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만에 18km 완주 "인생 환갑부터 아잉교" [금정산 4대성문 종주]

올해 환갑이다. "인생은 60부터!"라며 스스로 다독였지만, 막상 그 문턱에 서니 마음이 복잡했다.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가 올 여름부터 '공감과 소통'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비워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부산광역시산악연맹에서 주최하는 제19회 부산산악문화축제가 눈에 띄었다. 축제의 일환으로 '금정산 4대성문 종주 전국등산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그래 복잡한 마음 해결과, 새로운 출발은 역시 산이지'라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참가를 결심했다. 코스는 금정산 순라길 7km, 2대성문 순라길 12km, 4대성문 순라길 18km로 나뉘었다. 우리는 주저 없이 18km 4대성문 종주를 지원했다.

지난해 가을, 영남알프스 천고지 여성부문 대회에 참가했던 아내는 "좋지~!"라며 흔쾌히 수락했다. 아내에게 감사했지만, 정작 내가 걱정이었다. 최근 계속 바빠서 산행을 쉬었는데, 제한 시간인 6시간 안에 골인지점에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출전 전날 밤, 즐겨보는 TV드라마 시청도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와 달리 새벽 3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역시 긴장감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큰아들의 배려로 편하게 새벽길을 나서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무심코 보니 여명이 밝아오는 고운 동쪽 하늘이 눈에 들었다.

대회장에 도착해 아침 7시에 접수 확인, 나는 4249번, 아내는 4248번을 배부 받았다. 아내가 챙겨온 삶은 달걀과 따뜻한 차를 마시며 머릿속으로 오늘 코스를 그려보았다. "동문-북문-고당봉-서문-파리봉~1망루~남문-대륙봉, 좋아! 작전 완료!"라고 아내에게 힘주어 말했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날씨도 맑고, 제한 시간도 6시간에서 30분이 연장되어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주문을 외우듯 '그래 나 자신을 믿고 신나게 즐겨보자. 파이팅'하고 되뇌었다. 출발선에선 달리기 선수들처럼 준비 자세를 취했다.
향 냄새 짙으면 정상 코앞이다
부부의 정情이 출발선까지 이어져서 내심 기분 좋았으나,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아내는 가속 페달을 밟듯 혼자 달려 나갔다. 출발 신호와 함께 10명씩 차례로 출발하는 방식이었다. '어라? 대회 출전하니 부부도 소용없네'라며, 속으로 피식 웃으며 나만의 산행 페이스로 걷기 시작했다.
오르막이 이어지고 바위길이 많아 숨이 찼다. 하지만 능선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였다. 펼쳐진 능선 곳곳에 나비바위, 부채바위 같은 멋있는 바위와 능선이 어우러졌다. 아름다운 절경이 드러나는 금정산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주말을 맞아 등산 온 외국인들과 젊은 연인들이 아름다운 추억을 담은 인생 한 컷을 남기려고 분주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들 틈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겠지만, 오늘만큼은 곁눈질 할 틈 없이 완주를 목표로 걸었다.

금정산성 북문을 지나 세심정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고당봉을 향하는 오르막길에 눈에 익숙한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보~!"하고 부르니 "수고했어요"하는 답이 돌아왔다. 속으로 '흥!! 멀리 못 갔네'라는 혼잣말과 함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금 페이스면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을 오르는 데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당봉 부근에는 고모당이라는 할미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데, 누군가의 깊은 염원을 담아 피운 향내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정상이 가까워짐을 알리는 나만의 반가운 테라피였다.
고당봉 정상까지 6km 거리를 1시간 30분 만에 왔다. 고당봉 정상 전망대에서 아내와 간식을 먹으며 경치를 즐긴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웠다는 소박하지만 늠름한 금정산성 북문과 굽이쳐 뻗어나간 능선, 도시가 어우러진 장관이다. 선조들이 지키려 했던 건 단지 땅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었다는 묘한 경건함이 밀려왔다. 땀과 바람이 섞인 달콤한 공기에 마음을 다잡고 여정을 이어갔다.

