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러기, 얼룩기러기, 붉은가슴기러기까지…30년 탐조 생활에 ‘로또’
3년째 강화도 찾는 ‘황기러기’ 이어 ‘얼룩기러기’ 출현
길 잃은 붉은가슴기러기까지…멋진 자태 뽐내는 쇠기러기들

쇠기러기는 우리나라를 찾아 겨울을 나는 대표적인 겨울철새다. 지난 11월9일 인천 강화도의 드넓은 평야에는 1만여마리의 쇠기러기가 도착해 있었다. 올해도 먼발치에서 눈에 띄는 황기러기 한 마리를 만났다. 올해로 3년 차다. 잊지 않고 강화도를 찾아온 모습이 반갑다. 이 기러기는 암갈색인 다른 쇠기러기들과 달리, 온몸에 카푸치노를 끼얹은 듯 옅은 갈색 깃털을 지니고 있다. 유전적 돌연변이인 백변종(루시즘·Leucism)으로 보인다.


백변종은 백색증(알비노·Albinism)과 달리 깃털만 희미해지거나 얼룩이 생긴다. 백색증이 있는 개체는 털이 희고, 눈과 피부에 혈액이 비쳐 붉게 보인다. 반면 백변종은 무늬가 있는 동물의 경우, 그 무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색이 옅어지거나 정상색 체모 중 일부만 흰색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백색증 뿐 아니라 백변종도 매우 드문 변이로 100만마리 중 한 마리꼴로 알려져 있다.



올해는 황기러기 이외에도 또 다른 백변종이 찾아왔다. 어린 개체다. 일반적인 쇠기러기는 몸 전체가 암갈색이며 배에 검은 가로줄 무늬가 나타나고, 이마에는 선명한 흰색을 띤다. 그러나 이번에 새롭게 관찰된 백변종 기러기는 가슴과 옆구리, 목 일부분이 회색이고 배 아랫면은 흰색이다. 몸 윗면의 흰색 깃털에는 불규칙한 회갈색 반점이 있어 ‘얼룩기러기’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그뿐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게 관찰되는 붉은가슴기러기도 찾아왔다. 붉은가슴기러기는 러시아 북부 툰드라 지대와 북극권에서 번식하고 흑해 주변 동유럽 지역에서 월동하는데, 길을 잃은 것 같다. 이처럼 먼 길을 오가다 경로를 이탈한 새를 미조(迷鳥, vagrant bird)라고 한다.
길 잃은 붉은가슴기러기의 가슴과 목은 뚜렷한 적갈색으로 흰색·검은색 무늬가 특징이다. 쇠기러기보다 몸집이 작고 무리 속에서도 조심스레 행동해 얼핏 원앙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농경지, 풀밭 등지에서 먹이를 찾으며, 호수, 저수지 등지에서 휴식을 취한다.


올해는 유독 ‘이색 기러기’를 잇따라 관찰하는 행운이 따르고 있다. 성조가 된 황기러기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아 수많은 쇠기러기 무리 안에서 구별하기 어려웠지만, 그동안 파악한 행동 습성을 바탕으로 처음 목격한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모니터링을 벌였다. 얼룩기러기도 이동 동선 파악이 중요했다. 올해 태어난 어린 개체로 보이는데, 식욕이 왕성하고 활동적이었다.


황기러기와 얼룩기러기 모두 깃털 색은 다른 개체들과 달랐지만, 쇠기러기 고유의 외모와 백변종 특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새로운 종처럼 보일 만큼 독특했다. 통상 정상 개체의 체모와 달리 완연히 흰색 깃털을 지녀야 백변종이라 하는데, 이들은 옅은 갈색·백색·회색을 띠고 있어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깃색 변이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런 식의 깃색 변이는 사람 눈에 잘 띄지 않아 희귀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더 자주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집단 서식 종이나 텃새류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한국의 조류 깃털 색 변이’, 한국조류학회지 2016년). 원인은 유전적 돌연변이, 연령, 환경오염, 기생충, 먹이원 등 다양하다. 국내에서는 관련 연구가 많지 않아 알려진 바가 적다.

깃색이 다르면 무리에서 소외되기도 하지만, 황기러기와 얼룩기러기는 앞줄에서 당당하게 행동하며 다른 개체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지난 30여년 탐조생활 중 황기러기와 얼룩기러기, 붉은가슴기러기까지 동시에 관찰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멋진 자태로 강화도를 찾아온 쇠기러기들이 대견하고 고맙다.


쇠기러기의 ‘쇠’는 작다는 뜻이다. 쇠물닭, 쇠황조롱이 모두 같은 맥락이다. 쇠기러기는 경계심이 강해 무리를 이뤄 행동한다. 몸 길이는 약 72㎝ 정도이며 유라시아, 북아메리카, 그린란드 북극권에서 번식하고, 유럽 중부, 중국, 한국, 일본, 북아메리카 중부에서 월동한다. 오리보다 육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날갯짓은 느리며 브이(V)자 편대 비행을 한다.

국내 월동 무리는 약 7~10만마리에 이르며 9월 하순에 도착해 4월 초순까지 머문다. 강원도 철원평야는 대표적인 쇠기러기 집단 월동지이고, 다른 지역에서는 큰기러기와 섞여 월동하는 경우가 많다. 쇠기러기는 뭍을, 큰기러기는 물가를 선호한다. 쇠기러기를 만나고 싶다면 물이 고인 습지보다는 수확이 끝난 논을 찾는 편이 낫다. 내년에도 황기러기와 얼룩기러기, 붉은가슴기러기가 강화도에서 만날 수 있을까. 부디 모두 건강히 다시 이곳을 찾길 바란다.
얼룩기러기의 비상 연속 동작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디렉터 이경희·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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