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 윤석열과 권력층 도둑들’ 또 나라 삼킬 수 있다

한겨레 2025. 12. 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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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365일
[기고] 12·3 내란의 본질과 과제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0월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시가행진 중 세종대왕상 앞 관람 무대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 간뗑이 부어 남산만 하고 목질기기 동탁 배꼽 같은 / 천하흉폭 오적의 소굴이렷다 / …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에 이르렀것다.”

김지하 시인이 1970년에 내놓은 시 ‘오적’(五賊)의 한 구절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이상이 지난 이 시대에, 우리는 윤석열이라는 왕초에 딸린 권세 있는 도둑들이 어떻게 제각각 재주를 부려 내란의 꽃궁궐을 짓고 영화를 누리려 했는지 보고 있다.

12·3을 대통령의 계엄 선포 행위로만 보고 그 위헌, 위법성 여부만 따지는 것은 문제를 사법적 사안으로 은폐·축소하는 것이다. 12·3은 군사, 사법, 행정 권력과 대중 선전 선동이 결합된 총체적 체제 전환 시도였으며, 이때 체제 전환이란 바로 민주 헌정 체제의 전복과 전시 독재 체제의 수립을 뜻한다.

대통령은 최정예 군 병력을 동원해서 대한민국의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표적으로 삼아 공격했고, 계엄사 포고령은 국회·정당·지방의회를 모두 폐지하고, 시민의 집회·결사를 금지하며, 군이 신문·방송을 통제하는, 북한과 같은 완전한 독재 체제를 천명했다. 나아가 반란 세력은 독재 수립에 걸림돌이 되는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사회단체 지도자들을 ‘수거’할 계획이었고, 북한에 전쟁을 도발하여 ‘노아의 홍수’ 같은 항구적 전시 상황을 만들어 군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려 했다.

이 모든 일은 결코 단지 윤석열이라는 나쁜 대통령, 또는 김용현과 같은 몇몇 심복들에 의해 일어날 수 없다. 그것은 군, 검경, 정보기관, 정부 부처들이 협력하는 거대한 ‘시스템’으로만 작동할 수 있고, 그 시스템의 작동에는 다수의 국가기관 지도부의 참여가 필수다. 대한민국의 광범위한 엘리트 집단이 민주국가 내에 독재국가의 그림자 내각을 구축하는 이중 국가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주목할 점은 쿠데타 시도에 대해 국가기관 지도부 내에 ‘수평적 균열’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고, 오직 권력구조의 상층과 하층 간에 ‘수직적 균열’만 있었다는 것이다. 즉, 국가의 무력 수단을 쥐고 있는 군 장성, 국무위원, 검찰, 경찰 수뇌부에 쿠데타에 대한 적극적 반대가 전혀 없었던 데 반해, 군의 현장 지휘관과 병사들의 상황 판단, 무엇보다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 덕분에 독재화를 막을 수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9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 뒤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대통령실 참모진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처럼 국가기관 파워엘리트 내에 쿠데타에 대한 완전한 순응은 결코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일이 아니다. 1960년 4·19 혁명 때 경찰 총격과 정치깡패 폭력으로 많은 시민과 학생이 사망하고 시위가 격화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지만, 군 지휘관들이 무력 진압을 거부한 것이 이승만 하야의 큰 요인이었다. 1979년 12·12 쿠데타 때도 육군참모총장, 특수전사령관, 수도경비사령관, 육군본부 헌병감 등 상당한 군 지휘부가 반란에 맞섰다. 쿠데타는 성공했지만, 저항 없이 달성된 것이 아니었다.

최근 해외 사례들과 비교해봐도 12·3의 가공할 위험성이 뚜렷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패배에 불복하여 부정선거론을 선동했고, 흥분한 수천명의 지지자가 의회에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브라질에서도 2022년 대선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보우소나루가 선거 패배에 불복하여 부정선거론을 선동했고, 그 지지자들이 의회와 정부 건물을 점령하는 폭동을 벌이는 사이에 친위쿠데타를 모의하고, 룰라 대통령 당선자의 암살까지 계획했다.

