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타나자 스스로 핸들 꺾었다”…기자가 직접 몰아본 ‘테리안’
디아이씨 자회사 제인모터스 공식 출시
유압식 덤프·리프트에 리모컨 원격조정까지 ‘한 번에’
트랙터와 똑같은 PTO 장착해 농기계로도 변신 ‘만능’
김성문 회장 “내년까지 국내 1만대 판매 목표”
현지 공장 활용해 미국·동남아 등 해외 시장도 동시 공략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디아이씨(DIC)에서 설립한 전기차 제조 회사 제인모터스가 국내 최초 자율주행하는 농업용 전기 운반차 ‘테리안’을 내놓았다. 2019년 내놓은 자체 1t 전기 트럭 브랜드 ‘칼마토’에서 얻은 자체 전동화 기술을 바탕으로 농업용 소형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특수목적 전기 운반차다. 차량이라 부르지만 테리안은 실제 도로를 달리지 못한다. 농도나 농지를 다니는 농업용 운반 차량으로 등록됐다.

지난 21일 대구에 있는 제인모터스 본사에 방문해 테리안을 직접 타봤다. 차가 스스로 움직이다 전방에 사람이나 사물을 인지해 피해 가는 것은 물론 적재함을 기울이거나 높이 올리는 등 기존 전기 운반차에선 한 번도 보지 못한 신기술들이었다.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서 혼자서도 리모컨으로 원하는 곳에 짐을 싣고 차를 보내고 또 부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한상우 제인모터스 이사는 “새 운반차가 기존 농업 운반차보다 월등히 좋아야 구매 수요가 생긴다”며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좋은 출력부터 사용자 편의, 연료비 절감, 자율 주행까지 다양한 장점을 결합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최초 자율주행 농업 운반차
이날 공장 한 바퀴를 돌며 테리안 직접 주행 테스트를 해봤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기능은 자율주행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작동 버튼을 누르자 차가 천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엔진 대신 전기모터를 사용해 소음이나 진동은 없었다.
주행로 전방에 두 사람이 나타나 차를 가로막자 테리안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우측으로 핸들을 꺾어 사람을 피해 지나갔다.
좌회전 상황이 되자 테리안은 빠르게 핸들을 왼쪽으로 돌렸다.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지정해 놓은 10㎞/h의 속도로 천천히 달렸다. 차량 내부에 설치된 센서와 주행 장치가 GPS에 담긴 도로 정보와 장애물 등을 직접 파악한 덕분이다.
이 자율주행 기능은 ‘트위니’라는 자율주행로봇 전문기업의 기술을 접목했다. 천홍석 트위니 대표는 “테리안의 자율주행 기능은 일반적인 자율주행로봇과는 완전히 다른, 국내에선 처음 시도되는 구동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로봇청소기나 식당 서빙 로봇은 자율주행을 위해 먼저 스스로 움직여 자신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 지도를 먼저 그린 뒤 그 경로 안에서 돌아다닌다.
반면 테리안은 사전에 공간 지도를 작성하지 않고 구글맵과 같은 GPS를 활용해 지형을 파악한 뒤 바로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천 대표는 “테리안이 다녀야 할 농지나 농도는 명확한 도로선도 없고 구분도 쉽지 않은 2차원 공간이라 공간 지도를 그리기 쉽지 않다”며 “매일 다른 과수원을 가더라도 GPS 신호로 그곳 지형을 띄워 차량에 입력하면 테리안이 알아서 작업장 지형을 인식해 자율 주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압 덤프&리프트 기능, 과수원 등에 적합
운반 차량의 성능을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적재 공간이다. 테리안 운전석 뒤에 있는 적재함은 최대 480㎏까지 실을 수 있다. 한국농업기술진흥원에 등록된 농업용 운반차 중 가장 많은 적재 중량이다.
단순히 많이 실을 수 있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일반적인 농업용 운반차에 없는 바로 유압 덤프와 유압 리프트를 탑재했다. 차량에서 스마트폰으로 유압 덤프 버튼을 누르자 운전석 뒤에 있는 적재함이 기울기 시작했다. 최대 30도까지 기울어지는 덤프 덕에 손을 쓰지 않고도 적재함에 실었던 물품을 바닥으로 쏟아낼 수 있다. 곡물과 퇴비, 가축 분을 이동하는 데 유용해 보였다.
