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또 오면 어쩌나" 트라우마 남긴 그 날...되풀이되는 비극 막으려면

이강준 기자, 박상혁 기자, 김서현 기자, 안채원 기자, 오석진 기자 2025. 12. 3.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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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비상계엄 1년, 12.3이 남긴 것
[편집자주]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이 지났다. 국민의 힘으로 계엄은 저지됐다. 민주주의는 복원됐고, 경제는 회복 중이다.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한편 12.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도 다시 살펴본다.
경찰 뒤흔든 계엄 여파 계속된다…인사 '지연', 가담자 '색출' 돌입
조지호 경찰청장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사건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경찰의 비상계엄 여파는 끝나지 않았다. 조지호 경찰청장 탄핵 심판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서 직무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올해 하반기 인사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중간다리인 경찰서장급 총경 인사부터 막히면서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된다. 비상계엄 가담 경찰관 색출 작업이 본격 시작된 점 역시 조직 내 혼돈을 키운다.

◆ 3개월 넘게 미뤄진 하반기 인사, 총경·경정급 혼돈 속

2일 경찰에 따르면 매년 7~8월에 이뤄지던 총경 전보 인사는 이달에서야 진행될 예정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시행됐던 근무평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총경 인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인사 발표 시점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총경 계급은 흔히 '경찰의 꽃'이라 불린다. 시·도경찰청 과장, 일선 경찰서장 계급으로 실질적인 지휘관 역할을 맡기 시작하는 계급이면서 경정·경감 등과 함께 실무의 최전선에 있는 인력이다. 치안감·경무관 등 고위 지휘관에게도 직접 업무보고를 맡으면서 지휘부와 현장경찰을 잇는 경찰 조직의 가장 중요한 고리다. 총경들의 배치를 보면 그 해 경찰의 치안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올해는 하반기 총경 인사가 반년 가까이 늘어지는 중이다. 2021년 이후 가장 늦게 발표된 하반기 총경 전보 인사는 지난해 8월22일이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개월 넘게 지체된 상황이다.

비상계엄 여파로 치안정감 승진 인사가 늦어지면서 연달아 총경 인사도 지연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경찰청에서 인사 지연에 대한 명확히 설명을 내놓지 않아 조직 내 혼란이 가중된다. 전보 대상인 총경 중 일부는 "머리 비우며 근무시간을 채운다"고 말할 정도다.

비상계엄 당시 불법행위에 가담한 경찰관을 색출하기 위한 '헌법존중 정부혁신 TF(태스크포스)'의 조사 활동도 변수다. 경무관 승진까지는 이뤄졌기 때문에 총경 이하 직급이 주요 조사 대상이라는 시각이 많아서다. 모든 계급 중 총경 승진 인사가 가장 치열하다. 경정부터 계급정년이 적용돼 총경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그대로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을 맞아서다.

◆ 계속되는 경찰청장 '공백', 차장·국수본부장 모두 '정년 임박'

경찰청은 지난달 27일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 최규식홀에서 ‘경찰의 중립성 확보 및 민주적 통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은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학술세미나 시작 전 개회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경찰청.

경찰청장은 여전히 직무정지 상태로 차장의 직무대행 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계엄 핵심 가담자로 지목된 조지호 청장의 탄핵 심판 결론이 나오지 않아서다. 탄핵 소추된 조 청장은 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직을 내려놓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0일 조 청장 탄핵 심판 변론 절차를 마무리했다. 아직 선고일은 정하지 않았다.

통상 경찰청장 후보로 거론되는 경찰청 차장과 국가수사본부장의 정년은 얼마 남지 않았다. 1966년 12월생인 유재성 차장은 내년 하반기에 정년퇴직한다. 윤희근 경찰청장 사례처럼 차장에서 청장으로 진급하더라도 2년 임기를 채울 수 없다. 국가수사본부장인 박성주 치안정감은 정년까지 6개월 남았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2년 임기를 보장받지만, 나이 우선 원칙으로 절반인 1년만 채울 수 있는 상황이다.

국회는 경찰청장과 국수본부장 임기 보장을 위한 입법을 추진 중이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6일 경찰청장·해양경찰청장·국가수사본부장이 임기 중 정년에 도달하더라도 잔여 임기를 마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달 이상식 의원은 지난 7월 외부 인사를 경찰청장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경찰조직운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두 개정안 모두 행정안전위원회 소위 심사를 시작조차 못했다.

"식당서 TV 뉴스도 못 틀었다"…한남동에 남은 계엄 트라우마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 거리 모습. 행인들이 적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사진=김서현 기자.

"처음 보는 광경이라 지금 떠올려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죠."

11월말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관저 일대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거리엔 직장인 등 몇몇만 오갔다.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차량 소음이 선명히 들릴 만큼 주변은 조용했다. 차도 통제는 없었다. 길가엔 쓰레기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초에는 달랐다.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시끄러웠고 소음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 찬반 집회 참가자들이 몰려들며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한파주의보 등 추위는 사람들을 막지 못했다.

