는 표식처럼 느껴졌다. 엄숙함 대신 서로를 확인하는 방식이었고, 걷는 동안 과거의 기록이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며 "옆에 있던 아저씨들이 뉴진스, 아이브를 아시겠나. 그럼에도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세대가 섞여 있는 게 눈으로 보였다. 광주가 왜 광주인지, 몸으로 알게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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