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기 전에 계엄을 끝내야 한다” [당신의 6시간 ⑤]

문준영 기자 2025. 12. 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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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각을 다투는 순간 국회를 믿어달라고 국민께 당부했다.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동이 트기 전 계엄을 해제해야 했다. 시종일관 의연해 보였던 겉모습과 달리, 새벽 1시1분 의사봉을 두드리기까지 우원식 국회의장의 속은 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2024년 12월3일, 국회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자리 지키기’가 있었다. 〈시사IN〉은 12·3 쿠데타 1주년을 맞아, 그날 국회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킨 11명의 증언을 통해 비상계엄 해제 과정을 되돌아본다. 그날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까스로 지켜졌는가. 다섯 번째 순서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이야기다.


①김성록 국회의장 경호대장

②조오섭 국회의장 비서실장

③이지환 국회의장실 정무조정비서관

④원은설 국회의장실 정무비서관

⑤우원식 국회의장

⑥박소정·이시현 국회의장실 정무비서관

⑦황충연 국회사무처 경호기획관

⑧박영선 국회의장실 공보기획비서관

⑨송동민 국회의장실 연설비서관

⑩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곧장 국회로 향했다. 12월4일 새벽 1시1분경,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시사IN 조남진

밤 10시 반 가까이 되었을 때, 일과를 마치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사무총장의 전화가 걸려 왔어요. “의장님, 비상계엄이랍니다.” 그 말을 듣고 텔레비전을 켰죠. 그런데 그게 사실인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을 당해왔는데 또 이 꼴이 됐나? 참담하고, 슬프고, 화도 나고 그랬습니다.

내가 (2024년) 6월5일 국회의장으로 취임했으니까 12월3일이 딱 6개월이에요. 6개월 동안 대통령은 국회를 완전히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어요. 국회의장으로 새로 취임했을 때 축하 전화도 없었고요. 대통령이 못 오신다고 해서 국회 개원식을 몇 차례나 미뤘어요. 지금까지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안 온 적은 없어요. 보통 개원식을 6월에 열고 가장 늦었던 게 7월16일인데, 개원식 날짜를 9월2일까지 미뤘는데도 대통령은 결국 안 왔어요. 시정연설도 안 왔고요.

“동이 트기 전에 끝내야 한다”

국회로 가야 하니 우선 우리 경호대장에게 (국회의장) 공관 앞에 누가 와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어요. 경호대장이 아무도 없다기에 코트를 입고 7분 만에 나왔죠. 10시37분 공관에서 출발했고 국회에 도착한 게 한 10시55분쯤 돼요. 한남동 공관에서 국회까지는 30분쯤 걸리는데 굉장히 빨리 온 거예요.

보통 의원회관 옆에 있는 국회 3문으로 들어가요. 저희가 국회 3문에 도착하는 순간 경찰 버스가 후진해서 문을 딱 막더라고요. 30초만 일찍 도착했어도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국회 경비대는 국회를 지키라고 있는 경찰인데 국회의원 출입을 막는 상황은 거꾸로 된 거잖아요. 화가 나서 내릴까 했는데 경호대장이 안 된다고 말렸어요. 나도 생각해 보니까 계엄군 피해서 왔는데 경찰하고 싸우다 잡혀가면 다 꽝이잖아요. 국회의장에 본회의 소집 권한이 있고, 계엄이 적절한지 심의해서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이 국회에 있는데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국회 3문에서 내리지 않고 조금 더 뒤로 가보기로 했어요. 조금 가다 보니 문양이 있는 문이 있더라고요. 쇠로 된 문양을 사다리 삼아 그 문 위로 넘어갔어요.

2024년 12월3일 밤 11시께, 국회로 향하던 우원식 국회의장은 경찰을 피해 담을 넘었다. 사진은 김성록 국회의장 경호대장이 찍었다. ⓒ국회의장실 제공

동이 트기 전에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계엄군이 국회를 막고 있는 모습을 출근하는 국민이 목격하고, 저항하고 싸우다 보면 유혈 사태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계엄 해제 절차 과정에서 흠이 생기면 계엄 해제가 무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절차를 잘 지켜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들어왔어요.

