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바꾸는 이야기…‘시시콜콜 시골잡지 월간 옥이네’[포토다큐]

‘시시콜콜 시골잡지 월간 옥이네’에는 별게 다 기사다. 전동카트를 타고 새참을 배달하는 어르신, 읍내 건물 사이에 텃밭을 가꾸는 세탁소 주인, 페루로 성인지교육 봉사를 다녀온 지역 청년과 20년 전 지역정당 창당을 꿈꿨던 서점 주인까지. 전국 유일의 군 단위 월간지에는 인구 4만 8000여 명 충북 옥천군 주민들의 이야기가 살뜰하게 담겨 있다.
옥이네는 옥천의 사회적기업 ‘고래실’에서 발행한다. “3년을 버틸 수 있겠냐”는 우려 속에서 2017년 7월부터 시작한 옥이네는 9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며 지난 10월에 100호를 발행했다.


“어휴 어르신, 많이 사셨네요. 지금 버스 기다리시는 거예요?” 김장철을 맞아 장을 보러온 주민들로 붐비던 지난달 15일 ‘옥천 오일장’ 부근의 버스정류장에서 옥이네 김혜리 기자(34)가 어르신들에게 살가운 말을 건넸다. ‘농촌 이동권’을 취재하며 오일장을 거닐던 김 기자는 걸음을 멈추고 상가 앞에 주렁주렁 달린 곶감용 감을 사진에 담았다. “이거 어르신이 너신 거예요?” 카메라를 들었던 김 기자가 금세 가게주인과 말을 나눴다. 김 기자가 말했다. “길 가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으면 걸음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눠봐요.” 출근길에 귀여운 텃밭을 마주하며 세탁소 주인 배수은씨를 만났고, 사철나무가 멋들어지게 벽을 타고 자란 대문이 있는 집에서 35년간 정원을 가꾼 배은식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옥이네의 기사는 이렇듯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풍경에서 시작된다.


“할 이야기가 없다고 오지 말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럴 땐 무작정 한 번 찾아가 봐요.” 반백 년 동안 옥천 읍내에서 자리를 지켰던 ‘한일사진관’을 취재할 때도 이혜빈 기자(28)는 무작정 사진관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야기할 게 없다”던 주인 조복현씨는 온종일 살갑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기자에게 어느새 말을 걸었다. “이런 것 본 적 있어요?” 조씨는 모나미 볼펜 몸통에 낀 흑백사진 잡티 제거용 연필 두 자루와 흑백 사진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30여 년 전 20명이 넘는 유치원생을 소형차 프라이드에 태우고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으로 향했던 조씨의 사진관 이야기는 ‘동네 사진관 특집’ 첫 기사로 실렸다.


누군가의 삶을 충실히 기록하는 일은 기자들에게도 아련한 경험으로 남는다. 남편과 사별한 후 김정순씨는 “배우지 못한 한”으로 복지관에서 서예를 배웠다. 반장을 놓치지 않았던 어린 시절부터 결혼 후 겪은 한국전쟁, 묘목을 접붙이며 8남매를 키운 이야기 등 그의 삶은 옥이네 2022년 2월호 여섯 페이지에 살뜰히 기록됐다. 안타깝게도 김정순씨는 그해 6월 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낯선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던 어머님이 떠오를 때면 아직도 뭉클해요.” 김정순씨의 자녀들은 그를 취재했던 한수진 기자(28)를 찾아와 “어머니의 삶을 조명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구태여 거대 담론을 좇지 않는다’는 옥이네지만, 건강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진다. 질문들은 지난 100개월 동안 잡지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대답을 내놓았다. 길고양이 특집 기획을 통해 ‘옥천 마을고양이 보호협회’가 생겼고, 군의회에서 길고양이 보호 조례안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은 만 13~18세 청소년에게 바우처를 지급하는 ‘옥천 꿈 키움 바우처’로 이어졌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역사회의 변화다.


“취재를 하면 주민분들은 ‘내가 뭐라고’라며 손사래를 치세요. 그런 분들께 옥이네 기사가 ‘그래도 내 삶이 활자로 기록될 정도로 가치가 있구나’라는 감정을 선물로 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박누리 편집장(40)에게 잡지를 만들며 보람된 순간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바라보고,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는 독자의 반응에서 ‘이 일을 잘하고 있구나’하는 믿음도 얻는다.



이번 달 월간 옥이네의 주제는 ‘농촌 이동권’이다. ‘역사에 남은 1%가 아닌 역사를 만든 99%를 기록한다’는 월간 옥이네의 다짐처럼 옥이네 기자들은 읍내 버스정류장과 면순환버스 등 주민들이 있는 현장으로 향한다.

사진·글 권도현 기자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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