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韓美 외교 장관의 상반된 기억

지난달 17~18일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과 강경화 주미 대사가 하루 차이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2018~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상 첫 미·북 회담 조율에 관여했다. 하지만 둘의 기억은 무척이나 상반됐다.
문재인 정권 첫 외교 장관이던 강 대사는 18일 워싱턴 간담회에서 “미국과 긴밀히 소통하며 우리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지지를 계속 확보해 나가겠다”면서 “미국과 함께 ‘피스 메이커’와 ‘페이스 메이커’로서 남북 대화와 미·북 대화의 여건이 성숙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9년 6월 ‘트럼프-김정은-문재인’ 남북미 정상이 한자리에 모였던 판문점 회동을 재연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재명 정부 첫 주미 대사로서 정권 의제에 충실히 발맞춘 계산된 발언이었다.
반면 하루 전날 간담회를 연 폼페이오의 현실 인식은 강 대사와 정반대였다. 그는 “김정은을 핵 포기로 설득할 ‘당근’은 이제 없고, 대부분의 ‘채찍’도 다 사용해 봤다”며 “제네바 합의, 6자 회담 등 대북 협상 역사를 돌이켜보면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북핵 폐기가 목표라면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허락 없이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며 “김정은과의 대화는 흥미롭긴 하지만 실질적 가치는 없다”고 했다. 북핵을 해결하려면 김정은이 아닌 시진핑과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8년 트럼프 1기 첫 CIA(미 중앙정보국) 국장 신분으로 평양을 극비리에 방문해 미·북 회담 개최를 논의한 폼페이오는 김정은이 처음 만난 서방 최고위급 인사였다. 폼페이오의 분석만이 옳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는 지난 협상들의 한계와 냉혹한 국제 역학을 직시했다. 반면 강 대사의 발언은 정권의 기조에 맞춘 반복적 수사에 가까웠다. 남북·북미 대화의 “여건을 성숙시키겠다”는 말은 2018~2019년에도 수없이 등장했지만, 그 대화가 결국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은 늘 공허하게 남았었다.
이벤트 자체가 외교의 목표가 돼버리는 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다. 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장면은 정치적으로는 아름다웠지만, 그 이벤트가 북한의 핵 개발을 늦춘 적도, 북 주민의 삶을 개선한 적도, 한국의 안보 환경을 실질적으로 바꾼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대화의 장면 연출에만 계속 매달린다면, 미국 주도의 북핵 협상 구조 속에서 다시 한번 들러리 역할에 머무를 뿐이다.
필요한 것은 대화 자체의 성사가 아니라, 그 대화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다. 폼페이오가 강조한 현실적 제약을 외면한 채 다시 이벤트 외교에만 몰두한다면, 문재인 정권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 외에 다른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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