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뭘 심나”…이상기후에 지친 농민들
토착종도 날씨변화에 속수무책
재배기술·시장 개척 등도 문제
투자비 부담에 작물 전환 고민
“기상이변 대응 품종개발 시급”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름철 고온, 폭우, 가을장마 등 기상이변이 이어지면서 지역과 품목을 가리지 않고 농산물 수확량은 물론 품질까지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상기후로 인한 농업 피해의 빈도와 강도가 심화하자 내년엔 어떤 품종이나 작물을 심어야 할지 농민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시설하우스에서 애호박을 생산하는 한순식씨(52·경기 양주)는 “올가을 4∼5일씩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이 잦아 애호박 수정과 비대 불량으로 수량이 평년보다 30% 줄고 품질까지 떨어졌다”며 “이상기후가 계속되면 애호박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종배 ‘청원생명’ 애호박 공선출하회장(충북 청주)도 “3∼4년 전부터 내병성이 강한 품종을 도입했지만 기상이변이 워낙 심해서 흰가루병·진딧물 등 병해충을 피해갈 수 없었다”면서 “새로운 품종을 찾기 위해선 시험재배도 해야 하고 적응 기간도 필요한데 마땅한 대체 품종이 없어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강원도에선 고랭지농업이 위기에 처했다. 올 여름에는 내내 가물다가 출하를 앞둔 8월말부터 한달 넘게 비가 쏟아지면서 밭이 통째로 망가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 변해버린 날씨에 수십년 동안 지역환경에 적응해 토착화된 품종마저도 힘을 쓰지 못했다.
평창군 대관령면에서 배추·무·감자 등을 재배하는 권순진 대관령농협 이사는 “고랭지에서 많이 심는 ‘관동무’는 이 지역에서 재배한 지 30년 가까이 됐는데도 올해는 갈아엎는 일이 반복됐다”며 “감자 ‘수미’는 60년이 넘었고, 배추는 내병성 품종을 심었는데도 모두 이상기후에 견디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가 이렇게 변하니 내년엔 씨감자 채종포를 줄이고 싶은데 어떤 작목이나 품종을 선택해야 할지 도무지 답이 안 나온다”고 했다.
지난해 벼멸구에 이어 올해 벼 깨씨무늬병과 수발아 피해까지 본 벼농가들도 대체품종이나 작물에 대한 고민이 깊지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발아에 취약한 ‘신동진’ 재배 비중이 높은 전북의 경우 올해처럼 수확철에 비가 자주 내리면 피해가 극심하기 때문에 품종 다변화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농가 입장에선 시장 선호도가 높은 ‘신동진’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전수 군산 대야농협 조합장은 “한 품종 위주로만 재배하면 병충해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어 몇년 전부터 시와 협력해 농가들에게 신품종인 ‘남찬’ 벼로 품종 전환을 유도하고 있지만 재배면적 확대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일찌감치 품종 전환에 나선 농가들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경기 연천군이 2022년부터 수발아에 약한 ‘대안’을 대체하기 위해 ‘연진쌀’을 지역특화 품종으로 보급하고 있지만 시비와 물 관리 등 재배기술 보완에 대한 요구가 많다.
전남 고흥군은 수확시기가 빨라 피해가 적은 조생종 ‘조명1호’로 중만생종 벼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이상기후에 대응하고 나섰지만 이도 한계가 있다.
조성문 고흥 흥양농협 조합장은 “생산 비중을 농협 수매량의 최대 3분의 1까지 확대할 계획이지만 수요 등을 감안하면 그 이상 늘리긴 힘들다”고 설명했다.
봄철 저온피해, 폭우로 인한 열매터짐(열과), 탄저병까지 일년 내내 피해가 끊이지 않은 과수농가들은 선택지가 더 좁다. 한번 심으면 20∼30년은 교체가 쉽지 않은 특성 때문이다. 품종·품목 교체에 큰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조석연 경기 포천 가산농협 포도공선회장은 “‘흑보석’ 포도가 이상기후에 강하지만 투자비 부담이 커 회원들이 쉽게 바꾸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이러다 수십년간 쌓아온 ‘가산포도’의 명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에서 11.6㏊(3만5000평) 규모로 배를 재배하는 강보식씨(59)도 “신품종을 수확하려면 최소 5년은 키워야 하는데 그 기간 수입이 없다”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 없이는 품종 전환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품종의 경우 시장을 새로 개척해야 한다는 위험부담도 크다. 무엇보다 믿고 선택할 만한 신품종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 농가들의 주장이다.
경남 진주시 문산읍의 단감농가 차태선씨(65)는 “‘부유’ 같은 오래된 품종부터 신품종 ‘태추’까지 다양한 품종을 재배하고 있지만 변화된 기후상황에 가장 적합한 품종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고온다습해진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는 품종 개발·보급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