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얘기만 나오면…20대 남녀와 영포티의 기묘한 삼각관계 ['영포티' 세대전쟁]

신현보/유지희 2025. 12. 1.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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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男·20대女, 일상서 충돌하지만
정치 성향은 유사…일관된 흐름 확인
여러 방면에서 20대 남녀는 멀어져
향후 혼인·출산율에 악영향 미칠 듯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대 간 차이가 크게 발생하는 곳 중 하나가 연애·결혼·자녀관이다. 회식 자리에서 종종 "너는 왜 연애나 결혼을 안 하냐", "애는 언제 낳냐"고 압박하는 영포티 세대와 이를 애써 방어하는 넥스트포티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이러한 세대 차이로 서로를 불편하게 인식하는 20대 여성과 40대 남성이 투표소 안에서는 같은 방향을 선택하는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일상이나 온라인에서는 여러 이유로 부딪히는 두 집단이 정치 성향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결혼·자녀관은 물론 정치 성향까지 다른 20대 남녀는 시간이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서로 불편한 영포티男과 20대女

20대 여성과 40대 남성이 서로를 낯설고 불편하게 인식하는 장면은 일상과 온라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넥스트포티 세대 여성에게 영포티 세대 남성은 성역할·연애관 등이 과거에 머문 집단으로 읽힌다. 반대로 영포티 세대 남성에게 평등을 지향하는 넥스트포티 여성은 낯설고 부담스럽다고 느껴진다. 서로 면전에는 대놓고 하지 못하는 호소가 온라인에서는 쏟아진다.

예컨대 20대 여성 A씨는 직장에 직접 도시락을 싸서 갔다가 차장 선배로부터 "요리 잘하는 여자가 이상형이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보지 않겠냐"는 고백을 들었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저도 모르게 '엄마야!' 하면서 벌떡 일어나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허겁지겁 집에 왔다. 차장님 연락처는 차단했고 회사는 조퇴했다"고 하소연했다. 이 글은 조회수 35만을 기록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반대로 40대 유명 변호사가 '왜 페미니즘을 싫어하게 되었는가'를 제목으로 젊은 여성을 겨냥하는 듯한 영상을 게시해 갑론을박이 일기도 했다. 이 영상에는 "얼굴이 연예인급이어도 '페미'(페미니스트의 준말)면 다르게 보인다", "아무리 예뻐도 페미면 연애 불가" 등 댓글에 수백개의 공감이 붙었다.

◇ "정치 얘기만 나오면 한 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 방안'에 따르면 응답자의 58.2%는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결혼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케이스탯리서치가 2023년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는 정치 성향이 다르면 식사나 술자리도 겸상하기 불편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이러한 경향이 더 강했는데, 특히 20~30세대 여성의 불편함 정도가 남성보다 더 컸다.

남성보다 여성이 대체로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식사/술자리를 더 불편하는 가운데, 2030세대 여성은 또래 남성보다 그러한 성향이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4050세대 남녀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도는 10%포인트 안팎인데 반해, 2030세대 남녀는 2배가량 차이가 났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그런 점에서 정치성향 측면에서 20대 여성과 40대 남성의 조합은 의외다. 영포티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방송인 김어준 씨는 자신의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4050 남자와 2030 여성의 정치적 성향이 가장 비슷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씨의 이런 주장은 통계적으로도 사실에 가깝다. 2022년 제20대 대선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이하 남성 58.7%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를, 36.3%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반면 20대 이하 여성 58.0%는 이재명 후보, 33.8%는 윤 후보를 뽑아 정반대 선택이 이뤄졌다. 40대 남성 61%가 이재명 후보를 선택해 성별·연령별 중 이재명 후보를 가장 많이 표를 준 세대로 드러났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2024년 22대 총선에선 당시 20대 이하 남성은 지역구에서 민주당(46.4%)보다 국민의힘(47.9%)의 지지율이 높았던 반면 20대 이하 여성은 민주당(69.9%)에 사실상 몰표를 던졌다. 이때는 20대 여성 69.9%가 민주당을 택해 성별·연령별 조사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보였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지난 6월 실시된 21대 대선에선 20대 이하 남성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37.2%·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36.9%·이재명 후보 24.0% 순을 기록한 가운데, 20대 이하 여성은 이재명 후보 58.1%·김문수 후보 25.3%·이준석 후보 10.3% 순이었다. 개혁신당과 국민의힘을 합쳐 보수 대 진보로 구분하면 20대 이하 남성은 7 대 3 비율로 보수 지지를 보인 와중에, 같은 연령대 여성은 비슷한 비율로 민주당을 더 지지한 것으로 확인된다. 40대 남성 72.8%가 이재명 후보를 선택해 20대 대선에 이어 또 이재명 후보에 대한 선호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가장 최신인 한국갤럽의 11월 월간 통합 정당 지지율에서도 20대 남성은 국민의힘 33%·민주당 18% 등 순으로 나타났는데, 20대 여성은 민주당 36%·국민의힘 17% 등 순이었다. 4050세대 남성은 민주당 50%대 초중반, 국민의힘 17% 등 순이었다. 유사한 흐름이 계속되는 셈이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김모 씨(28)는 "영포티 세대 원장이 평소엔 완전 가부장적이고 꼰대다. 결혼하면 여자가 출산은 당연히 해야 한다느니, 요즘 연애하는 애들은 책임감이 없느니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곤 한다"면서도 "지난 회식 때 정치 얘기가 나왔는데 나랑 같은 방향이었다. 속으로 '고장 난 시계도 두 번은 맞는다더니' 싶었다. 되게 멀다고 느꼈는데 정치 얘기 앞에서는 갑자기 한 팀이 됐다"고 했다.

