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의 주역들에게 ‘마이크’는 쥐어주지 않은 韓 [계엄 1년, 대한민국④]
123일간 탄핵 정국서 빛났던 청년층…온·오프라인 넘나들며 ‘유쾌한 저항’
응원봉 들고 전 세계 놀라게 했는데…지난 1년간 공론장에선 여전히 ‘소외’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2024년 12월3일, 시민들이 불법계엄에 맞섰다. 정지된 민주주의를 맨몸으로 지키겠다고 나선 시민들의 용기와 결심이 모였고, 그렇게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는 다시금 바로 세워졌다. 그렇다면 이렇게 끝인 걸까. 모든 것은 원점으로, 정상으로 돌아간 것일까. 불법계엄의 명분으로 내세워졌던 부정선거 음모론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퇴출됐을까. 음모론은 여전히 힘이 세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는 데서 시작한다. 음모론은 어떻게 불법계엄을 잉태했고,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뒤흔들었을까. 《시사저널》은 12·3 불법계엄 1주년을 맞아, 계엄의 뿌리로 작동했던 부정선거 음모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4월4일, 헌법재판소 파면 선고 요지 중)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지난해 12월3일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기회의 날이었다. 여의도 상공에 헬기가 날아다니고 계엄군이 국회 유리창을 군홧발로 깨부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가장 강력한 변수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바로 주권자인 '시민의 힘'이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다르지만, 시민들은 같은 뜻으로 국회 앞에 모여 일제히 계엄 철회를 외쳤다. 계엄이 장기화할 경우 체포·구금되고 기본권을 제한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맨몸으로 계엄군이 탑승한 차량을 막았고, 맨손으로 완전무장한 계엄군과 맞섰다. 그러는 사이 국회의원들은 속속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할 수 있었고, 기습적으로 선포된 비상계엄은 결국 총성 한 번 없이 6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시민들 중에서도 특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들이 있었다. 바로 새로운 인식과 감각으로 무장한 20·30대 청년들이다. 특히 'K컬처'가 반영된 이들의 유쾌한 집회 방식은 오프라인 공간을 'K민주주의'로 재탄생시켰다. 동시에 온라인 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청년들은 '좋아요'로 연대하고 '밈(Meme)'으로 저항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거리의 주역이었던 청년들은 정작 제도권 정치와 공론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계기로 청년들의 목소리와 영향력은 분명 커졌지만, 기성 언론과 정치권이 제공하는 마이크는 여전히 '기성 세대'에게만 쥐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엄·탄핵 정국서 빛난 청년들의 힘
청년들의 존재감은 12·3 불법 계엄부터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 이르기까지 긴박했던 123일간 한층 두드러졌다. 이들이 여의도 탄핵 집회 전면에 등장하면서 형형색색의 아이돌 응원봉과 K팝 음악이 민중가요를 대체하는 새로운 집회 문화로 떠올랐다. 기존 학생운동 문화에서 비롯된 각종 투쟁적인 집회 문법이 청년들의 새로운 정서를 중심으로 재편된 셈이다. AFP통신은 "시위대는 K팝을 들으며 즐겁게 뛰고,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LED 촛불을 흔드는 등 댄스파티를 연상케 했다"고 주목했다.
오프라인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청년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연대해 목소리를 냈다.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는 청년들은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SNS를 통해 자신들만의 촛불을 켜 현장에 힘을 보탰다. '온라인 촛불 지도'라는 웹사이트까지 등장해 각자 원하는 위치에서 온라인으로 촛불을 밝히는 모습도 포착됐다.
대학가도 분주했다. 계엄 사태가 터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전국 각 대학에서 연달아 계엄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나왔다. 기성세대가 초래한 위기에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청년들의 역동성이 나타났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사실 그간 청년층은 정치 참여에 소극적인 세대로 분류됐다. 각종 선거에서 20·30대의 투표율은 대체로 최하위권을 지켜왔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은 각각 52.4%, 55.1%로, 70대(84.7%), 60대(82.0%), 50대(71.6%) 등과 차이가 컸다. 직전 총선에서도 20대(58.7%)가 30대(57.1%)를 소폭 웃돌았을 뿐 구조적인 변화는 찾기 어려웠다. 당시 20대 남성층이 '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공약을 내건 윤 전 대통령을 대거 지지하며 캐스팅보트를 던진 일도 있었지만, 이후 지지부진한 공약 이행과 진영 갈등 등에 염증을 느끼며 정치권으로부터 다시 멀어졌다.
정치에 대한 관심 자체도 낮았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2년 성인 남녀 약 8000명의 정치적 관심도를 1~4점 척도로 측정해 조사한 결과 20대의 정치적 관심도는 2.1점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30대의 정치적 관심도 역시 2.3점으로 40대(2.4점), 50대(2.5점)에 비해 낮았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도 50대의 정치적 관심도가 2.4점으로 떨어졌음에도 20대(2.1점), 30대(2.3점)의 정치적 관심도는 여전히 기성세대를 밑돌았다.

기성세대 독점에 마이크는 못 쥐는 청년들
계엄 국면에서 청년들이 보인 적극성은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었던 셈이다. 이제 공은 제도권 정치로 넘어갔다. 청년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될지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비상계엄 이후 지난 1년간 청년들의 변화에 비해 이들에게 주어지는 참여의 기회는 여전히 적다는 점이다. 특히 제도권 정치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는 공론장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무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국내 대표 TV 토론 프로그램인 MBC 《100분 토론》의 패널을 분석한 결과다. 시사저널이 지난해 12월3일부터 올해 11월25일까지 총 50회분 방송에 출연한 토론 패널 중 나이가 확인되지 않은 1명을 제외한 115명을 분석한 결과 평균 연령은 56.4세로 집계됐다. 해당 기간 출연한 20대 토론 패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30대 패널은 총 3명의 남성이었는데, 이들 역시 법률상 청년인 만 19~34세에 속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엄 이후의 대한민국의 공론장에서도 마이크는 기성세대가 독점했다. 50대와 60대 패널은 각각 57명, 33명이 출연한 것으로 집계됐다. 5060세대 패널이 전체 패널의 78.3%를 차지한 셈이다. 이들 중 다수가 중복 출연하는 현역 의원이나 교수 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성세대의 출연 빈도는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40대는 17명, 70대는 5명이었다.
《100분 토론》뿐만 아니라 각종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청년 문제를 다룰 때마저도 청년들이 직접 출연해 공론장을 형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방송에 나와 장시간 토론을 소화할 만큼의 전문성과 대표성을 갖춘 청년 자체가 적다는 현실적인 요인도 있다.
그럼에도 이미 일정한 위치와 영향력을 확보한 기성세대에게 발언권이 집중되면 결국 동일한 관점과 목소리만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찰이다. 특히 비상계엄 이후 정치권을 향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변화된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필요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과거 '헬조선' 등으로 대표되던 현재에 대한 불만은 잦아들었으나, 기성 세대와 미래에 대한 니즈에 있어서 격차는 여전하다"며 "계엄 이후 청년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만한 구조적 개선이 부족한 만큼 인구 문제나 연금 개혁 등 핵심 청년 의제에서 기성 정치인들이 청년의 요구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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