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와 후불결제 시스템(BNPL)...AI시대에 맞는 시스템은?

중국 도가(道家) 고전인 열자 황제편에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가 전해진다. 옛날 옛적 송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원숭이를 키웠다. 하루는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니 기뻐했다고 한다. 우리는 조삼모사의 뜻을 '겉모습은 다르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결과를 뜻하는 것으로 남을 간사하게 속인다'라고 배웠다. 그리고 원숭이는 눈앞에 보이는 것의 차이만 알고 같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대명사로 조롱했다.
과연 원숭이는 어리석었을까? 원숭이들은 하루에 총 7개의 도토리를 받는다. 만약 아침에 4개를 받아서 3개는 먹고 1개는 모아두면 어떨까? 옆집 원숭이가 배가 고파서 1개를 빌려주면 저녁에 받는 도토리에서 1개를 이자로 주겠다고 하면? 그럼 이 녀석은 총 8개 도토리를 확보할 수 있다. 하루에 7개가 식사 정량이라면, 1개가 남는다. 다시 배고픈 원숭이를 찾아서 이자를 받고 빌려주면? 원시자본이 축적된다. 원숭이 재벌의 탄생이다.
물론 오후에 받는 도토리를 아껴서 빌려줄 수도 있다. 그래도 오전에 빌려주면 도토리축적이 하루라도 빠르다. 그리고 저공이 경제사정이 나빠져 아침만 주고 더 이상 도토리를 안 줄 수도 있다.
무조건 먼저 많이 받는게 현명한 것이다. 이것이 시간의 위력이다. 조삼모사는 동양철학서가 아닌 자본주의 경제학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 금융이자 편에 말이다.
지난 10월 말, 천년고도 경주에서 APEC이 열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찾았다. 바쁘게 정상외교가 가동되었다. 하이라이트는 한⋅미간의 관세협상이었다. 쟁점은 3500억달러의 미국 투자금에 대한 부분이었다. 한⋅미 양국은 총액에는 합의했던 터라, 어떻게 배분하고 언제 투자할 것인가가 초점이었다. 미국은 3500억달러 모두 현금으로 투자집행하고 투자심사는 미국이 하겠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한국정부는 3500억달러를 모두 선집행할 경우 외환위기가 생길 것이라며 버텼다.
한편으로는 미국 트럼프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즈 등 외신은 "Market activity has long been Trump's preferred indicator of economic strength and Lee appeared to flatter* the US president by talking about the strength of the US stock market."라고 APEC 한⋅미협상 현장을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왜 아부까지 했을까? 투자이행기간이라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한국정부가 트럼프에 아부까지 하며 한 시간끌기는 한⋅미관세협정 팩트시트를 발표하며 마무리되었다. 한국정부의 요구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총 투자금 3500억달러 총액은 같지만 1500억달러는 선박금융으로 대체하고, 나머지 2000억달러의 분할투자기한을 10년으로 늘렸다. 'Pay Later'를 실현한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생활패턴이 많이 바뀌었다. 비대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온라인 구매와 배달앱이 생활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오프라인 상가는 비싼 임대료로 애물단지가 되었다. 테헤란로 한복판에 비어있는 상가는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는 이제 서로 공간을 공유하지 않고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온라인 세상의 거래는 실시간 온라인 결제로 완성된다. 한국은 신용카드를 모바일 결제 플랫폼에 연동시켰고, 중국은 모바일 지갑에서 직접 결제하는 모델로 발전했다. USDC, USDT 등 스테이블코인도 등장하여 온라인 결제 수단으로 당당히 인정받았다.
온라인 결제 수단을 통해 가상과 현실자산이 연결되면서 시간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급이 지연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결제 플랫폼에서 주고받는 실시간 현금거래는 자연스레 모바일 금융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금융은 미래의 자산을 현재에 파는 것이다. 즉 시간을 파는 산업이다. 오늘의 100원은 1년 후 100원과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은행에 100원을 1년 동안 예금하면, 1% 예금이자를 받는다고 하자. 그 얘기는 오늘의 100원은 1년 후 99원과 같다는 의미이다. 시간을 파는 대가가 이자 1원이다.
