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도 주목한 ‘한국 AI 주권’…“美·中 의존 탈피 박차”[디브리핑]

정목희 2025. 11. 3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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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韓, ‘AI 주권’ 핵심 시험대” 집중 조명
“한국, 정부·기업 총력전으로 AI 생태계 구축”
[챗GPT 생성 이미지]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세계 각국이 경제와 국가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인공지능(AI) 기술을 미국과 중국 초강대국이 사실상 주도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가운데 한국의 ‘AI 강국’을 향한 노력이 주목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회 연설에서 ‘AI 시대에 하루만 뒤처져도 한 세대 뒤처지는 것과 같다’며 ‘우리는 긴급한 생존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밝힌 것을 중점 보도했다.

‘제3의 축’ 도전하는 한국

이른바 ‘주권 AI’의 핵심 목표는 AI 개발·운영에 필요한 국내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규모 언어모델(LLM) 개발, 반도체 제조, 클라우드 인프라, AI 전문 인력까지 자국 내부에서 최대한 확보하는 데 있다. 또한 AI가 사용하는 데이터와 생산하는 데이터를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에서 하정우 인공지능(AI)미래기획수석의 발언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

WSJ은 “한국은 미국·중국 외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AI 자립을 시도할 수 있는 나라”라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력과 탄탄한 소프트웨어 생태계, 그리고 이 대통령의 강한 추진력이 결합돼 있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내년도 AI 관련 예산을 약 68억달러(약 10조원)로 세 배 증액했다.

현재 AI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중국은 기술 자립을 강조하지만 자국의 최첨단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출하는 데는 아직 소극적이다. 반면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엔비디아의 고급 칩과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풀스택(full-stack) AI 패키지’를 동맹국에 수출하겠다고 공언했다.

런던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비르프라탑 비크람 싱은 “각국이 AI 역량을 자체적으로 키우는 이유는 AI라는 핵심 기술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미국 빅테크 중심의 AI 생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며 “미국 빅테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규제도 어려워진 상황은 국가적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기술산업협회(ITI)의 코트니 랭은 “AI 자립성은 공급망 차질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주권 AI’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 중 한 명은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다. 황 CEO는 지난해 “주권 AI는 문화, 사회의 지능, 상식, 역사—즉 데이터를 국가가 직접 소유하게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유럽·인도·중동도 AI 자립 가속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미스트랄 AI와 독일 SAP가 공공 및 규제 산업 데이터 보호를 위한 ‘주권 AI 플랫폼’을 공동 구축 중이다. 영국은 AI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전담 조직을 만들었고, 인도 역시 자체 AI 모델 개발과 인프라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미국 상무부로부터 최대 7만 개의 첨단 AI 칩 구매 승인을 받았다. UAE 경제부 장관은 AI 투자를 “국방·사이버 안보와 같은 급의 투자”라고 평가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전 세계 AI 지출이 올해 1조5000억달러(약 2200조원)에 달해 지난해보다 약 5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에는 2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140조원 ‘국가성장펀드’·GPU 26만개로 AI 자립 본격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WSJ은 “한국은 이재명 정부 아래에서 향후 5년간 1020억달러(약 150조원) 규모의 ‘국가성장펀드’를 조성했다”며 “대통령실에는 ‘AI·미래전략 비서관’ 직책도 신설했다”고 전했다.

또 “한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첨단 그래픽 처리 장치(GPU) 26만개 구매 계약을 발표하며 이를 ‘국가 AI 비전의 기반’으로 규정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GPU는 정부 주도 데이터센터와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의 데이터센터에 분배될 예정이다.

삼성·현대차·SK 등 주요 대기업들은 배정된 GPU를 스마트 제조와 연구개발 고도화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들 3대 그룹과 LG는 약 5400억달러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며, AI 데이터센터·반도체·AI 제조 등에 투자할 예정이다.

한국의 AI 자립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스타트업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리벨리온(Rebellions)과 퓨리오사AI(FuriosaAI)는 엔비디아 GPU보다 저렴한 대안이 될 수 있는 ‘뉴럴 프로세싱 유닛(NPU)’을 개발 중이다. 퓨리오사AI는 최근 메타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기술 독립성을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자체 한국어 LLM을 이미 출시했다.

다만 AI 자립을 추진하는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급 문제와 인프라 제약에 직면해 있다. 또한 미국이 AI 관련 핵심 기술을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어, ‘주권 AI’ 구축 가능성은 미국의 정책적 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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