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역경 극복, 수많은 히트곡 남긴 정상급 가수
록발라드에서 트로트로 전향, 제2 전성기 누려
자작곡 ‘보약같은 친구’ 성인 가요 51주 연속 1위
제주인으로 자부심 갖고, 고향행사 재능기부도 열심

서울에 올라와 결혼을 하고/ 반지하 세 번 이사하면서/ 힘들게 살아온 나의 인생아/ 오늘도 고생 많았다/ 서울살이 세월만큼/ 눈물만 늘어/ 고향도 가고 싶고/ 친구도 보고 싶네
소주 한잔 마시고 싶다/ 산 넘어 산 산 넘어 산/ 살만하면 힘든 일이/ 잘 버텼다 잘 버텼어/
사랑한다 멋진 시몬아
제주 출신 트로트 가수 진시몬(56)이 최근 발표한 신곡 '산 넘어 산'의 1절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다
진시몬은 1969년 10월 29일(음력)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에서 1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가 10살 되던 해 아버지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삼십대 초반의 나이에 홀로된 어머니가 계란장사, 봉투붙이기, 구멍가게 등을 하면서 억척같이 3남매를 키워야 했다.
그는 "구멍가게 진열대 밑에 부엌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앉은 채로 부엌을 오가며 음식을 하다보니 양쪽 고관절 수술을 하셔야 했다"며 "나이를 먹고 보니까 어머니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이 노래에서 83세 고령의 어머니에 대한 그의 애틋한 마음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가수로 데뷔하다
진시몬이 노래를 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제주사대부고에 입학한 후 노래가 좋아서 중창단과 합창단을 하다가 '미스티(Misty)'라는 그룹사운드 활동도 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제주대학교(법학과)에 진학해서도 '앤틀러(Antler)'라는 그룹사운드에 가입, 대학축제 때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강변가요제 공고를 보고 참가를 결정한 것이다.
그는 "대학가요제는 도 대표 한 팀을 뽑아서 출전하기 때문에 경비가 지급되지만 강변가요제는 대학생이면 누구든지 나갈 수 있어서 자비로 참가해야 했다"며 "그룹사운드로 나가려고 하니까 경비가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보컬인 저만 나가게 됐다"고 회상했다.

▲역경과 고난의 연속
진시몬은 데뷔곡 '낯설은 아쉬움'이 크게 히트하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지만 1991년 '바다를 사랑한 소년'을 발표 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래를 잠시 중단해야 했다.
그런데 군 복무를 마치고서도 가요계 복귀가 여의치 않으면서 공백기가 길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의 생활도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해서 전 재산 2000만원을 갖고 반지하 전세를 살았다"는 그는 "1년 만에 수도관이 동파돼 물난리가 나서 이사하고, 세 번 이사하는 동안 전세금 중 1000만원을 까먹어 월세로 바꿔야 했고, 쌀이 떨어지면 친구에게 신세를 지면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그는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나이트클럽 밴드 생활을 했고, 아내는 저녁 타임 커피숍에서 알바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2년 정도의 고생 끝에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그에게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한 친구하고 칫솔 살균기와 치약 압축기를 만드는 사업을 했다가 사기를 당해 7억원 정도 빚을 진 채 부도를 맞은 것이다. 그의 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됐다.
"돈을 벌기 위해 낮 12시 라이브카페부터 밤업소까지 총 12군데, 하루에만 8군데의 무대에 올라야 했다"는 그는 가수 공백기 이후 7년 만인 1998년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 성공시대 열다
진시몬은 대학 그룹사운드 시절부터 록발라드를 했다. 그의 데뷔곡 '낯설은 아쉬움'도 록발라드다. 그런데 그가 친형님처럼 모시는 김범룡 선배 가수의 조언으로 트로트로 전향한 것이다. "김범룡 형님이 저에게 세미트로트나 트로트 장르가 맞을 것 같다고 하면서 1996년 '애수'라는 곡을 주셨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진시몬이 트로트 인기 가수로 성장하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 후 '애원', '둠바둠바', '하얀면사포', '남자이니까' 등의 히트곡이 이어졌다.
그는 또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후 1998년 말 경기도 일산에 제주해산물 식당 '제주바당'을 개업했는데 이 또한 대박이 났다. 제주에서 직접 공수한 싱싱한 해산물 갈치, 홍해삼, 오븐자기, 소라 등이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보약같은 친구'로 제2 전성기
진시몬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보약같은 친구'를 말한다.
그는 "보약같은 친구는 저에게 터닝포인트가 된 노래"라며 "이 노래를 부르기 전과 부른 후로 삶이 많이 바뀌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노래는 2015년 10월 발매된 싱글 앨범으로 진시몬이 직접 작사·작곡했으며, 성인 가요차트에서 51주(1년) 동안 1위를 차지했다.
또한 2017년 전국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린 곡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휴게소 같은 곳을 갔을 때 '안동역'과 함께 보약같은 친구가 방송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들으면서 제 노래가 떴다는 실감을 많이 했다"며 "특히 공연장가면 제가 안 불러도 관객들이 불러줄 정도가 되니까 국민가수가 된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좋아서 만든 음악"이라고 자신의 음악을 평가한 후 "김범용 형님이 67세니까 저도 앞으로 10~15년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오다
진시몬은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후 식당도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자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12년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
아들들을 1년씩 어학연수를 보냈는데 애들이 좋아하자 필리핀으로 유학을 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처와 의견이 엇갈렸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필리핀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현지에서 의류사업을 하던 둘째 아들이 지난해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자식을 먼저 잃는 슬픔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지금은 잘 지내고 살만하니까 둘째 아들이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먼저 가버렸다"며 깊은 한숨을 내뱉은 후 "그나마 국제변호사인 큰아들이 엄마, 아빠 걱정도 많이 한다"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렸다.
▲남다른 애향심
진시몬의 고향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새로 차를 뽑을 때 차 번호를 '1950'으로 선택하려고 일부러 기다렸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제주에) 한번 구경 오세요'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1950은 한라산 높이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