유압 리프트도 흥미로운 기능이다. 스마트폰으로 버튼을 누르자 적재함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적재함을 타고 90㎝가량 올라가면 차량 높이를 포함해 최대 1m40㎝까지 올릴 수 있다. 160㎝인 사람이 타면 최대 3m에 있는 곳까지 작업할 수 있는 셈이다.
유압 리프트는 사람이 타고 있어도 적재함을 위로 올릴 수 있고 올린 채로 차량을 이동시킬 수도 있다. 회사 관계자는 “사다리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리프트를 올린 상태에서 자율주행이나 원격 조종을 통해 움직일 수 있다”며 “가지치기나 과일을 따야하는 과수 농가에서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바로 딴 과일을 그대로 적재함에 실으면 돼 따로 과일 더미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됐다. 혼자 또는 둘이서도 과수원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어 보였다.
박용국 제인모터스 부사장(인하공전 자동차학과 교수)은 “사실상 자율주행차가 아닌 자율주행 로봇에 가깝다”며 “자율주행에 덤프 기능까지 있어 농가 뿐만 아니라 모래나 시멘트 각종 건설자재를 싣고 짧은 공간을 이동하는 건설 현장에서도 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랙터 들어가는 PTO 장착, 농기계로도 변신
현장에서 본 테리안은 단순 운반차량을 넘어 농기계로 변신할 수 있었다. 차량 후미에 동력인출장치(PTO)를 달았기 때문이다. PTO는 엔진 동력 일부를 후미의 모터로 가져와 파종기와 살포기 등을 돌리는 장치다. 보통 트랙터에 달려있는데, 일반적인 농업 운반차에 설치된 건 테리안이 처음이다.
마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뒤에 캠핑 트레일러를 연결해 다니듯 테리안에도 여러 작업기를 장착해 농사에 활용할 수 있다. 200㎏의 파종기부터 400㎏에 달하는 퇴비살포기와 비료살포기를 달 수 있다. 또 부착형 분무기를 달아 밭 작물 해충도 방제할 수 있다.
이날 회사 관계자들과 실제 논에 가서 테리안에 비료 살포기를 달아 비료를 뿌려봤다. 파워 핸들을 적용해 울퉁불퉁한 논 위에서도 조작이 부드러웠다. 여성 및 노약자들도 쉽게 운전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영구자석 동기모터를 장착해 테리안으로 살포기를 끌고 나가는 힘도 좋았다. 차량 바퀴도 12인치 오프로드용 타이어를 달아 비포장된 논 위를 다니기 수월했다.
무엇보다 파종기를 부착해 씨앗을 뿌리는 트랙터와 비교해도 작업 속도가 빨랐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농업기술진흥원으로부터 농업용 동력운반차 검사를 통과해 농기계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간 129만원 연료비 절감
테리안은 전기차 부스에 있는 별도의 전기차 충전 단자로 충전하지 않아도 된다. 가정에 있는 220V 플러그로도 충전할 수 있다. 완충까지 9시간이면 충전할 수 있다. 저녁에 콘센트에 꽂아 놓고 자면 아침에 일어나 바로 이용할 수 있다.
한번 충전하면 얼마나 쓸 수 있을까. 1회 충전 시 2인승의 경우 65㎞를, 5인승은 90㎞를 갈 수 있다. 한번 충전하면 500㎞ 이상을 달리는 일반 전기차에 비해 연비가 다소 낮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가 아니라 농도나 농지에서 작업용으로 쓰는 운반차다 보니 주행거리가 일반차량만큼 길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테리안의 또 다른 장점은 저렴한 유지비용이다. 경운기는 1㎞당 0.3ℓ의 경유를 사용한다. 올해 9월 1일 기준 경유 단가인 1531원으로 하루 4시간씩 250일 동안 사용했을 경우 220만8440원 정도의 연료비가 들어간다.
