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벙커’ ‘영현백’··· 다 끝나고 나서 알게 돼 다행이지만 [당신의 6시간 ⑥]

김영화 기자 2025. 12. 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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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비서관과 이시현 비서관은 계엄 당일 유튜브로 본회의장을 생중계했다. 1999년생인 두 사람은 국회에 뜬 헬기를 보고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모두가 국회로 달려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용기가 기억에 남는다.

2024년 12월3일, 국회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자리 지키기’가 있었다. 〈시사IN〉은 12·3 쿠데타 1주년을 맞아, 그날 국회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킨 11명의 증언을 통해 비상계엄 해제 과정을 되돌아본다. 그날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까스로 지켜졌는가. 여섯 번째 순서는 박소정·이시현 국회의장실 정무비서관의 이야기다.


①김성록 국회의장 경호대장

②조오섭 국회의장 비서실장

③이지환 국회의장실 정무조정비서관

④원은설 국회의장실 정무비서관

⑤우원식 국회의장

⑥박소정·이시현 국회의장실 정무비서관

⑦황충연 국회사무처 경호기획관

⑧박영선 국회의장실 공보기획비서관

⑨송동민 국회의장실 연설비서관

⑩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

국회의장실 박소정(왼쪽), 이시현 비서관은 12·3 쿠데타 당일 유튜브 ‘우원식 TV’로 본회의장 모습을 생중계했다. ⓒ시사IN 조남진

이시현 정무비서관: 그날은 너무 평범해서 원래 같았으면 기억나지 않을 그런 날이었어요. 2024년 12월3일 저녁, 퇴근 후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하고 있었거든요. 갑자기 보좌관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국회로 집합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 이게 뭐지?’ 계엄이라고 하는데 감이 안 왔어요. 나중에 얘기해보니 다른 선배들은 총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왔다고 하는데, 저희는 그런 세대가 아니다 보니까 진짜 뭣도 모르고 국회로 왔던 것 같아요.

박소정 정무비서관: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날 약속이 끝나고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하는 걸 봤어요. 집에 딱 도착하니까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는 거예요. 순간 ‘이게 뭐지?’ 싶었죠. 그후 텔레그램에 다들 국회로 오라는 내용이 올라왔어요. 그 당시까지만 해도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인식을 못하고 일단 국회 안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의 11시가 다 되어갈 때 쯤이었던 것 같아요. 경찰이 국회 3문(의원회관과 소통관 사이)을 막고 있었거든요. 어떡하지 하고 있는데 다른 쪽으로 돌아보니 다른 의원실 비서관님이 있더라고요. 자기가 담을 넘을 건데 너도 같이 넘을 건지 물어보더라고요. 그래도 되나 싶긴 한데, 어쨌든 그거 아니면 방법이 없잖아요. 그렇게 담을 넘어서 곧장 의장실로 뛰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시현: 저도 담을 넘으려고 했는데 운동 신경이 없어서 그런지 안 되더라고요. 도저히 못 올라가겠는 거예요. 너무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었죠. 그때 알고 지낸 선임 비서관님이 딱 제 눈앞에 나타나신 거예요. 제가 “비서관님, 여기 막혀서 담을 못 넘겠다. 어떻게 들어가야 하느냐” 물었는데 누군가 철창을 막 흔들어서 쪼개진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 틈으로 들어갔어요. 본청으로 들어가기 전 국기 게양대 위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그 순간에 여기까지 안전하게 왔다는 게 너무 다행스럽게 여겨지더라고요. 그 때가 밤 11시14분 경이었습니다.

박소정: 사무실에 도착해서 정책실, 공보실 등 부서마다 사람들이 다 왔는지 확인하러 뛰어다녔어요. 정무수석님 지시였던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너랑 시현이랑 둘이 같이 다녀” 그러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이시현 비서관과) 같이 뛰어다니며 문을 두드렸죠. 의장실에 직원이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서요. 자정쯤 의장님 첫 대국민 담화를 했습니다. 그때 유튜브 ‘우원식TV’로 중계하는 걸 담당했어요. 그전까지 휴대폰으로 라이브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국회방송에서 생중계하면 저희가 동시 송출하는 방식으로 썼는데, 이번에는 (국회방송 직원들이 국회로 못 들어오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급한대로 제 휴대폰을 켜서 삼각대를 설치해서 찍었죠. ‘이렇게 해도 되나.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엄청 허둥지둥 하면서 준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시현: 소정이가 첫 기자회견 라이브를 담당할 때 저는 섬네일을 만들었어요. 그냥 검은 바탕에 ‘긴급 기자회견’ 크게 쓰고 라이브 링크를 여기저기 뿌렸죠.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2024년 12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이 어수선했다. ⓒ시사IN 박미소

박소정: 저희도 몰랐는데 처음 라이브 영상이 엄청 끊겼더라고요. 의장님이 기자회견 할 때 따로 녹화한 게 있어서 그걸 유튜브에 올려두었어요. 저희가 기자회견 한 것을 기록은 남겨야 했으니까요.

