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썼던 감산 전략, 석유화학서도 통할까 : 감산의 경제학
반도체 감산 2년 후 가격 급등
AI 붐과 맞물려 슈퍼 사이클 임박
감산, 점유율 높은 독과점기업 특권
이익 기여도 가격↑> 비용↓> 판매↑
사업구조 재편 나선 석유화학
에틸렌 공급량 감축 나서
반도체와 달리 비용절감책
한은 “투자 3.5%씩 늘려야”
석유화학 업계가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다. 2023년 반도체 기업들이 감산을 통해 제품 가격을 상승시켜 수익성을 개선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구조조정 기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방향을 전환하려는 것도 같다. 반도체 산업처럼 석유화학도 반등에 성공할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23년 10월 19일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방문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1/thescoop1/20251201180818013boyx.jpg)
한국은행은 지난 11월 27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 구조 재편을 다뤘다. 보고서는 "2022년 이후 국내 생산 및 가동률은 2020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이렇게 전망했다. "수출 물량은 소폭 증가했지만, 수출 단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채산성이 악화하고 있다. 정부의 구조 재편으로 2026년 산업 생산이 3조3000억~6조7000억원 감소하고, 고용은 2500~5200명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세계 석유화학산업은 7~10년 주기로 글로벌 수요의 둔화와 에틸렌 등 범용 제품 공급 과잉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현상을 겪었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으로 설비를 증설했고, 중국은 핵심 소재 자급률 확대를 위해 설비를 확충하면서 공급 과잉은 전례가 없는 수준이 됐다.
중동 산유국들은 전기차 확산에 따른 오일 수요 하락을 대비한다며 단순 석유정제업에서 고부가 석유화학산업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이 역시 공급 과잉에 한몫했다. 한은은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과 수요 약화가 2020년대 후반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2023년 반도체의 길 2025년 석유화학의 길 정부가 석유화학 기업들에 자체 구조조정과 자구안 마련을 요구한 것은 지난 8월이다. 산업통상부는 과잉 설비 감축 및 수익성 높은 제품으로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를 3대 원칙으로 내세웠다.
석달 후인 지난 11월 24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나프타분해설비(NCC) 운영 체제를 하나로 합쳐 에틸렌 생산량을 감축하는 데 합의했다. 롯데케미칼의 대산공장을 물적분할해 이를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는 구조다.
산업부 사업재편계획심의위원회가 이번 감축안을 60일 이내에 심의하면, 정부가 목표로 한 NCC 감축 규모인 370만톤(t) 중 3분의 1가량인 110만t이 감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 대가로 두 회사에 세제 지원, 상법 특례 등 인센티브, 맞춤형 기업지원 패키지를 제공한다. 에틸렌은 석유화학산업의 기본 화학물질로 합성수지, 합섬원료, 합성고무 등 다양한 화학제품의 중간재를 생산하는 데 기본이 되는 화학물질이다.
![[자료 | 옴디아·카운터포인트·한국화학산업협회·KB증권, 참고 | 반도체는 2025년 2분기, 석유화학은 2024년 기준,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1/thescoop1/20251201180819298stjq.jpg)
석유화학이 범용 제품의 감산을 통해서 가격 상승을 꾀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는 것은 D램 반도체 기업들이 2023년 이후 자체적으로 시행한 감산 정책과 같은 방향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 사상 처음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감산한다고 발표했다.
그후 반도체는 어떻게 됐을까. 2년 만에 다시 슈퍼 사이클에 근접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D램 반도체 가격부터 보자. PC용 범용 제품(DDR4 8Gb)의 지난 9월 평균 거래가격은 2019년 1월 이후 6년 8개월 만에 6달러를 넘어섰다. 신형 DDR5 32Gb 거래가격은 11월 현재 239달러로 두달 만에 60% 급등했다.
반도체 감산전략 깜짝 성공고부가가치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가격 인상에도 품귀 현상을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1월 HBM4 공급 가격을 500달러 중반으로 50%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기업들은 범용 제품은 감산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공급은 늘렸다(D램익스체인지).
물론 석유화학과 반도체 두 산업의 재편 조건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점유율에서 큰 차이가 있다. 에틸렌을 생산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24년 기준 5.7%로 세계 4위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67.8%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33.7%, SK하이닉스가 34.1%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 SK하이닉스가 세계 HBM 공급의 64.0%, 삼성전자가 15.0%를 책임진다.
공급으로 가격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사실 독과점 기업들의 전유물이다. 우리가 석유화학 감산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중국과 일본이 비슷한 시기에 함께 구조조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세 나라가 전세계 에틸렌 생산량의 45%를 차지한다. 한 나라의 두 회사가 세계시장의 70~80%를 점유하는 반도체 산업 정도는 돼야 스스로 감산 결정을 내려도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다.
일반적인 기업 구조조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비용 절감이지 감산이 아니다. 비용 절감의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가격 상승의 이익 개선 효과보다 확연하게 낮다는 사실은 정설에 가깝다. 지금 석유화학 업계가 택한 감산은 가격을 조절할 능력이 없어서 택하는 고육책일 뿐이다.
![여수 국가산업단지에는 중화학 공장이 밀집해 있다. [사진 | 뉴시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01/thescoop1/20251201180820579wakr.jpg)
글로벌 컨설팅그룹 딜로이트는 기업이 비용을 1% 줄이면 영업이익은 평균 6.7% 증가하고, 판매량을 1% 늘리면 영업이익은 3.6% 증가하지만, 가격이 1% 오르면 영업이익은 12.3%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석유화학의 감산은 반도체처럼 확실한 효과를 가져오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한국은행은 감산을 비용 절감책으로 보고, 이 기간을 제품 구조 전환의 기회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감산으로 시설 운영비용 부담을 줄이면, 고부가가치 제품 경쟁력 제고에 매진할 여력이 생긴다"며 "기업들이 3년간 약 3.5%씩 투자를 늘리면, 구조 재편으로 인한 성장 감소분을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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