그러나 두 사례 모두 군과 정부 수뇌부의 상당수가 쿠데타 참여를 거부하여 군사력의 동원은 실행되지 못했다. 반면, 한국에선 국가 지도부 내에 억제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최근 발전된 민주주의 나라 중 최초로 군경의 무력이 동원된 쿠데타가 실제 감행되었다. 윤석열이 독재를 꿈꾸었다는 것보다 중대한 사실은, 그 꿈을 함께 실현할 수많은 조력자가 정부 내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계엄 해제 후에도 대통령 대행과 법원, 검찰 등 국가기관 엘리트들이 헌정의 불안정을 지속시켰다.

이들의 결속을 가능케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강력한 세 가지 접착제의 혼합으로 보인다. 첫째는 극우적 신념이다. 내란의 주모자들은 그 어떤 이념과 사상도 없었지만, 분명 민주주의, 인권, 평등과 같은 가치를 깊이 증오했다. 둘째는 엘리트 의식이다. 서울 법대, 육사 출신 집단 내에 마치 자신들이 마땅히 국민 위에 군림할 자격이 있는 듯 망상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셋째는 사사로운 충성이다. 친윤파, 충암파, 용현파, 군 근무연 같은 인맥과 위계가 국가의 법규와 공식 지휘 체계를 무력화했다.

여기에 더하여, 승진과 출세의 욕망, 상관 지시에 대한 맹목적 복종, 보복에 대한 두려움, 관료조직 내 역할의 기계적 이행 등의 동기가 추가되면 조력자의 폭은 훨씬 더 넓어지게 된다. 12·3 쿠데타는 이처럼 잔인한, 오만한, 추악한, 그리고 크고 작은 허망한 동기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사태 때 불법적으로 병력을 동원했던 이상현 특전사 1공수여단장(앞줄 오른쪽부터), 김정근 3공수여단장, 안무성 9공수여단장 등이 2024년 12월10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 도중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등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그렇게 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법과 제도의 민주주의가 확대되었고 민주적 의식과 역량을 갖춘 시민들도 많이 늘었지만, 강력한 공적 권위와 무력을 보유한 국가기관 고위층들의 수준은 오히려 수십년 전보다 못하며, 그저 하나의 클래스(계급)로서 특권의식과 욕망만 있는 타락한 사적 집단이 된 것 같다.

12·3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그 거대한 반란의 구조가 불과 1년여 만에 구축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우리 민주주의가 모래성처럼 허술하며, 한때는 ‘눈떠보니 선진국’ 같다가도 야만적 세력이 정권을 획득하고 국가권력을 장악하기만 하면 급속히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취약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내란 종식의 본질은, 부패한 엘리트 카르텔 혁파와 이를 통한 민주주의의 진정한 공고화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내란의 구상에서 실행까지 체계와 과정을 철저히 규명하고, 민주 헌정을 공격하는 행위에 가담하는 것은 후과가 뒤따른다는 교훈을 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독재를 거부하는 것은 대가가 있지만, 독재에 협력하는 것은 대가가 없다고 학습하게 된다.

그러나 더 깊은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파워엘리트 집단이 사회에서 분리된 특권 세력이 되어 있는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 권력과 자원을 분산하고, 구성원의 다양성을 높이며, 사회에 대한 개방성을 높여야 한다. 그들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어야 한다. 특히 군, 검찰, 경찰, 국정원 등 무력을 보유한 국가기관의 교육과 정훈의 내용과 주체, 내부 문화를 개혁해야 한다. 헌법을 명확히 이해하고, 오직 헌법에 충성하는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을사오적’을 빗대어 안국선이 1908년에 쓴 ‘금수회의록’에서 짐승들이 조롱한 인간 군상의 환생을 우리는 보았다. 성조기 흔들며 외세를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리려는 호가호위(狐假虎威, 외세를 등에 업고 뽐냄), 세계정세는 일도 모르면서 ‘아메리칸 파이’나 불러 제낀 정와어해(井蛙語海,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말함), 언제는 상식과 공정을 말하더니 나중엔 국민에게 총을 들이댄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음), 겉으론 점잔 빼는 정승들이 속으론 도덕도 신조도 없이 똥만 든 무장공자(無腸公子, 창자 없는 사람), 출세·승진·당권 같은 사익이나 쫓아다닌 영영지극(營營之極, 먹이 찾아 부산스럽게 날아다니는 파리), 궁중 밀실에서 돈과 권력을 탐하는 욕망으로 사통한 쌍거쌍래(雙去雙來, 문란하고 타락한 부부 윤리)가 대한민국 엘리트의 민낯이다.

시민들이 이 불의한 권력을 이겼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빛의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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