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도 유학생도 시국선언 힘 보탰다 [시민이 지켜낸 민주주의·(中)]

고건 2025. 12. 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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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소 느낀 ‘연대’의 필요성

하남 고교생 배양, 당시 교내 모집 주도
“촛불집회 경험, 그때의 힘 알기에 나서”
작년 청소년 시국선언에 인천·경기 과반
9천㎞ 떨어진 독일서도 학생끼리 뭉쳐
“떠나있어도 한국 정치 관심 여전” 회상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맞아 미래세대 주역인 학생들이 경인지역 곳곳에서 시국선언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다. /경인일보DB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맞아 광장에 나선 건 2030 여성 뿐만이 아니었다. 미래세대 주역들도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광장에 나섰다.

■ “청소년도 국민이다” 미래 세대 의지 표출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맞아 미래세대 주역인 학생들이 경인지역 곳곳에서 시국선언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다. 사진은 인천여고 학생들이 시국 선언을 위해 거리로 나선 모습. /경인일보DB


청소년들은 투표권이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주요 정치적 상황에서 조명받지 못했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때는 달랐다. 학교 곳곳에서 벌어진 시국선언은 “청소년도 국민이고, 우리의 기본권을 지키겠다”는 미래 세대의 의지를 표출하는 계기가 됐다.

하남시의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 다니는 배효재(18)양 역시 그랬다.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배양은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교내에서 시국선언을 주도했다. 네이버 포털의 학교 공식 카페 게시글을 통해 참가 인원을 모집했고, 전교생 3분의 1가량이 모여 함께 참여했다.

내년이면 성인이 되는 배양은 “다음에 자라날 아이들에겐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고 당시 시국선언을 진행한 이유를 밝혔다. 본격적으로 입시에 전념해야 할 시기였지만,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이 억압당할 뻔한 상황에 시민으로서 ‘연대’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2016년도 겨울, 촛불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당시 꽤 어린 나이였지만, 사람들과 연대한 경험은 저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그리고 몇 년 후 비상계엄이라는 비슷한 상황이 오자 그때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이면 아주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 힘을 보태고 싶었다.”

지난해 5만명이 이름을 올린 청소년 시국선언에는 인천·경기 지역 청소년 2만1천932명이 포함돼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인천에선 인천여자고등학교와 인천성리중학교 등이 시국선언문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 먼 타국에서도 “힘 보태자” 국제사회에 위기 알린 유학생들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맞아 미래세대 주역인 학생들이 경인지역 곳곳에서 시국선언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다. 사진은 독일 튀빙겐 대학 학생들이 시국 선언을 위해 거리로 나선 모습. /경인일보DB


“한국에서 큰일이 난 것 같아.”

지난해 12월 3일 유학생 이모(여·30)씨는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를 9천㎞ 떨어진 독일에서 지켜봤다. 유튜브와 SNS 등 온라인으로 소식을 전달받을 수밖에 없던 이씨는 한국에서 매일 관련 집회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시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튀빙겐 대학에선 이씨를 포함한 유학생, 교환학생 등 한국 교민 수십명이 ‘시국선언문’을 작성했다. 튀빙겐 대학은 독일에서 한국학과 규모가 큰 대학 중 하나다.

일주일 뒤인 지난해 12월 14일 유학생들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 표결을 앞두고 시국선언문 지지 서명을 진행했다. 50명 가까운 학생들이 참여했고, 절반 이상이 독일 현지 학생들이었다.

그는 “어떠한 이유를 생각해도 계엄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있다면 집회에 나가서 힘을 보탰을 텐데, 독일에 있어서 집회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것에 갈증이 컸다. 독일 현지에 상황을 알리고 한국에서 집회하시는 분들께 힘을 작게나마 보태고자 했다”며 시국선언에 나선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계엄 후 1년 현재의 삶이 많이 변화했다고 밝혔다. 3년 이상 유학 생활을 하며 잠시 한국을 떠나있다고 생각했지만,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희망과 정치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계엄을 겪으면서 단지 일상의 안정을 원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중도의 사람들이 역시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내가 소속된 집단에서도 일반적으로 정치적 성향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데, 계엄은 ‘아주 잘못된 것’이고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이 공유한 집단 내 사람들에게 정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뭉치게 해줬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타국에 있다는 이유로 주요 정치 참여자에서 소외된 유학생들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위기를 촉발한 비상계엄에 적극 저항했다. 비상계엄 사태 당시 전 세계 16개국 138개 이상의 대학교에서 한인 유학생과 교민들이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

# 광장서 외친 의제들, 미제로 남아

여러 계층서 여성인권·장애 ‘의견 표출’
“내란세력 처벌·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연대한 우리들의 구호는 현재진행형”

■ 다양한 의제 발현된 광장… 연대 이어가야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맞아 미래세대 주역인 학생들이 경인지역 곳곳에서 시국선언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다. 사진은 아주대학교 학생들이 시국 선언을 위해 거리로 나선 모습. /경인일보DB


포고령 1호에 적힌 각종 집회, 결사, 정치활동의 금지와 언론과 출판 등 표현의 자유 통제라는 내용들은 가장 열악한 계층의 기본권부터 침해될 것이라는 불안을 엄습하게 했다.

그 결과, 비상계엄 사태에 주역이 된 계층들은 여성 인권, 장애, 청소년, 환경 등 다양한 의제를 광장에 나와 표출했고, 그 목소리들은 이전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년이 지났지만, 광장의 주역들은 후폭풍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시 외친 의제 실현을 위해 연대하고, 혐오와 갈등의 정치를 줄여야 한다는 게 이들이 주장하는 남은 과제다.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지난해 광장에서의 투쟁은 다른 의제에 대한 공감대와 연대의 폭을 넓혔다”며 “하지만 계엄 사태가 발생한지 1년을 앞둔 현재 우리의 구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요구한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제정되지 않았고, 내란 세력에 대한 처벌과 극우 정치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여전하다. 연대를 토대로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정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12·3 계엄 당시 왜 환경단체가 집회에 나오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환경단체의 목표는 모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고 이 토대에는 민주주의가 있다”며 “인권, 노동 등 다른 운동의 흐름과 환경 운동은 모두 연결돼 있고, 하나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모두 무너진다는 연대를 이번 사태로 다시 배웠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환경 정책이 적절한 방향성을 가졌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맞아 미래세대 주역인 학생들이 경인지역 곳곳에서 시국선언을 통해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다. 사진은 인천대학교 학생들이 시국 선언을 위해 거리로 나선 모습. /경인일보DB


이광국(50) 안남고등학교 교사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현직 장학사로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인천시교육청에 장학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1인 시국선언 직후 일부 단체들로부터 정치 중립을 위반했다며 고발을 당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교사는 “뜻밖에 학교 현장은 계엄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교육으로 인한 학생들의 입시 고통은 내란 극복이라는 사회적 민주화와 별도로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사회와 교육의 변화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 정치인들이 민심을 정확히 읽고 그 민심에 의해 일하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고건·정선아 기자 gogosi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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