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주는 이와 받는 이를 바꾼 어느 화가의 자존심 [김용우의 미술思 ]
김용우의 미술思 37편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안녕하세요 쿠르베 선생님’
화가 존재감과 위상에 관심
화가를 시대 지식인이라 강조
서민 희망 북돋는 그림도 그려
![귀스타브 쿠르베 '안녕하세요 쿠르베 선생님', 1854년, 캔버스에 유채, 132x150㎝, 파블레 미술관, 몽펠리에, 프랑스. [그림 | 위키미디어]](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30/thescoop1/20251130114735921vxnf.jpg)
마을 어귀 들판 가운데 세 사람이 서 있다. 한 사람은 행색이 남루하고 그림 그릴 화구가 보이는 배낭을 지고 있는 것으로 보건대 꽤 멀리서 걸어온 화가인 듯하다. 그를 맞이하는 신사는 마을의 유지로 말끔한 차림으로 정중히 모자를 벗고 화가를 맞는다. 뒤에 있는 사람은 신사의 하인쯤 돼 보이고 개도 함께 데려왔다.
이들은 누구이고 어떤 상황일까. 정답은 그림의 제목 '안녕하세요 쿠르베 선생님'이 말해 준다. 화가는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 bet·1819~1877년)다. 그를 맞는 신사는 쿠르베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후원자 몽펠리에(Montpellier)의 유지 알프레드 브뤼야스(Breyas)이고, 뒤에 있는 사람은 그의 비서 칼라스(Calas)다.
상황은 붉은 머리의 후원자 브뤼야스가 화가 쿠르베를 마중 나온 것으로, 멀리 마차까지 대기하고 직접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화가이기에 후원자가 이리도 깍듯이 격식을 차린 걸까.
반면, 화가는 턱과 고개를 치켜들고 "오! 나오셨소, 나 쿠르베요"하고 인사를 받는다. 통상적으로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이 갑甲이고 화가가 을乙이기 마련인데, 그림 속에선 입장이 뒤바뀌어 있다.
사실 이 작품의 제목은 '만남(La Rencontre)'이었다. 하지만 완성 후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됐을 때 비평가들이 '안녕하십니까, 쿠르베 선생님(Bonjour, Monsieur Courbet)'이라고 조롱하면서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
"천사를 본 적 없어서 천사를 그릴 수 없다"그림을 구입한 브뤼야스는 1868년 몽펠리에의 파브르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기 전까지 이 그림을 한번도 전시하지 않았다. 쿠르베는 조금 독특한 성격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자신의 존재감에 민감하고, 화가의 위상 증진에 관심이 많았다.
쿠르베는 다른 작품 '화가의 화실'에서도 가난한 자와 부자들 사이에서 화가의 역할을 보여줬다. 그만큼 그는 낭만주의 시대에 사려 깊은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을 많이 그렸다.
쿠르베는 작품 '안녕하세요 쿠르베 선생님'에서도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오만함을 표현해 자신의 천재성과 위상을 뽐내고 있다. 나아가 화가가 시대의 지식인 중 한 사람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는 혁명, 산업화, 전쟁 등 혼란한 세기말을 보내면서 빈부 격차와 정치적·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쿠르베는 자아의 존재감을 높이려 애를 썼다. 고난을 변화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그림을 통해 스스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귀스타브 쿠르베, 돌깨는 사람들. [그림 | 위키미디어]](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30/thescoop1/20251130114737269pitm.jpg)
쿠르베의 정신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에게 이어진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세잔 같은 인상파 화가들뿐만 아니라, 보들레르, 모파상을 비롯한 문인과 베를리오즈, 생상스, 에릭 샤티 등 예술인들에 의해 새로운 사조思潮, 새로운 표현으로 꽃을 피운다.
쿠르베의 다른 작품 '돌 깨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밀레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같은 시대 두 작가의 작품 속에 같은 느낌이 담겨 있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 그리고 희망을 보여주며 용기를 북돋우는 그림이다.
쿠르베는 작품 '안녕하십니까 쿠르베 선생님'에 '천재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富'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런 쿠르베의 생각은 화가들이 더 이상 교회나 부르주아들의 주문만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고통을 함께하며 미래를 개척하는 지식인임을 이야기한다.
쿠르베의 현실직시형 사실주의는 "천사를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릴 수 없다"고 말한 일화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런 그의 성품은 현실 참여 활동에서도 나타나는데, 쿠르베는 파리코뮌 활동에 참여했고, 1877년 58세의 생을 마감했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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