100% 전기차인 테리안은 1㎞당 전기 0.255㎾h를 소모한다. 1㎾h당 전기료가 194원에 불과해 하루 4시간씩 250일 동안 썼을 때 드는 연료비는 98만9400원이다. 경운기 대비 연간 약 121만원의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밭 갈기나 경사면 작업 등 흙 저항이 크고 무거운 하중이 걸려 높은 출력이 요구되는 작업을 할 경우 절감 금액이 차이 날 수 있다”며 “그렇더라도 일반 엔진은 화학 에너지를 기계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가 큰 편이지만 전기모터의 경우 부하에 따라 소비되는 전력량 변화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DIC 감속기 기술로 안전까지 신경
제인모터스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 디아이씨가 2016년 설립한 전기차 제조·판매 기업이다. 테리안엔 차량용 감속기 제조 기업인 디아이씨(DIC)의 모든 기술이 들어갔다. 자율주행 기능을 제외한 차체 외관, 모터와 감속기, 브레이크까지 모든 부품을 직접 만들고 완성차 조립까지 원스톱으로 생산한다.
전자식 브레이크 시스템을 적용해 경사가 많은 농지에서도 쉽게 뒤로 밀리지 않아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실제로 테리안은 이날 30도의 경사로에서 한 번도 뒤로 밀리지 않고 부드럽게 올라갔다. 내리막길도 마찬가지였다. 차량 전체를 제어하는 모터 제어기가 있어 가속 페달을 밟은 뒤 떼면 자연스럽게 감속이 된다.
자율주행을 이용하면 내리막길에서도 전자식 브레이크를 이용해 정해놓은 속도대로 감속해 내려간다. 무엇보다 밟는 힘을 증폭시키는 브레이크 부스터가 장착돼 있어 작은 힘으로 밟아도 브레이크가 쉽게 걸린다. 여성이나 노인들이 많은 농가를 배려한 기능이다.
테리안은 화재로부터 안전을 위해 화재 전이 원천 차단 배터리를 달았다. 모회사인 디아이씨가 자체 개발한 소화약제(클로저)를 탑재한 배터리다. 배터리 열폭주 발생 시 클로저가 셀에 주입돼 열을 흡수하고 산소를 차단하는 원리다.

◆내년 국내 1만대, 미국 10만대 판매 목표
김성문 제인모터스 회장은 “내년까지 국내에서 연간 1만대를 판매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전기 운반차 시장은 연간 3000~4000대가량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전기 트럭 시장이 아닌 틈새시장인 농업용 소형 운반차 시장를 집중 공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각오다.
소형 전기 트럭이 융자 및 국고 보조금 지원 대상인 점도 희소식이다. 테리안은 한국기계공업협동조합의 정부 지원 대상 모델로 등록돼 있다. 농가 및 농업인은 농협을 통해 최대 판매가의 최대 80%까지 융자 지원을 받는다. 지방자치단체 읍·면사무소를 통해 신청 시 판매가의 최대 50%에 달하는 농기계 구입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김 회장은 이날 국내 판매와 동시에 해외 판매도 함께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 첫 타깃 국가는 미국이다. 회사 측이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 내 농업용 운반차는 1년에 약 56만대가량이 판매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미국의 농기계 제조 기업 ‘존디어’의 운반 차량 가격은 대당 1만8000달러(2640만원)에 달한다. 제인모터스는 테리안에 자율주행 기능을 넣고도 이보다 낮은 가격을 책정했다.
특히 미국 내 디아이씨 공장과 법인을 활용해 사후관리(AS)까지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을 방침이다. 김 회장은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데다 가격도 저렴하고 AS까지 완벽하게 준비해놨다”며 “자율주행 선진국인 미국에서 10만대까지 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남아 시장도 함께 공략한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디아이씨 장가항 부품 공장에서 테리안 수출을 위한 설비 공장을 짓고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인근 동남아 국가에 5만대를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꼭 농장과 축사, 과수원 등의 농자재 운반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 건설공사 현장이나 어업 현장, 골프장, 공원, 리조트까지 다목적으로 쓸 수 있어 어디든 수요가 있는 제품”이라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테리안 바람이 불게 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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