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하고 바람 때문에 무너지면 그게 방파제입니까?”…빼돌린 보조금은 30억

민소영 2025. 12. 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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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항구에는 기울어진 빨간 등대가 있습니다.

등대가 세워진 방파제 중간은 뚝 끊겨 마치 칼로 자른 카스텔라를 보는 것 같습니다.

고내포구 방파제 조성 공사가 이뤄진 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방파제가 내려앉기 시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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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울어진 등대, 끊어진 방파제…"바람과 파도 때문에?"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항구에는 기울어진 빨간 등대가 있습니다. 등대가 세워진 방파제 중간은 뚝 끊겨 마치 칼로 자른 카스텔라를 보는 것 같습니다. 돌무더기와 테트라포드는 한눈에 봐도 바다 밑으로 푹 꺼져 내려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고내포구 방파제 조성 공사가 이뤄진 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일대에선 2022년 8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1년간 '어촌뉴딜300 고내항 조성사업'이 진행됐습니다. 어촌 어항을 활성화한다며 각종 시설물을 정비하고 새로 짓는 해양수산부 주관 사업입니다. 고내리에는 사업비 37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문제는 공사가 마무리된 지 겨우 두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방파제가 내려앉기 시작한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울어짐은 더 심해졌고 방파제 한가운데는 아예 두 동강이 났습니다. 기울어진 빨간 등대를 보고 '피사의 등대'라는 조롱도 나왔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선 "부실 공사"라며 공분이 일었습니다.


공사 발주처에서 방파제 유실 원인으로 지목(?)한 건 '태풍과 파도'. 주민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방파제 역할이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건데, 파도하고 바람 때문에 무너지면 그게 방파제입니까?"

주민들은 사업을 관리·감독하는 제주시와 한국어촌어항공단에 대해서도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 '눈먼 돈' 어촌뉴딜 사업비…자격 미달 업체에 부실 공사까지

결국 제주해양경찰청이 바닷속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고, '부실 공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뒤에는 30억 원이 넘는 보조금 빼돌리기와 불법 하도급이 있었습니다.

제주해양경찰청 과학수사대가 고내항 조성사업 현장에서 수중 조사를 하는 모습. 모래밭 위에 부실하게 설치된 테트라포드가 가라앉으면서 방파제 구조물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제주해양경찰청 제공


제주해양경찰청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보조금법 위반 등 혐의로 '어촌뉴딜300 고내항 조성사업' 원도급사 대표 A씨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하도급사 대표 B씨와 감리 등 7명은 불구속 송치했습니다.

구속된 A씨는 2023년 8월부터 1년 동안 진행된 총사업비 95억 원 규모의 애월읍 고내항 공사 과정에서 하도급사 대표 씨와 짜고 공사 내용을 발주처에 허위로 보고하는 방식으로 정부 보조금 30억 8천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습니다.

A 씨는 또 자격 미달인 B 씨 건설사에 하도급을 주면서, 그 대가로 2억여 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방파제를 지탱하는 테트라포드가 지반 침하로 함께 내려앉은 모습. 제주해양경찰청 제공


■ 모래 지반 위에 쌓아 올린 방파제…두 달 만에 와르르

해경 수사 결과 하도급사는 불법 도급 공사를 진행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시방서에 기재된 내용을 준수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지역은 지반이 1.5~2m 깊이 모래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방파제 설치에 앞서 모래층을 긁어내고 그 위에 기반을 쌓아 방파제를 지어 올리는 방식으로 공사해야 했는데, 필수 공정이 빠진 채로 부실하게 지어 올렸다는 게 해경 설명입니다.

제주해양경찰청 김주영 수사과장은 "방파제 공사를 할 땐 수면 아래 지반 상태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공법으로 공사해야 하지만, 이번에 적발된 업체는 이를 무시한 게 문제였다"면서 "무리하게 바윗돌을 쌓고 콘크리트를 얹는 바람에, 모래가 침식되면서 방파제 전도가 일어났다. 모래 위에 성을 쌓은 격"이라고 밝혔습니다.

감리사 역시 일부 서류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감시·감독을 소홀히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모래밭 위에 부실하게 설치된 테트라포드가 파도에 휩쓸리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제주해양경찰청 제공


이 같은 부실 공사로 인해 고내항 방파제는 복구를 위해 다시 사업비 5억 원을 들여 재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혈세가 낭비되는 꼴입니다.

많은 선박이 드나드는 입구이기도 한 방파제가 기울어진다는 건 자칫 대형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해경은 다른 사업으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입니다.

제주해경 측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항만 건설 과정에서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불법 하도급 관행과 공사 책임자들의 의무 위반에 대해 강력히 단속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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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영 기자 (mission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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