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칼럼] ‘AI 버블’보다 중국이 더 무섭다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향후 2년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은 믿어도 됩니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사실 인공지능(AI) 거품보다 중국발 공급 과잉이 시작될까 두렵습니다. 잘 나갈 때 중국의 추격 이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최근 세계를 뜨겁게 달군 AI 거품론 논란을 두고 20년 가까이 반도체 업계에 근무한 지인이 한 말이다. 필자는 주식 투자를 하지 않지만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이제 막 시작한 ‘슈퍼사이클’의 수혜를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엔 관심이 많다.
일단 고대역폭메모리(HBM)을 위시한 AI발 메모리 공급 부족은 여러 지표에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정확하게 5배 치솟았다. 반도체 업계를 출입한지 14년여만에 처음 보는 ‘터무니없는’ 숫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반가울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면에서 불안하기도 하다. 과거 PC와 인터넷, 그리고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일부 기업들이 정보기술(IT) 시장을 지배했던 20여년동안 반도체 시장은 안정적인 패턴을 이어갔다. 특히 메모리 시장은 소위 ‘치킨게임’이 끝나고 D램 ‘빅3’, 낸드플래시 ‘빅5’ 등으로 시장이 정리된 이후 안정적인 우상향 그래프를 이어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업계에서도 놀랄 만큼의 AI 반도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국과 중국은 AI 반도체를 두고 전례없는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다.
AI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뜨거워진걸까. 이는 당사자인 AI도 명확한 답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 챗GPT는 2023년 오픈AI의 챗GPT가 AI 열풍을 폭발시켰다며 소위 ‘낯 뜨거운’ 답을 내놓긴 했지만, 필자는 아직까지 그럴 만큼 파괴력 있는 서비스인지는 모르겠다.
일단 놀라운 서비스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월 이용료 외에 딱히 수익모델이 보이질 않는다. 과거 닷컴 거품 때에도 이처럼 시장을 놀라게 한 서비스가 많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과거 닷컴 열풍의 대표 주자 중 하나였던 새롬기술이라는 업체였다. 당시 선보인 무료 인터넷 전화가 시장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당시 혁신 기업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단지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을 뿐이다. 닷컴 버블 붕괴 이후에도 인터넷은 발전했고, 카카오톡 등 여러 플랫폼 기업이 모바일로 무료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곁가지로 살짝 새긴 했지만, 하고싶은 얘기는 AI 시대 역시 유사한 부침을 겪을 가능성이 꽤 높다는 점이다. 방향성이 틀리진 않지만 아직 시장은 돈을 벌 준비가 되지 않았고, AI 서버에 대한 투자가 무한정 늘어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정말 두려운 것은 거품이 꺼질 타이밍에 나타날 중국이라는 ‘생태계 교란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중국 반도체 통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자립을 자극했고, 그 결과 최신 D램은 물론 HBM까지 자체적으로 만들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막강한 정부의 지원과 내수시장을 앞세워 중국은 이미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로봇청소기 등 첨단 시장을 서서히 장악하는 중이고, 반도체 역시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코스피5000’의 실현도 중요하겠지만, 필자는 우리 자손들을 위해서라도 그나마 한국이 가장 잘 하고 있는 반도체를 잘 지켜 넘겨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력을 다 해도 중국과의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이 그리 높진 않다.
그런 차원에서 정치권은 적어도 반도체에 한해서는 노동계의 눈치를 보기보다 ‘주 52시간 근무’ 예외조항을 허용해주는 등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총력 지원을 해야 한다. 곧 있을 중국의 대공세에서 국내 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지원이기 때문이다.
박정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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