이시현: 그 이후 수석님께서 지금 본회의장을 중계해줄 사람이 없다며 “너희가 배터리 챙겨서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서 라이브를 하라”고 지시하셨어요.

박소정: 정확히 얘기하면 “배터리 있는 거 다 들고 가라”고 했습니다. 제 기억에 의장님 접견실에서 첫 기자회견 라이브를 마치고 나오니까 창문 밖으로 헬기가 보였어요. 한 12시가 좀 넘었을 때였어요. 그때 딱 실감이 나더라고요. ‘이게 진짜 계엄이구나.’

‘저 문이 뚫리면 군인들이 들어올 텐데…’

이시현: 본회의장 안에서 아이폰에 삼각대 하나 두고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안에는 되게 고요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군인들이 본청 창문을 깨고 들어왔다 거예요. 저희는 그렇게 빨리 올 줄 몰랐는데, 본회의장을 들어오는 문이 있어요. 그 문이 덜컹덜컹하면서 경호하시는 분들과 국회 직원들이 다 붙어서 그 문을 막았습니다. 저희는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계속 쿵쿵쿵쿵 소리가 나고 소란스러웠습니다. 저 문이 뚫리면 이제 (군인들이) 들어오는 거 잖아요. 그때 이게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어쨌든 본회의장 안에 의원들이 많이 들어와 있으니 곧 의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빠르게 처리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사이에 군인들이 국회 안까지 진입할 줄은 전혀 몰랐어요.

박소정: 비상계엄은 역사 시간에 배우던 내용이잖아요. 헬기가 들어오는 걸 보고 ‘아, 이건 실제 상황이고 진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구나’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나중에 의장님과 비서실장님이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도 그렇고 시현이도 그렇고 ‘그냥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온 거거든요. 그랬더니 두 분이 ‘오늘 나 여기 가면 죽는 건데’라는 생각을 하고 오셨다는 거예요. 우리는 몰랐으니까 정말 겁 없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시현: 총칼을 든 군인들을 본 적이 없죠. 군인이라고 하면 내 친구들이나 동생들이 떠올라요. 면회를 가야할 것만 같은 그런 군인들만 보다가 이렇게 무장을 하고 온 군인들은 처음 봤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고 그냥 어느 정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될 거라고 예상했어요. 군인들이 보좌진들을 밀치고 창문 깨고 이런 상황들이 펼쳐졌을 때 좀 실감이 났습니다. 사실 그 와중에 좀 인상적인 기억이 있는데요. 바리케이드를 쌓으라고 해서 열심히 쌓는데, 정무실에 같이 있던 비서관님이 저희 아버지뻘쯤 되시는데 “얘네 안 해봤네”하면서 막 테트리스 쌓듯이 올리더라고요. 학생 운동을 겪어봤던 분들이어서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저희는 그냥 무작정 쌓기만 했는데 보니까 단단히 고정시키는 패턴이 있더라고요.

12·3 쿠데타 당시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본관 3층 본회의장 인근 복도에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박소정: 맞아요. 정말 진지하고 무서운 상황임과 동시에 저희끼리는 ‘경력직이 또 이렇게 나오나’ 그런 농담도 했던 것 같아요(웃음). 의자도 얼기설기 쌓아야지 안 무너지더라고요. 그날 저희 아버지가 국회 앞에 오셨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어요. 제가 휴대폰으로 생중계를 하다보니 가족들과 연락을 못했거든요. 제 지인들은 제가 생중계하는 걸 보고 그래도 살아있구나 생각을 했대요. 이게 뭐 웃기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새벽에 연락이 닿아서 다행이었죠. 너무 걱정하셨으니까.

