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계엄군 막은 ‘소화기 보좌관’···“본회의장 사수, 시민들 덕”[민주주의가 멈춘 날, 내 안의 민주주의는 더 커졌다]

“지금도 국회 위로 헬기가 지나가면 고개가 젖혀져요. 그날 장면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는 거죠.”
지난해 12월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 박지웅 보좌관(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곧장 국회로 향했다. 국회에 도착한 건 계엄 선포 20여분 뒤인 밤 10시40분. 정문 앞은 이미 경찰과 시민들이 뒤엉켜 있었다. 박 보좌관은 “군인들까지 들이닥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헬기가 국회 상공을 갈랐다. 국회는 ‘전쟁터’가 됐다. 이때부터 박 보좌관의 머릿속 목표는 단 하나, 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본회의 개회였다.
지휘 체계가 있을 리 없었다. 그야말로 ‘게릴라전’이었다. 보좌진들은 본능적으로 의자와 책상을 옮겨 쌓으며 국회의원 진입 경로를 확보했다. 몸으로 막고 버티는 싸움이었다.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박 보좌관은 “과거 ‘동물국회’ 때 몸싸움 경험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며 “어디를 막아야 할지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계엄군이 본회의장이 있는 국회 본관 2층까지 진입했을 때 박 보좌관은 소화기를 집어들었다. 군인들은 의원실 창문을 깨고 들어왔다. 소화전으로 칭칭 감아 고정해놓은 문마저 뚫렸다. 좁아진 통로 어귀에서 박 보좌관은 소화기 핀을 뽑아 계엄군 방향으로 분사했다. 미세분말이 공기를 뒤덮으며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박 보좌관은 “그땐 군인들이 총을 들고 뛰어오는지도 몰랐다”며 “정신도 없었고,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뿌렸다”고 말했다.

그를 끝까지 버티게 한 건 국회 밖 풍경이었다. 2층에서 계엄군과 대치하며 창밖을 내려다본 순간, 정문 앞을 에워싼 시민들이 보였다. 그는 “‘우리만 싸우고 있는 게 아니구나’란 생각에 그렇게 힘이 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계엄 해제 의결 이후에도 본관 곳곳에선 치열한 ‘고지전’이 이어졌다. 계엄이 다시 선포될 가능성에 대비해 박 보좌관은 동료들과 함께 밤새 자리를 지켰다.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매번 최하위를 차지하던 국회는 계엄 후 국민 신뢰도가 상승했다. 박 보좌관은 “국회가 항상 싸움만 하는 곳으로 비쳤지만, 계엄과 탄핵을 계기로 입법부의 존재 이유를 국민에게 증명할 수 있어 보람찼다”고 말했다. 단추가 떨어지고 곳곳이 찢어진 그날의 ‘전투복’은 예우를 받았다. 동네 세탁소 사장님이 “고생 많으셨다”며 무료로 수선해줬다.
1년이 흐른 지금, 국회는 아직도 계엄과 싸우고 있다. 불법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를 두고서다. 박 보좌관은 “피가 흘러야만 내란인가”라며 “내란 청산과 함께, 그날의 일이 우리 인생에 미칠 영향이 얼마나 컸을지 기억하고 교육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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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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