1980년에 저는 군에 있었어요. 그때는 계엄군으로 원주 KBS 방송국 보초를 섰죠. 밤에 심심한데 혼자서 뭐 하겠어요. 제가 평상시에 부르던 운동권 노래도 부르니까 어떤 기자들이 저를 운동권이라 생각했는지 광주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계엄군들의 그 작태, 총을 쏘고 몽둥이로 지나가는 사람 머리를 내려치는 장면. 그런 것들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잖아요. 그러니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가장 먼저 체포당할 텐데. 국회까지 가는 길에 체포 안 당할 수 있을까? 국회에서는 괜찮을까? 잡히면 어떻게 될까? 사실 굉장히 두려웠어요. 국회의장실로 들어와서 주머니에다 넣고 온 배지를 옷에 달려고 했는데 손이 너무 떨렸나 봐요. 배지를 못 달고 있으니, 옆에 있던 경호대장이 대신 달아준 게 기억나요.

“군경은 자기 자리에서 동요하지 말라

우리 비서실장, 사무총장, 수석들, 김영진 의원 등 여러 사람이 국회의장실에 모여 회의했어요. 첫번째 문제는 계엄 선포 통고가 안 왔다는 거였어요.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을 선포한 측에서 지체 없이 국회로 통고해야 해요. 그러면 통고한 것을 안건으로 삼아 국회가 심의하는 거죠. 그런데 통고가 안 왔어. 즉 안건이 없는 거예요. 안건이 없는데 본회의를 열 수 있느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떤 분은 “판례에 따르면 ‘지체 없이’를 ‘3일’로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본회의를 여는 게 절차 위반일 수도 있다. 기다려야 된다”라고 했어요. 또 다른 한쪽에서는 “무슨 소리냐. 지금 계엄군이 국회를 침탈하기 시작했고, 경찰이 문을 막았는데 즉각 개회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하더라고요. 논의 끝에 ‘지체 없이’라는 표현은 국회의장의 의사정리권으로 해석하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또 다른 문제는 계엄 해제를 법으로 할 건가, 아니면 결의안으로 할 건가예요. 국회에서 의결하는 건 법과 결의안 두 가지거든요. 전례가 없어서 고민하던 중에 우리 의사국장이 1964년 6·3 항쟁 때 정부가 비상계엄을 발동했는데, 7월24일날 여야가 합의해서 결의안을 통해 비상계엄을 해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의안으로 하기로 결정했어요.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됐죠.

2024년 12월3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에 도착한 후 자신의 유튜브 채널 ‘우원식TV’를 통해 첫 번째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국회를 믿고 차분하게 상황을 주시해달라”라고 말했다. ⓒ유튜브 ‘우원식TV’ 캡쳐

11시57분경 유튜브 ‘우원식TV’로 기자회견을 열었어요. “국민 여러분, 비상계엄이 발동됐는데, 국회가 헌법과 법률의 절차에 따라서 처리해 나가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국회의원들은 즉시 본회의장으로 모여 주십시오. 군경은 자기 자리에서 동요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그 기자회견으로 내가 이 방에 있는 게 송출됐잖아요. 계엄군은 날 잡으려면 본청 의장실로 가면 된다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본회의장으로 가기 좋은 위치의 농해수위(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문위원실로 들어가서 앉았어요. 참모들은 의장의 위치를 숨겨야 한다고 국회 전체의 불을 다 밝혔고요. 우리 경호대장은 문 앞에 있었죠.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총이 없었어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더니 계엄군이 쳐들어오면 몸으로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대요. 〈서울의 봄〉 영화에 나오는 김오랑 중령을 생각한 것 같아요. 너무 고맙죠.

당장이라도 의사봉을 두드리고 싶었지만

12시20분쯤이 되니까 국회의원이 본회의장에 많이 모였어요. 본회의장으로 내려가니까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장이 왔다며 박수 치고 좋아했어요. 국민의힘 의원도 18명 들어와 있었잖아요. 한동훈 대표도 있었고요. 김상욱 의원은 내 손을 꼭 잡고는 “민주주의를 지켜주십시오”라면서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국회의장석에 서서 “계엄한 쪽에서 통고해야 절차를 시작하는데 통고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절차를 시작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국회의원들이 빨리 하자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한 3~4분 지났나. 제가 “2시간이 다 되도록 국회에 통고하지 않은 것은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측의 귀책 사유이므로, 우리는 절차를 시작하겠다”라고 말했어요. 계엄법상의 ‘지체 없이’를 2시간으로 해석한 거예요.

