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벗고, 콘서트서 춤추는 이란 젊은이들…‘율법의 둑’ 무너질까

8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에서 한 이란 여성이 자신의 오토바이에 달린 후사경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고 있다. 이란에서 여성들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공식적으로 합법은 아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란 테헤란 니아바란궁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팝 음악에 맞춰 뛰며 춤을 췄다. 테헤란 이란샤르 길거리에서 열린 하드락 밴드의 소규모 공연에서도 대부분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 등 젊은 남녀들이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들었다.

뉴욕타임스는 1일(현지시각) 보도에서 이란에서 최근 수개월간 젊은 세대들이 이끄는 ‘사회적 르네상스’를 주목했다. 지난달 디자인 위크 기간 테헤란 곳곳에선 조명 쇼와 미술 전시회, 라이브 음악 공연이 열렸다. 5일간 재즈 페스티벌도 여러 카페와 미술관을 공연장으로 바꿔놓았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테헤란만이 아니다.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도시 야즈드에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금지됐던 팝송을 함께 부르는 싱어롱 콘서트가 열렸다. 힙합 댄서, 여성 솔로 가수가 시라즈 같은 도시에 등장했고, 야외 카페에서 디제이가 주도하는 댄스 파티가 늘어나고 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뷰티 전문가 파르니아(26)는 “우린 행복과 기쁨을 느끼고 싶다”며 “음악을 들으려 이런 콘서트에 가면 전쟁이나 갈등에 대해선 생각나지 않고, 오직 그 순간, 특별한 밤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25일(현지시각) 엑스에 올라온 영상에서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이란샤르 구역에서 락밴드가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밴드 주변으로 수십명의 젊은 남녀가 모여 머리를 흔들며 흥겨워 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하고 있지 않다. 출처 엑스 @arash_tehran

불과 5년 전만 해도 여성들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구타당하거나, 이란 정부 보안기관원들이 집에서 은밀히 열던 파티를 해산시키고, 공공장소에서 춤추는 것을 금지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테헤란에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도냐 아미리(33)는 “마치 허물을 벗듯이 사회가 매우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금기를 부수는 겁없는 젊은 세대가 끈기 있는 노력으로 기본적인 자유를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도 이런 추세에 일부 발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9월 유명 가수와 밴드를 초청해 전국 각지에서 ‘행복 콘서트’라는 이름의 무료 야외 음악 행사를 연이어 열었다. 이 콘서트들을 모두 합해 백만명 이상이 참여하며 큰 인파가 몰렸다. 이란 정부는 일반적으로 공식 기념행사는 이슬람 사원에서 대중 기도회와 함께 진행해, 팝 음악 콘서트를 개최하는 건 이례적이다. 이런 정부의 움직임에 지지하는 이들도 있지만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이들도 있다. 정부가 변화하고 있다는 쪽도 있지만, 정부의 문제점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조처라는 시각도 있는 것이다.

20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 북부 지역에서 한 남녀가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AP 연합뉴스

테헤란에 거주하는 음악 저널리스트이자 콘서트 기획자인 바흐만 바바자데(42)는 “테헤란, 시라즈, 이스파한 같은 주요 도시들에선 매일 밤 적어도 4개의 콘서트가 수천명의 관객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지난 6월 이스라엘과 12일 전쟁 이후 가사나 음악을 검열하고, 안무를 금지하고,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요구하는 등의 제한을 완화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 보수주의자들은 이슬람 혁명이 사라져버릴 거란 우려를 하며 통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주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6)는 정보기관으로부터 여성 히잡 착용률 감소와 이슬람 계율로부터 멀어지는 상황을 보고받고, 정부에 청년과 여성들이 계율을 지키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당국도 일부 행사를 취소하거나 주최자에 벌금형을 부과하기도 하지만 모두 감시하고 단속할 수가 없어 ‘두더지 잡기 게임’과 같은 형국이 벌어지고 있단 것이다.

15일(현지시각) 디자인 위크 기간 중 이란 테헤란에 있는 테헤란 대학에서 열린 전시회.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 전문가들은 페제슈키안 정부의 이런 유화책이 장기간 이어져 온 서방의 제재로 인한 경제 위기, 심각한 가뭄 등으로 인해 높아진 불만을 탄압해서는 큰 저항을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지난 8월 ‘제트(Z)세대’(1997~2012년생) 청년이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가 네팔에서 시작해 마다가스카르, 모로코, 페루, 파라과이 등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대륙을 가로질러 일어났다.

젊은 세대들이 벌이는 축제가 침체된 경제나 이슬람 정권의 탄압에 눈을 감는 것이 아닌 저항의 한 형태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에서 정치 분석가로 활동하는 모즈타바 나자피는 “이란 사회는 이런 종류의 저항으로 권력 구조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정권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왔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