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의 재발견, 베트남을 추월하는 성장의 아이콘이 되기까지[Deep&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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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서남아시아 방글라데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연 7%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른 회복을 보였다. 이후 글로벌 금융 긴축, 외환 부족, 수입규제 등으로 성장세가 잠시 둔화하기도 했지만, 2023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2,651달러)이 인도(2,530달러)를 앞지르는 나름의 쾌거를 이뤘다. 바야흐로 글로벌 대표 ‘최빈 개도국’ 대열에서 이탈해 ‘하위 중소득 국가’로 올라섰다.
향후 발전 가능성도 주목된다. 인구가 1억7,500만 명(2025년 기준)에 달하는 데다가, ‘인구 보너스’(전체 인구 중 생산 가능 인구 비율이 높아져 경제 성장을 이끄는 현상) 효과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산층과 도시 소비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IMF와 세계은행은 방글라데시가 2030년까지 다시 6% 이상의 성장률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경제규모는 2030년에는 베트남을 추월하며, 싱가포르와 필리핀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 규모를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사회도 방글라데시가 2018년과 2021년 유엔의 ‘최빈국 졸업’ 여건을 모두 충족했음을 인정하며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 방글라데시는 ‘인도의 가난한 이웃’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세계 중진국 문턱에 진입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정치 과도기 헤쳐 나가는 방글라데시
물론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가로막는 문제는 여전하다. 일단 정치가 그렇다. 지난해 여름, 공무원 채용 쿼터제에 반발해 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위가 전국을 덮쳤다. ‘7월 혁명’으로 무려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이 혁명으로 결국 당시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인도로 망명했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를 수반으로 과도 정도가 구성됐다.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방글라데시는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과도정부는 정파 간 합의를 위해 지난 10월 △비례대표제 도입 △대통령 권한 강화 △의원 임기 제한 △반부패 강화 등 전반적 정치 시스템 개편 방안을 담은 ‘7월 국민헌장’에 주요 정당들과 공동 서명했다.
7월 혁명을 이끈 학생 세력이 국민시민당을 창당하고, 한때 금지됐던 이슬람주의 세력도 다시 정치 전면에 등장하면서 여전히 갈등 요인은 많다. 7월 국민헌장에 대한 국민투표 요구, 구 정권 지지층의 인권 문제, 무슬림 정당의 부상 등 난제가 산적해 있지만, 과도정부는 예정대로 내년 2월에 총선을 치르겠다는 입장이다. 총선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방글라데시는 민주주의 강화 및 부패 척결, 투명한 정치 체계 구축에 중요한 분기점을 맞게 될 것이다.
섬유 공장을 매개로 쌓인 한국-방글라데시의 인연
방글라데시의 도약은 한국에도 호재다.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인연이 의외로 오래되고 두텁기 때문이다. 1979년 대우㈜가 방글라데시 기성복(RMG) 분야에 진출한 것이 기반이 되었다. 1980년대 초 영원무역이 치타공에 250명 정도의 여성 근로자를 고용하여 작은 의류 공장을 세웠다.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의 첫 외국인 투자로였는데, 당시 매우 드물게 여성 고용을 본격화하여 지역 사회의 사회 및 경제구조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 정부가 허가한 최초의 외국인 전용 수출 가공공단인 ‘한국수출가공공단'(KEPZ)을 조성했다. 이 공단은 친환경 설계와 첨단 설비를 갖춘 글로벌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서 3만5,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노스페이스, 나이키, 푸마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포함한 제품을 생산, 전량 수출하고 있다.
현재 방글라데시에는 150개가 넘는 한국 기업들이 투자 중이다. 2025년 7월 기준 17억 4,000만 달러의 누적 해외직접투자를 기록하며, 한국은 방글라데시의 4번째 투자국이 되었다. 양국 교역 규모도 2024년 기준 2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방글라데시는 한국 의류·신발의 ‘숨은 생산기지’일 뿐만 아니라, 한국형 개발 경험이 가장 깊이 축적된 협력 파트너다. 특히 최근에 가전 및 자동차 등에 투자 업종을 확대하고 있으며, 앞으로 다카공항 제3터미널, 마타바리 수력 발전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 협력이 기대되고 있다.

저임금 의류기지에서 전략적 생산 허브 협력으로
방글라데시는 글로벌 경제환경 변화에서 한국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의류중심의 제조기지의 역할을 해왔지만, 방글라데시의 급성장에 맞춰 한층 진화한 협력이 가능할 전망이다. 우선 방글라데시는 기존의 단순 가공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다각화된 지식 및 제조 허브’로의 전환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방글라데시는 한국 기업에 전자, ICT, 재생에너지, 조선, 자동차 부품, 헬스 케어와 같은 신산업 분야에 진출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요청에 맞춰 이곳을 한국의 베트남과 같은 제2 생산 허브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중국 및 베트남 중심의 생산기지는 급격한 임금 상승, 미국의 고관세 및 대중 분쟁과 보호주의로 인하여 전략적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에 방글라데시가 매우 적합하다.
양국의 협력관계를 두텁게 하려면, 협상 중인 한-방글라데시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조속 체결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의류 및 섬유 분야를 넘어 서비스, 투자, 디지털 무역까지 포괄하는 양국 간 협력에 대한 제도적 틀을 제공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숙련 인력이 부족한 점을 고려하여 한국이 갖고 있는 높은 수준의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제공, 인력 공급원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더욱이 방글라데시는 인도-아세안-중동을 잇는 ‘브리지 국가’로서도 활용 가치가 높다. 이제 방글라데시는 단순 하청기지가 아니라 한국의 글로벌 가치사슬과 남아시아 전략을 동시에 업그레이드하는 핵심 경제협력 파트너로 동행해야 한다.

이순철 부산외국어대 인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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