사실 본회의를 국회의장 마음대로 소집할 수가 없어요. 소집은 할 수 있는데 시간은 교섭단체 간 협의를 해야 해요. 국회의원이 국회로 들어오는 시간을 줘야 하거든요. 그 시간 여유를 안 주면 국회의원이 ‘내 의결권을 국회의장이 박탈했다’라고 말할 수 있고, 헌법기관의 의결권 박탈도 절차 위반이 돼요.

보통 4시간 주는데, 그날은 비상이니까 1시간 준다고 했어요.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시간을 더 앞당기자고 했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12시28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거니 추 대표가 시간을 더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안 됩니다. 이런 비상 상황에 시간을 어떻게 줍니까?”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그렇게 처음에는 1시 반까지 모이기로 했죠.

그러다 12시33분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관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 우리 사무총장과 경호기획관이 국회 경비대에 난리를 쳐서 국회 문을 두 번 열었단 말이에요. 두 번 열리고 다시 닫힌 다음부터는 연락이 안 됐어요.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통해서 서울청장한테 다 연락했는데 거기도 연락이 안 돼. 더 이상 수단이 없는 거예요. 밖에서는 유리창도 깨지고 난투극도 벌어지던 상황이니 내 마음도 얼마나 급해요? 추경호 대표한테 전화해서 개회를 조금 일찍 하고 안건을 1시에 통과시키기로 했어요. 추 대표는 “국회 문이 막혀서 들어갈 수 없다, 시간을 더 달라”라고 말했는데, 제가 안 되면 담을 넘던지 하라고 하고선 전화를 끊었어요.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 전, 계엄군은 창문을 부수고 국회 본관 내부로 진입했다. ⓒ시사IN 박미소

1시까지 마냥 견디기만 한 건 아니에요. 바깥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했어요. 우리 참모와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도 그렇고, 사무총장, 비서실장, 또 수석들이 바깥 상황을 수시로 나한테 전달했죠. 계엄군이 본회의장 앞까지 진출했는데 총을 쏘든지 총에다 칼을 꽂아 위협을 하든지 하진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견딜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안건은 12시56분에 올라왔지만, 그 4분 기다리는 사이에 계엄군이 총을 쏘거나 문을 부수려고 시도하면 협의할 필요 없이 사정이 변경됐다는 걸 속기록에 남기고 안건을 상정하려고 마음은 먹고 있었죠. 바깥 사정이 그렇지는 않아서 1시까지 기다릴 수 있었어요.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은 민주당이 주도해서 발의했는데, 그걸 만들어서 의원 서명을 받고 하느라고 안건이 제출된 시간은 12시40분쯤 돼요. 안건이 (본회의장) 전광판에 올라온 건 12시56분. 내가 시계를 봤어요. 그리고 마지막 12시59분에서 1시로 넘어가는 순간, 제가 방망이를 들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했어요. 1시0분 1초에 안건을 상정하고, 1시1분 30초쯤 의결했을 거예요.

그 순간의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의사봉을 두드리는 순간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내가 할 도리를 다했구나”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끝이 아니였잖아요.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해야지 비상계엄이 끝나는 거거든요. ‘군사력을 동원해 자신의 반대 세력을 제압하려 했던 사람들이 이걸 받아들여서 비상계엄을 해제할까?’ 해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걱정이 많았죠.

‘산회’ 말고 ‘정회’한 이유

계엄 해제 통지를 만들어서 1시56분에 결제하고 1시58분 정부에 발송했어요. 2시16분에 국방부가 봤다는 걸 확인했어요. 4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국무회의 소집한다는 소식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로텐더홀로 나와서 기자회견을 열었어요. “계엄법에 국회가 해제 결의안을 의결하면 국무회의는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기로 돼 있는데 왜 안 하냐. 안 하면 계엄법 위반이다. 그리고 군경은 국회 바깥으로 나가라.” 이렇게 말했어요.

기자회견을 마무리하고 조금 있다가 국무회의를 소집한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그런데 그 기사를 내가 어떻게 믿어요? 우리 세월호 때 경험했잖아요. 세월호 참사 때 민주당에서 여객선 침몰 사고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했어요. 구조한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는데 현장에 가서 보니까 부모님들이 구조 작업이 하나도 안 된다고 하는 거야. 난 부모들이 하도 답답하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줄 알고 구조 작업 안 한다는 말을 안 믿었어요. 나중에 보니까 부모님 이야기가 다 맞았지. 그래서 오보를 믿고 행동했다가는 큰일 난다고 생각했어요.