식당 주인 최모씨(48)는 그때의 혼돈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의 가게 앞은 집회 인파로 가득 찼고,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소음이 종일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18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했지만, 그런 상황은 처음이었다"라며 "일하는 가게가 역사적 현장의 한가운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라고 했다.

지난 1월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응원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월15일 두번째 체포 시도가 진행됐고 식당 근처는 아수라장이 됐다. 최씨는 "탄핵 반대 진영 집회 참가자들이 내려와 곳곳에 쓰레기를 버렸고, 노상 방뇨하는 사람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동네가 순식간에 지저분해졌지만 민감한 분위기 속에서 민원을 넣기조차 어려웠다"라고 했다.

최씨는 식당에서 정치 관련 TV 뉴스는 아예 틀지 않았고, 채널을 바꿔 달라는 요구가 들어오면 "갑자기 고장 났다"고 둘러대며 코드를 뽑기도 했다. 서로 다른 진영의 손님이 마주쳐 실랑이를 벌일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언제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여전히 스친다. 최씨는 "올해는 평생 잊지 못할 한 해로 남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 확성기 소음에 동네 전체가 울렸다…한남동 주민의 '그날'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거주지 일대 모습. 이곳 역시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올해 초 이곳은 집회 참가자들로 소란스러웠다. /사진=김서현 기자.

한남동 관저 인근 주거지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202경비대 직원과 보안 인력이 오갈 뿐이다. 주민 외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초만해도 주민들은 온종일 이어진 소음과 혼잡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밤늦게까지 계속된 집회로 일상도 크게 흔들렸다.

15년 넘게 거주한 전모씨(55)는 잇따른 집회로 출퇴근 등 이동에 큰 불편을 겪었다. 그는 "도로가 완전히 막혀 평소 10분이면 가는 길을 두 시간이나 걸려 이동한 적도 있었다"라고 했다.

전씨를 가장 많이 괴롭힌 건 집회 소음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주거지가 있는 고지대까지 올라와서 확성기를 들고 농성을 이어갔다. 그는 "좌우든 정치적 성향을 떠나 주민에게는 일상의 편안함이 제일 중요하지만, 하루 종일 소음이 이어졌고 욕설도 자주 들렸다"라며 "자녀가 있는 가정이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하고, 시위가 멎은 4월부터는 주민들도 그때의 일을 꺼내진 않는다. 말은 안 해도, 모두 기억하기 싫었던 아찔한 경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지금 제대로 안 하면 '계엄' 또 온다…"헌정질서 회복 첫걸음은 처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지난해 12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한 집기류가 쌓여 있다. /사진=(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계엄 전후 상황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계엄 처벌에 왜 이렇게 긴 시간을 들이고 있을까. 법조계는 "헌정질서 회복의 첫걸음이 처벌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명확한 진상규명부터 해야 한다는 얘기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오는 14일까지 수사를 진행한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의 수사 기한은 오는 28일까지다. 법원에는 각 특검이 기소한 사건들이 쌓여있다. 서울중앙지법은 내년 초부터 계엄 관련 사건들을 연이어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

계엄에 대한 처벌 과정이 지속되면서 일각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한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수사를 장기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초유의 사태였던 만큼 제대로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유승익 명지대 법학과 교수는 "내란은 헌정질서 파괴 범죄로 우리 법에서 이미 규정을 하고 있다"며 "그런데 내란으로 읽힐 수 있는 계엄 선포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우리 헌정 질서의 일부분이 파괴됐거나 최소한 허약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헌정질서를 회복하는 첫걸음은 진상규명과 처벌이 될 것"이라며 "진상규명을 해서 책임자를 처벌해야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 수 있고, 그에 따른 제도도 개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과거 12·12 사태 등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라며 "이번만큼은 헌정질서 파괴는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는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번 사태를 잘 극복하는 것은 우리 헌정사에 잊지 말아야 될 교훈을 새기는 작업"이라며 "다소 시끄럽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들이 참고 견뎌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희범 HB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난 것이고, 권력을 쥔 사람이 쿠데타 같은 일을 저지른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우리가 위기를 극복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참을성 있게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명백하게 비상 상황이 아닌데도 대통령의 한마디에 국무총리와 일부 장관들이 동조한 것은 정말 큰 문제"라며 "헌법 의식이나 준법 의식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차원에서라도 지금의 처벌 과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처벌에서만 끝나지 않고 제도적 보완까지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상계엄 사태를 돌아보면 국회의 통제권은 실효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행정부 내부에서의 통제 수단이 부재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이번 사태는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국회가 충돌했을 때 서로가 힘자랑만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것"이라며 "대통령 본인이 상황 판단을 잘못해 계엄을 선포하려 할 때 행정부 내부에서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지금은 없다. 국무회의라는 것은 막을 수 있는 장치로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지시 권한의 범위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지금 우리나라는 계엄만 선포하면 영장 없이 체포나 구금도 할 수 있고 언론 출판에 대한 검열도 할 수 있고 하는데, 독일 등 다른 국가들은 그렇게 돼 있지 않다. 계엄이 선포된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제한할 수 있는 기본권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김서현 기자 ssn3592@mt.co.kr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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