미륵봉, 장골봉, 석문으로 향하는 길은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이어진 내리막길이다. 또 다시 아내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마라톤 동호회원들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내 호흡에 맞춰 걸었다.
장골봉에서 도원사 방향으로 진행하다 만난 성곽을 따라 걷는다. 돌담 사이로 스며든 세월의 흔적이 진득하다. 이 길을 오르내린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숨결이 지금도 바람에 남아 있는 듯한 정취에 취해 잠시 길을 잃기도 했지만, 서문에 이르러 잠깐 하늘을 바라보며 허리를 펴니 피로가 조금은 가셨다.
내리막의 유혹, 파리봉의 고통
서문을 지나 파리봉으로 향하는 구간은 가장 힘든 코스였다. 거대한 바위들이 위상을 떨치며 지켜보고 있는 파리봉. "헉~ 헉~ 헉~!" 소리를 내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지나치는 등산객들이 "힘내세요! 파이팅!"하고 응원해 주었지만, 공허하게도 힘은 점점 빠지고 있어서 아쉬웠다. 천천히 오르면서 에너지를 끌어 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때, 쉬고 있던 등산객이 포도 몇 알을 건넸다. 감사의 말과 함께 입속으로 들어간 한 알의 단맛이 이렇게 감동적일 줄이야. '마법의 생명수'였다. 파리봉데크 쉼터에서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니 알록달록 올망졸망 모여 있는 공해마을과 종주대회 행사장이 귀여운 미니어처마냥 작게 보였다.
"이제 1망루만 넘으면 된다!"
스스로에게 외치며 힘을 불어넣으려 했지만, 파리봉에서 1망루까지의 길이 심적으로 멀게 느껴졌다. 금정산 4망루 중 유일하게 태풍으로 붕괴된 채 아직 복구되지 않은 1망루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1시였다. 제한 시간인 '컷 오프CUT OFF'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 갈수록 마음은 초조해지고, 마음과 달리 속도는 그대로였다.
헬기장을 지나 남문, 2망루, 그리고 마지막 체크포인트인 대륙봉에 도착했다. 쉬고 있는 등산객으로부터 건네받은 사과 두 쪽과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을 나누어 먹었다. 그래서일까. 몸이 가벼워진 듯 힘이 났다. 아내는 평소 주변에 나눔을 많이 한 덕분인지 과일 복이 터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결승점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됐다! 이젠 완주다!"
5시간 58분의 기록이었다.
완주증을 받고 부산산악연맹 최재우 회장님과 인증샷을 찍었다. 어느새 피로가 감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더욱 반가운 소식은 내가 속한 부산시민 등산아카데미 동창회팀이 18km 완주 최다팀으로 1등을 차지해 산악연맹 회장님과 동문들의 환호성이 가을하늘에 울려 퍼졌다.
"우리는 해냈다!" 그 순간은 모두 기쁨의 한 목소리였다.

국립공원 된 금정산, 부산의 자부심
이번 대회 참여가 더욱 뜻깊었던 이유는 대회 이틀 전인 10월 31일 금정산이 우리나라 스물네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범어사를 품은 금정산은 도심 속 쉼터이자 부산의 상징으로 이제 국립공원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과 시민이 함께 숨 쉬는 공간으로 더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산을 오른다. 같은 취미로 함께 공감하고 대화 나누며 땀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이다. 주변에서 부럽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그보다 더 고마운 것은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아내의 존재다.
저녁, 맥주 한잔 기울이며 피로를 풀고 아내와 오늘의 에피소드를 나눴다. 쉽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그 속에는 도전의 기쁨과 동행의 감사, 그리고 삶의 여유가 있었다. 오늘 금정산의 바람이 속삭인다.
"잘 걸었네, 함께라서 더 좋았네."
나는 확신했다. 인생 2막, 이 길 위에서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Mini box
제19회 부산산악문화축제
금정산 4대성문 종주 전국등산대회
대회 일시 : 2025년 11월 2일(일)
4대성문 종주(18km) 부분
운행구간: 대회본부·대회장 출발→ 동문(1포인트)→ 고당봉(2포인트)→ 장골·봉석문(3포인트)→ 도원사(4포인트)→ 1망루(5포인트)→ 헬기장(6포인트)→ 2망루(7포인트)→ 대륙봉(8포인트)→ 대회장
GPS 측정거리 및 소요시간: 19.54km, 5시간 58분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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