참모와 의원들한테 한 군데라도 확인해 보라고 했는데 아무도 확인이 안 돼요. 그래서 내가 새벽 5시50분 조금 넘어서 한덕수 국무총리한테 직접 전화했어요. 총리가 전화를 받더라고. “어 어떻게 됐습니까?” 물었더니 총리가 죄송하다고 했어요. 그러기에 “죄송한 거 말고, 비상계엄 해제 의결했습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4시 반에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 본회의를 정회했어요.

왜 ‘산회’가 아니라 ‘정회’했냐면, 같은 날에 본회의를 두 번 소집할 수 없어요. 그때는 이미 12월4일 새벽 6시였기 때문에 만약 산회했다가 2차 계엄을 하면 국회를 소집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산회를 선포하지 않고 정회를 했어요. 언제든지 다시 소집할 수 있게.

국회의장실로 돌아와서 사람들이랑 2차 계엄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저 사람이 저렇게 하고 그냥 물러설 사람이 아니지 않겠냐. 비상계엄이 해제되면 내란 혐의로 조사받고 탄핵당하는 과정이 있을 텐데.” 사무총장이 CCTV를 보니까 주차장 쪽에 계엄군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차 비상계엄 위험성이 완전히 차단될 때까지 국회에 있어야겠다고 판단했어요. 만약 내가 잡히면 그다음에 비상계엄 해제를 못 하니까요. 여러 날을 국회의장실에 라꾸라꾸 침대를 펴놓고 잤죠.

“앞으로 계엄을 감히 시도할 사람은 없을 것”

윤석열 탄핵소추안 재표결이 국회에서 열린 2024년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윤석열 탄핵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사IN 조남진

돌아다니다가 잡히면 말짱 꽝이니까 그날 이후로 국회 바깥에 잘 안 나갔어요. 그러다 12월14일 두번째 탄핵 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날 여의도에 모인 국민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의원회관 옥상으로 올라갔어요.

옥상 난간이 굉장히 높아요. 난간에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서 국회 앞에 모인 국민을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요즘 젊은이들 경쟁이 너무 심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다던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런 상황이 되니까 젊은이들이 거리에 엄청 많이 나왔잖아요. 끝이 안 보일 만큼 많은 국민이 나왔다는 게 눈물 나도록 고맙고, ‘저런 국민이 있기 때문에 우리 민주주의가 지켜지는구나. 결국 탄핵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12월3일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있었던 날입니다. 그 시도를 막지 못했다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몇십 년 후퇴했을 수도 있는 그런 참담한 날이었죠. 한편으로는 국민이 국회를 지키고, 국회의원들이 빠른 속도로 담 넘어 본청으로 모여서 비상계엄을 국회에서 의사봉으로 해제시킨 위대한 민주주의의 날이기도 해요. 그 다음으로 유례없는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이 있었고, 정말 어려웠던 헌법재판관 임명 과정이 있었고, 헌법재판소 탄핵 의결이 있었고, 조기 대선이 있었고. 이 6개월간의 과정을 단결된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낸 거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계엄을 감히 시도할 사람은 없을 거고요.

난 내가 중립이 아니라는 비판에 절대 동의하지 않아요. 국회의장은 무소속입니다. 여의 편도 야의 편도 아니라 국민의 편이에요. 국회는 국민의 편이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국민의 편이란 국민의 기본적인 삶과 그걸 유지해 주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예요.

따라서 국회의장은 제일 앞에 서서 민주주의를 침탈하고 해치는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중립은 몰가치(沒價値)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치를 위해 어느 정파에 속하지 말고, 무소속으로 있으라고 하는 거지. 민주주의를 지키는 걸 포기하라.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 그런 게 아니라는 거죠. 난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만, 난 여의 편도 야의 편도 아니라, 국민의 편이고 민주주의의 편이에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예요.

11월11일 국회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시사IN> 12·3 비상계엄 다큐멘터리 ‘당신의 6시간’을 촬영하고 있는 우원식 국회의장. ⓒ시사IN 조남진

기획 최한솔·김세욱·이한울 PD/ 문준영 기자

더 자세한 내용은 〈시사IN〉제951호 종이책과 전자책, 뉴인 페이지(sisain.co.kr/newin)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문준영 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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