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보려고 달려왔다 성철아!” 눈물로 달린 제주소방 동료들
故 임성철 소방장 2주기 “성철아, 또 보게 잘 쉬고 이서”

"대역죄인"
바로 눈앞에서 동료를 잃은 소방관의 가슴 깊이 새겨진 죄책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애통한 유가족이 있기에 슬퍼할 자격이 없다던 그는 자신을 대역죄인이라고 칭했다.
2023년 12월 1일 새벽, 누구보다 사명감과 열정이 가득했던 청년 소방관이 불의의 사고로 하늘의 별이 됐다. 동료들로부터 '똥쌔기'라고 불리던 임성철 소방장은 그렇게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누군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혔다. 이랬더라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뭔가 할 수 있었던 방법은 없었을까. 허나 분명한 건 그들 잘못이 아니다.
[제주의소리]는 표선119센터 근무 중 사고로 순직한 고(故) 임성철 소방장을 기억, 추모하는 '메모리얼 트레일런'과 함께했다. 순직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려는 움직임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1일 오전 5시, 옛 표선119센터가 모처럼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2년 전 이곳에서 출동한 뒤 돌아오지 못한 故 임성철 소방장의 마지막 근무지다.
동료 소방관들은 그의 생애 마지막 출동 사이렌이 울린 표선119센터에서 출발해 그가 잠들어있는 국립제주호국원까지 달리기 위해 장비를 점검하고 몸을 푸는 데 여념이 없었다.
주자들은 개인 러닝 장비를 비롯해 어둠을 밝혀 안전을 확보해 줄 헤드랜턴과 후미등도 갖췄다. 또 기억과 추모를 잇는다는 의미를 담아 활동 측정 기기를 부착한 배턴도 마련했다.


이들이 달리는 구간은 총 55km로 주자 중 4명은 풀코스를 달렸고, 나머지 9명은 1조와 2조로 나눠 번갈아 달렸다. 코스 사이사이 회복을 위한 부스도 마련됐다. 주자들은 파스를 뿌리거나 테이핑을 추가해 부상을 방지하고 간식으로 체력도 보충했다.
달빛에 의지해 도로를 달렸던 이들은 서서히 밝아지는 하늘 아래 사려니숲길과 한라생태숲으로 이어지는 산악로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이어 관음사탐방안내소에 도착한 뒤 풀코스를 비롯해 모든 주자들은 마지막으로 국립제주호국원까지 함께 뛰었다.

제주호국원에 도착한 뒤 땀을 씻어내고 복장을 다시 갖춘 이들은 4묘역에 안장된 故 임성철 소방장 앞으로 가 인사를 건넸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던 약속처럼 뜨겁게 달려 고인을 만나러 온 이들의 얼굴은 달아올랐다. 묵념과 헌화에 나서면서는 끝내 눈물을 훔쳤다.
진행을 맡은 임승범 씨는 "우리는 함께 걷고 뛰고 기억했다. 꽃은 시들어도 기억은 시들지 않는다. 오늘 마음이 사라지지 않길,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임성철 소방장이 남긴 용기만큼은 가슴에 오래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 소방장과 지난 2021년쯤 성산에서 함께 근무했다는 아라119센터 이석훈 소방위는 "순직한 분들 덕분에 남아있는 동료들이 조금은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성철이한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뛰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날 행사에 앞서 계획을 세운 119특수대응단 임홍식 소방장과 기획에 힘을 보탠 김유택 소방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 소방장은 고인 바로 옆에서 화재를 진압했던 소방관이다.
순직한 임성철 소방장을 기억하기 위한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된 것은 동호회 대표인 임홍식 소방장이 평소 트레일 러닝을 함께하던 김유택 소방장에게 조심스럽게 연락하면서다.
동호회 대표를 맡은 임홍식 소방장은 임성철 소방장 2주기를 맞아 딱딱한 추모식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들고 싶어 김 소방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인 바로 옆에서 사고를 목격한 당사자였기 때문에 임 대표는 조심스러웠다. 사고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 김 소방장은 '기억'하자는 의미에 공감, 함께 달리기로 결정했다.
누군가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일 수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잊혀서는 안 되는 희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 해 동안 사로잡혀 있었던 죄의식을 토해내는 길이기도 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아들 같은 이들의 고통을 짐작하듯 "걔 운명이 거기까지인가 보다"라고 했다.
평생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죄책감. 그런 그에게 운명이 그렇다는 말을 계속해서 전하며 위로한 유가족. 그는 그렇게 메모리얼 트레일런을 기획하게 됐다.
"소방관은 죽어야 영웅이 된대."


김 소방장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살가운 후배였다. 어머니께 들어보니 딸 같은 아들이었다고 한다"며 "인사이동에도 2번이나 같은 팀에서 근무하며 센터 적응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덕분에 마음이 많이 놓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사고 직전에 차를 샀다고 좋아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업무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는 둘 다 게임을 좋아해 e스포츠 경기를 보며 응원도 했다"며 "일을 섬세하고 꼼꼼하게 했다. 모르는 건 당당히 잘 물어봤다. 제주말로 똥쌔기 같은 아이였다"고 말했다.
또 "성철이가 있던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 그러다 다른 곳에서 불을 끄던 중 그에게 사고가 났다"며 "내가 죽을 수도 있었던,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었던 사고였다. 나는 아직도 12월 1일에 갇혀있다. 잠깐의 안도감은 죄책감과 혐오감이 돼 나를 향했다"고 눈물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번 일로 모두가 안전을 생각하고 고인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며 "행사가 유가족에게 힘든 기억을 꺼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떠난 아들을 기억해준다는 것 자체가 고맙다고 하셨다. 그렇게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임 대표는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었던 사고였다. 또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이름 석자를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게 행사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사고 이후 김 소방장은 제주소방안전본부가 신설한 보건복지팀을 통해 트라우마 등 치료를 받고 있다. 소방당국은 그가 온전히 치료만 받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소방장은 "덕분에 서류 절차를 신경쓰지 않고 치료만 받는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한라병원과 연계해 그에 대한 모든 행정적 절차를 알아서 처리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 등으로 고통을 겪는 다른 소방관들을 위해 힐링 프로그램이나 찾아가는 심리상담 등 소방대원의 정신건강을 위한 방안들을 만들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