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수자는 그저 ‘응원군’ 이었나… 광장 메웠지만 ‘여전한’ 세상 [플랫]

남지원·플랫팀 기자 2025. 12. 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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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탄핵안이 가결되자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해 12월4일 저녁, 사학과 대학생이던 A씨(24)는 코앞으로 다가온 마지막 기말고사 준비를 뒤로하고 여의도 국회 앞으로 뛰쳐나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한 다음 날이었다. 강의실에서 배웠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한 이듬해 4월4일까지 그는 거의 매주 광장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 겨울 광장에 있었다는 것은 자유발언대를 차지했던 ‘소수자’를 만나는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기도 했다. 레즈비언이고, 여성이고, 장애인이고,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밝히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 참가자가 매주 발언대에 올라온 사람의 절반을 넘어섰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내란 우두머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정권도 교체됐다. 하지만 당시 광장의 요구는 얼만큼이나 이뤄졌을까. 불법 계엄을 규탄하고 윤석열 탄핵을 요구한 ‘응원봉 시위’는 이전까지의 대규모 정치시위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2030 여성들이 광장의 주류를 차지했고,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단상에 올라 정체성을 드러내고 발언했다. ‘모든 혐오와 차별을 철폐하라’는 요구도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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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에만 머물지 않았던 광장의 요구 기억… 다층적 요구에 연대한 시민들”
“처음엔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 몸 보태고자 나갔지만, 점차 광장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퍼지는 걸 보면서 이번 기회로 소수자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됐습니다.”
- 20대 여성 참가자
전국농민회총연맹이 트랙터를 몰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다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일대에서 가로막혀 밤새 대치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22일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발언대에서는 탄핵 이외에도 다층적인 이슈가 다뤄졌다. 구조적 성차별 철폐와 노동기본권 쟁취, 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 이동권 보장, 팔레스타인 전쟁 반대, 산업재해와 사회적 참사 피해자 애도 등 다양한 의제가 등장했다.

집회 형식도 변화했다. 주최 측이 섭외한 소수의 참여자가 발언대에 오르는 대신 자발적으로 발언 신청을 한 시민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집회 전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낭독한다거나, 농민가의 ‘형제들’이라는 노래 가사를 ‘우리들’로 바꿔서 부르는 등 참여자의 다변화를 반영한 형식들도 생겨났다.

A씨는 “집회에서 ‘윤석열 탄핵은 시작일 뿐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발언자들은 윤석열 하나를 끌어내린다고 우리 삶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어요. 윤석열로 대표되는 혐오와 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란 것이었죠.” 더욱 중요한 사실은 광장에 모인 사람 중 누구도 그런 발언을 두고 ‘왜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고 배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그 발언이 현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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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의강간죄·차별금지법…정치는 듣지 않는다, 여전히
여성들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2030 응원봉 여성들이 만든 새로운 집회문화, 여성들은 왜 집회에 나왔나, 이런 뉴스가 매일같이 나왔잖아요. 이번에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주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일단 큰일은 넘겼으니 됐지 않냐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과연 2030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집회에 많이 나왔다면 이렇게나 조용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 20대 여성 참가자
다음 대선에서는 응원봉 시위를 주도하고 참여한 여성이 배제되지 않길 바랐습니다. 동시에 응원봉 시위의 특수성 중 하나였던 다양한 교차성을 지닌 여성들이 안전하게 발언할 수 있었던 공간이 일상에까지 번지길 바랐습니다. 어떤 공론장의 희망을 엿본 것 같았거든요.
- 20대 여성 참가자
탄핵, 정권교체뿐 아니라 광장에서 터져나온 요구들을 하나씩 해결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20대 남성 참가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이던 지난 4월4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윤석열 8대0 파면을 위한 끝장 대회’ 밤샘 집회 참가자들이 헌재 선고를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재원 기자

하지만 한걸음에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달려갔던 시민들은 당시 광장에 모였던 의제들이 정책으로 살아남지는 못했다고 여긴다. 특히 당시 광장의 주역으로까지 불렸던 여성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토로한 시민들이 많았다. 비동의강간죄나 차별금지법 등의 정책이 새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되지 않았다든지, 이재명 대통령이 ‘남성 역차별’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것 등을 보면서 실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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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수연씨(19)는 언론에서는 ‘촛불소녀’가 많이 참여한 집회였다고 주목을 많이 했는데, 정작 대선 과정에서 여성폭력과 관련된 공약을 뒤로 빼는 모습이나 이번 정부 들어서도 적극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많이 실망했다”며 “이럴 거면 여성들이 집회에 많이 참여한다고 왜 그렇게 칭송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50대 여성 참가자 B씨는 “당시 추운 광장에 섰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를 바랐는데, 여전히 비동의강간죄나 차별금지법조차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30대 여성 C씨는 “지난해에는 응원봉과 ‘빛의 혁명’을 꼬박꼬박 언급했던 정치 세력이 성범죄 대응처럼 중립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젠더) 이슈조차 너무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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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장애인 이동권 등 당시 광장에서 주목했던 의제들이 정권교체 후 외면당하는 모습에 충격받았다는 시민도 있었다. A씨는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다 폭력적으로 저지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광장에서 발언하던 ‘전장연 동지’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A씨는 “윤석열은 탄핵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탄핵 이후 사회갈등과 혐오가 더욱 심해졌다는 우려도 나왔다. 20대 여성 D씨는 “혐중 정서와 음모론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광장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목소리, 우리 정치에 부재”
탄핵 이후에는 정치권에서 여성의 목소리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여성 유권자의 표는 이미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 같아요. 남성 역차별에 대해 조사하라고 지시한다든가 하는 행보들이요.
- 30대 여성 참가자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주최로 지난해 12월25일 개최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윤석열 퇴진!-윤석열 퇴진하고 평등세상으로’ 집회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근에서 열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플랫]‘응원봉’든 광장의 ‘주역’…“더이상 지워질 수 없다”

당시 참가자들은 광장에서 분출된 여성·소수자 시민들의 요구를 정치권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응원군’ 정도로 인식했다고 비판했다. 30대 여성 E씨는 “자칭 ‘진보세력’이 여성 정치세력화를 인식하는 방식은 과거 광우병 촛불시위 때 청소년 참가자들을 ‘10대 촛불소녀’로 명명하던 시절과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전 정권을 탄핵시킨 최대 공신이 2030 여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그에 걸맞은 정치 권력을 갖길 기대하기보다는 단순 ‘응원군’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광주 지역에서 집회에 자주 참여했다는 사월(활동명·20)은 “시위에서 10대와 20대는 같은 시민이 아닌 ‘특별하고 기특한 존재’로 소비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광장의 목소리가 정치 의제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시민의 실패’라기보다는 ‘정치의 실패’에 가깝다고 참가자들은 말했다. A씨는 “시위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윤석열 탄핵 집회에 몇 명이 나왔다’는 소식만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실망했다”며 “광장에 나온 소수자들의 요구를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파면 이후에도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광장에서 나온 집단적 저항의 목소리를 정치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광장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지금 정치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윤석열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났고, 그 취약한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것은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지난해 광장이 보여줬다”고 말했다.

▼ 남지원 젠더데스크 somnia@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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