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살 때 ‘주주 가치’ 표방했던 기업, 팔 때는 ‘성과 보상·자금 확보’

한진칼은 2022년 9월 ‘주주 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자사주 신탁계약을 체결해 43만9989주를 취득했다. 해당 주식은 올해 상반기까지 한진칼이 보유하고 있다 지난 8월 임직원 성과 보상을 목적으로 전량 처분됐다. 애초 명분과 실제 용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최근 5년간 국내 상장 기업의 자사주 취득·처분 공시를 분석한 결과 약 20%가 매년 자사주 매입에 나섰지만, 실제 소각까지 이행한 기업은 30% 선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한진칼처럼 기업들이 자사주를 취득할 때 목적으로 대부분 ‘주주 가치 제고’를 내세웠지만, 정작 처분할 때는 임직원 보상이나 자금 확보 등이라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2일 리더스인덱스가 2658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최근 5년간 자사주 취득 흐름을 분석한 결과,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 비중은 매해 평균 19~24% 수준이었다. 지난해는 2591개 상장사 가운데 641개사(24.7%), 올해는 연초부터 지난달 12일까지 508개사(19.1%)가 자사주 매입을 진행했다.
이들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할 때 내세운 명분은 대부분 ‘주주 가치’였다. 5년간 제출된 자사주 취득 계획 공시 2067건 가운데 1936건(93.7%)에서 ‘주주 가치 제고’가 명시됐다. 이에 비해 ‘임직원 성과 보상’은 61건(3.0%), ‘주주 가치 제고·임직원 보상’을 함께 적은 경우는 51건(2.5%)이었다. ‘주식 교환’ 목적은 단 1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처분 목적은 달랐다. 자사주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여주는 처분 공시 1666건을 분석한 결과, ‘임직원 성과 보상’이 1066건으로 64.0%를 차지했다. 이어 ‘자금 확보’가 188건(11.3%), ‘교환 사채 발행’이 172건(10.3%), ‘주식 교환’이 81건(4.9%)이었다. 대부분 주주 가치 제고보다는 기업의 재무적 필요나 우호 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권 보호 성격이 강한 것들이었다.

자사주를 소각하더라도 시장 전반의 관행 자체도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5년간 자사주를 취득한 880개 기업(중복 제외) 가운데 한 번이라도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은 315개사(35.8%)에 그쳤다. 소각량은 전체 취득량(17억673만여주)의 54.6%(9억3263만여주)로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지만, 이는 소수 대기업이 대규모 소각을 단행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소각 참여 기업 315개사 중 상위 15개사가 전체 소각 물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편중돼 있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3차 개정안은 새로 취득한 자사주는 물론 기존 보유 물량까지 포함해 취득일로부터 1년 내 의무 소각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자사주 처분 목적을 변경하거나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려면 주주총회 등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리더스인덱스는 상법 3차 개정안을 시행하면 자사주 비중이 큰 지주사나 핵심 계열사가 직접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리더스인덱스는 “3차 상법 개정안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고 처분 방식을 변경할 때 주주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명시한 만큼, 그간 관행처럼 이어졌던 ‘깜깜이 자사주 활용’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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