◇ 무엇이 그들을 같게 만들었나

선배 세대가 경험한 출산, 육아, 경력 단절에 대한 부담을 흡수한 20대 여성은 취업난을 중심으로 경제적 기회 불평등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평등가족부(구 여성가족부) 유지 혹은 기능 강화, 성범죄 처벌 강화, 고위직 여성 비율 목표제 등을 추진한 민주당 계열 정권에 더 우호적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이 주요 소통 창구로 여기는 엑스(X·옛 트위터)가 20대 여성의 주요 사용 앱이라는 점에서 연관성도 제기된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10월 전체 엑스 이용자 중 20대 여성은 약 24%로 성인 중 가장 많다. 엑스는 1020세대 여성들의 실시간 트렌드 확인과 '덕질' 공간으로 소비되고 있다. 공교롭게 민주당과 젊은 여성의 온라인 활동 무대가 겹치면서 정치적 유사성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반면 20대 남성들은 군 복무 및 가산점 적용 등 논의를 중심으로 보수 성향이 강해졌다. 젊은 남성에게만 강요되는 군 복무가 보상은 없고 형평성에만 어긋난다는 것이다. 실제 친여성 정책이 나왔는지 여부와 별개로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면서 민주당을 향한 젊은 남성들의 반감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 지난 대선 전후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진보 정당 내에서 20대 남성을 '극우'로 규정하면서 이로 인한 반발심도 작용하고 있다.

영포티 세대는 청년기에는 정치적 민주화, 외환위기 후에는 경제적 민주화를 이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민주당 성향을 굳히게 됐다는 분석이 많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청소년기 혹은 청년기를 보냈다. 이때 권위주의적 통치 및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의 주체로 보수 정당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대규모 정리해고, 비정규직 증가, 복지 축소 등을 경험하는 일명 'IMF 사태'로 일컫는 외환위기 트라우마를 가졌다. 이에 따라 사회 안전망 확대와 경제 민주화 등 경제 영역에서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진보적 경제관을 가지게 됐고,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보수 정당과 거리를 두게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 "20대 남녀는 다른 인종" 말까지

온라인 일각에서는 "20대 남녀는 다른 인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20대 남녀가 정치 성향부터 혼인·자녀에 대한 생각도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취업난이 악화하면서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까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과 정서적 거리가 이미 떨어진 혼인율과 출산율에 추가적인 악재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한국갤럽이 2023년 공개한 '결혼과 양육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결혼은 하는 편이 낫다'는 평균 응답은 62%로 나타났다. 20대 이하 남성은 이보다 많은 66%가 결혼하는 게 낫다고 했는데, 20대 이하 여성은 더 낮은 40%만 결혼하는 게 낫다고 답변했다. 결혼 의지가 20대 여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셈이다.

자녀가 필요하다는 20대 이하 남성은 68%, 20대 이하 여성은 45%가 자녀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혼이나 자녀 양육에 대해 젊은 여성이 젊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부정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출처=한국갤럽


20대 이하 여성 절반 이상은 ''결혼을 원하지 않아 혼자 사는 것'(57%)이나 '결혼했지만, 원하지 않아 자녀 없이 사는 것'(50%)이 부럽다고 했다. 이는 20대 이하 남성의 2배 수준이다.

신현보/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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