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대학·탱크에도 그의 이름이…이스라엘 ‘국부’ 벤구리온
1973년 12월 1일 87세

이스라엘 관문인 텔아비브 공항 이름은 벤구리온 국제공항이다. 남부 네게브 사막에 세운 이스라엘의 학문 중심지인 대학 이름은 벤구리온 대학이다. 이스라엘이 시리아 접경 골란 고원을 점령할 때 동원한 탱크는 ‘벤구리온 탱크’라고 부른다. 모두 이스라엘 건국을 이끈 ‘국부(國父)’이자 초대 및 3대 총리를 지낸 다비드 벤구리온(1886~1973)에서 이름을 땄다.
벤구리온은 러시아 치하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때 시오니즘 운동에 뛰어들었다. 유대인 조상이 살던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운동이다. 바르샤바 대학에 다니던 1906년 오스만 제국 영토이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벤구리온은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편에 가담해 종군했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는 유대인 국가 설립을 지지하는 ‘벨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건국의 꿈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서야 이뤄졌다. 벤구리온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하고 초대 총리에 취임했다. 미국과 소련이 이스라엘을 승인했다.
나라 세우기는 순탄하지 않았다. 독립선언 이튿날 이집트·이라크 등 아랍 6국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직 군대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다. 소총 1500정, 기관총 400정이 전부였다. 미국도 군사원조를 거부했다. 국방장관을 겸임한 벤구리온은 유대인 민병대를 이스라엘 방위군(IDF)으로 재편해 9개월간 전쟁을 지휘하며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벤구리온은 건국 후 6년 지난 1954년 1월 총리직을 내려놓았다. “어떤 사람도 단 한 사람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벤구리온은 네게브 사막으로 들어갔다. 이스라엘 국토의 50%가 넘는 지역이다. 벤구리온은 “사막을 정복하지 않고는 이스라엘에 미래가 없다”고 했다. 사막을 녹화하고 그곳에서 농업을 일으켜야 이스라엘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벤구리온은 1955년 11월 다시 총리로 복귀해 1963년 6월까지 재임했다. 1970년 정계 은퇴 후엔 다시 네게브 사막으로 들어갔다. “총리는 한 번에 한 사람만 할 수 있지만, 사막에 꽃을 피우는 일은 수천, 수만 명이 함께 할 수 있다” “유대인에게 사막은 창조의 공간”이라고 했다.
87세로 세상을 떴을 때 남긴 것은 단출했다. 방 두 칸 허름한 집 네 평짜리 침실에 간이 침대 둘, 작은 서재, 가죽옷 한 벌, 신발 한 켤레와 놋 주전자, 부부 찻잔 한 벌이었다. 벤구리온은 국립묘지도 마다하고 네게브 사막 아인 아브닷 협곡에서 영면에 들었다.(2016년 10월 26일자 A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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