이시현: 저희 부모님은 지방에 계셔서 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택시 타고 국회 본관으로 갈 때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요. “엄마 내가 지금 국회 앞에 왔는데 경찰들이 막고 있어서 못 들어가고 있어. 담을 넘어야할 것 같은데 내가 못 넘을 것 같아”라면서요. 그랬더니 부모님이 무조건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만약에 군인들이 무력을 행사하거나 의장실 내부로 들어와서 포위되는 상황이 오면 절대로 피 끓는 마음으로 뭘 하지 말고 무조건 거기서 시키는 대로 들어주고, 절대로 반항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제가 안전한 거라고요.

박소정: 계엄 해제 전까지 본회의장 안에서는 마음이 정말 급했어요. 의원님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면서 여기저기서 소리쳤습니다. 의장님은 절차를 지켜야 한다면서 최대한 진정시키는 상황이었죠. 경호과 직원분들이 ‘가능한 분들은 다 와서 같이 막아달라’는 요청을 했거든요. 저희는 떠나지 못하고 라이브를 해야 하니까 마음이 급하더라고요. 그 짧은 찰나인데도 의장님이 항의받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그러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이 계엄 해제를 위해) 의사봉을 딱 두드리니까 ‘한시름 놨다’ ‘이제는 괜찮겠지’ 하면서 약간의 안도를 했습니다.

이 다음엔 우리가 ‘경력직’ 선배들처럼

이시현: 그 이후로도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안 나가시는 거예요.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봤더니 2차 계엄 우려가 있더라고요. 국무회의에서 의결을 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알고 보니 둔치 쪽에 여전히 군인들이 남아 있었더라고요. 의원님들도 그걸 다 알고 자리를 지켜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박소정: 그날 본회의장 라이브를 마칠 때 보니 조회수가 64만 회였습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영상을 올렸는데 그 조회수를 넘지는 못하더라고요(웃음).

이시현: 사실 저희는 군인을 직접 마주했던 건 아니라서 트라우마는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 빨리빨리 캐치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걸 확실히 느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 상황에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는데도 수석님이 ‘너네 지금 본회의장으로 가서 라이브 해야 돼’ 이렇게 막 알려주셔서 우리의 본분을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소정: 저도 비슷해요. 그런 상황에서조차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내가 여기서 뭘 해야 하지 빠릿빠릿하게 생각해야 하는구나, 이게 그날 이후 딱 새겨졌어요.

비상계엄이 해제된 2024년 12월4일, 전날 계엄군 진입 시도에 국회 관계자들과 당직자들이 쌓아놓은 집기들. ⓒ시사IN 박미소

이시현: 제가 뭔가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 군인들을 다 물리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카메라 앞에 서서 중계하는 용기,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그 자리를 지키는 용기가 생각나는 밤이었습니다. 저도 의장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빨리 국회에 와서 현장을 지킬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거든요. 이런 급박한 순간에도 각자가 제 위치에 있었고, 저마다 임무를 해내는 용기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달려왔어요.

박소정: 사실 저희야 정말 모르니까 낼 수 있었던 용기였다고 생각해요. 가정이 있는 분들도 많고, 과거에 계엄을 경험했던 분들도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빠지지 않고 달려왔다는 그 용기가 정말 기억에 남아요. 그날 밤은 다들 진짜 무서웠을 거예요. ‘다들 각자만의 용기를 갖고 여기까지 왔구나. 지난 1년 동안 그런 결단력으로 살아왔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바리케이드를 쌓고 군인들과 대치하는 등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어요.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요. 물론 계엄이라는 것 자체가 잊으면 안 되는 경험이지만, 그렇게 진짜 하나가 돼서 움직이는 경험을 살면서 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시현: 이런 일이 또 있으면 안 되겠지만 저희가 이번에 한 번 해봤기 때문에, 다음 번에 또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저희가 그때 봤던 ‘경력직’ 선배들처럼 “이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이러면서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박소정: 물론 이런 일이 당연히 없어야겠죠. 다만 이 대응 경험을 통해서 저희도 좀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이야 모든 게 끝났으니까 웃으면서 “와 진짜 죽을 뻔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만약 그 때 계엄군 중 한 명만이라도 총을 쐈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텐데 그런 일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죠. 그때는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말을 누구도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어요. 그렇게 될까 봐 다들 불안해하고 있었으니까요. 나중에 ‘지하 벙커’나 ‘영현백’ 관련 보도가 나왔을 때 한 보좌관님이 “야 우리 그 벙커에 끌려갈 뻔했어” 그러는데, 약간 긴장이 풀리면서 그래도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

기획 최한솔·김세욱·이한울 PD/ 김영화 기자


더 자세한 내용은 〈시사IN〉제951호 종이책과 전자책, 뉴인 페이지(sisain.co.kr/newin)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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