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응답을 기다린 329일… 무안공항 못 떠나는 유족들 [하상윤의 멈칫]
"거리에서 울지 않게 하겠다"던 대통령 약속 무색
유가족, 사고조사 독립성·신뢰성 확보 촉구
"태평성대 같아 보여도, 누군가는 매일 울고 있다"

22일 새벽 6시 10분 전남 무안국제공항 2층 국내선 출발장 앞.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 박인욱(70)씨가 하늘색 숫자 '329'가 쓰인 종이를 텐트 앞에 붙였다. 박씨는 지난 참사에서 아내와 딸, 사위 그리고 두 손주를 잃은 비극의 당사자다. 매일 아침, 그는 유가족 쉘터의 달력을 직접 넘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는 공항 밖 세상과 달리, 이곳 텐트촌의 시간은 오직 참사 발생일로부터 며칠이 지났는지를 세는 것으로만 흐른다. 329일. 유가족들이 차가운 대합실 바닥에서 지새운 밤의 숫자이자, 국가의 응답을 기다린 시간이다.

유족 김영헌(53)씨는 해가 뜨면 선전 트럭을 몰고 거리로 나간다. 그의 트럭엔 '무안공항 참사 1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피눈물 흘리는 유가족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라는 문구가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항공기 사진과 함께 래핑돼 있다. 김씨는 지난 참사에서 아내와 두 아들까지, 온 가족을 모두 잃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글썽였다.

"슬픔에는 계기가 없어요. 운전하다가 울고, 걷다가 울고, 거리에서 외치다가 울고, 밥 먹다가도 웁니다." 그의 눈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온다. "더는 유가족이 거리에서 울부짖는 일이 없게 하겠다." 지난 7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30일을 맞아 국민 앞에 내놓은 약속이다. 하지만 11월의 끝자락, 그 호언장담은 이곳 무안공항까지 닿지 않았다. 300일이 넘도록 유가족들은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공항 난민' 신세로 여전히 거리에 남아 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쉘터를 지키고 있지만, 이들이 공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진상규명' 하나로 귀결된다. 유가족들은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독립적인 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사고 조사의 주체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의 구조적 모순이다.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조사 주체인 사조위가 사고의 관리·감독 책임이 있어 마땅히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할 국토교통부에 소속돼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이어 "위원장과 상임위원 등 주요 보직이 전·현직 국토부 관료들로 채워져 있어, 사실상 국토부가 임명한 위원들이 국토부의 잘못을 스스로 조사하는 꼴"이라며 "조사 과정에 이해당사자인 국토부와 공항공사, 제주항공은 참여시키면서 피해 당사자인 유가족은 철저히 배제하는 조사에서 어떻게 독립성과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난 참사로 부모님과 남동생을 한꺼번에 잃었다.


“빠른 조사보다 바른 조사를 요구한다.” 유가족이 외치는 구호 중 유독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핵심은 현재 국토부 산하에 있는 사조위를 국무총리실 등 독립된 기관으로 이관해 조사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유가족과의 면담에서 "항철위(사조위)의 독립에 장관직을 걸겠다"고 약속했을 만큼, 이 사안은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첫 단추로 꼽힌다. 현재 국회에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실제 시행까지는 행정적 절차와 물리적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사조위는 당장 오는 12월 4일부터 이틀간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공청회를 강행하겠다고 예고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심지어 공청회의 핵심 근거가 되는 '사실조사보고서'조차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졸속 공청회'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유진 대표는 "'셀프 조사'로 사건을 황급히 매듭짓기 전에 조사의 주체를 바꾸는 실질적인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어떻게 우리 애들이 죽었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지금은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요. 나중에 저승 가서 애들 볼 낯이 없지 않겠소. 이렇게 나와서 외치는 게 내가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쉘터의 가장 연장자인 여흥구(73)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이번 참사로 소아과 의사였던 딸과 영상의학과 의사 사위, 그리고 금쪽같은 손주 둘을 한꺼번에 잃었다. 아내는 그날 이후 매일 울다 눈이 상해 수술을 앞두고 있고, 부부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여씨는 참사가 그대로 잊히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그는 “세상은 보상금 운운하며 다 끝난 일이라 치부하고, 앞에서 간 쓸개 다 빼줄 것 같던 정치인들도 다 떠났다”면서 “태평성대처럼 보여도, 누군가는 매일 울고 있다”라고 말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61357000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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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무안=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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