그래서 무조건 먼저 받고 지급은 미루는 것이 유리하다. 최근 무섭게 성장하는 온라인 결제 플랫폼이 BNPL(Buy Now Pay Later)이다. 사실 별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물건을 먼저 사고 나중에 천천히 갚는 온라인 신용결제시스템이다
그런데 왜 주목을 받을까? BNPL은 앱기반의 무이자 할부시스템이다. 신용카드는 할부 이자를 소비자가 내고 가맹점주는 결제 수수료를 낸다. 판매대금은 3~5일 후 카드사가 지급한다. 반면 BNPL은 결제플랫폼이 구매 즉시 판매자에 대금을 지급한다. 소비자는 무이자 할부 혜택을 받고 판매자가 결제수수료를 낸다. BNPL은 아직 금융업으로 분류되지 않아서 금융감독의 대상이 아니다. 이러니 신용카드 가입을 위해 필요한 엄격한 자격조건같은 것은 필요없다. 소비자는 BNPL 앱을 다운받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대신 대부분 플랫폼에서 사용액을 제한하고 있다. 딱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기에 알맞은 정도이다.
글로벌 온라인 결제 시장에서 BNPL은 이미 대세이다. Klarna(스웨덴), Afterpay(호주), Paypal(미국) 등이 대표 플랫폼이다. 모바일에서 앱을 다운받아 온라인 쇼핑몰에 연동하면 바로 구매결제가 가능하다. 현대 소비패턴의 주요 특징인 장소와 시간에 구애없이 신속성, 간편성을 두루 갖추었고 무이자 소액 분할결제이니 부담도 덜하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고정수입이 없거나 신용도가 낮지만 소비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모바일 홍보툴과 쉽게 연결시킬 수 있다. 앱 기반이니 결제도 빠르고 해외직구도 간편하다.
2023년 전세계 BNPL를 통해 판매된 상품총액이 3494억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성장률은 2023년부터 2028년까지 년 평균 19%로 추정된다. 아시아지역 이커머스 결제의 7.7%가 BNPL를 통한다고 한다.
중국이 빠질 수 없다. 이커머스의 천국으로 알리페이, 위챗페이가 지갑에서 현금과 신용카드를 삭제해버린 나라이다. 중국 BNPL서비스로는 화베이(알리페이), Fenqi(위쳇), Monthy Pay(메이투안), Suning Finance(바이두) 등이 있다. 테크기업들이 자체 모바일 결제앱에 BNPL서비스를 추가하여 기존의 이용자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최근에는 평안보험이 헬스케어와 교육서비스에 BNPL서비스를 도입했다.
화베이는 알리바바 그룹 산하 앤트금융에서 2018년 출시한 온라인 신용결제 서비스다. 초기에는 알리바바, 타오바오, 티몰 등 알리바바그룹 이커머스 생태계 내에서만 폐쇄적으로 사용되다가 점차 외부 이커머스와 오프라인에 개방했다. Suning, 메이투안, 따종디엔핑, 하이얼, 사오미 그리고 아마존 등 해외 이커머스플랫폼까지 사용범위가 확대되었다. 사용연령대를 보면 90대년생 이후(30%)와 80년대생(48.5%)이 주력이다. 사용금액과 신용도에 따라 최대 41일 무이자 상환와 할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BNPL 시장규모는 2025년 1220억달러에서 2030년 1850억달러로 매년 8.7%씩 성장하고 글로벌시장 점유율 30%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의류 이커머스 몰 SHEIN은 B2C 결제를 Atome(싱가포르 BNPL)와 협업하고 있다. Atome은 최근 자체 이커머스 몰을 런칭하고 Shepora, SHEIN 등 브랜드를 입점시켜 직접 판매까지 하고 있다. B2B 결제는 Airwallex을 통한다.
Airwallex는 2015년 호주에 설립한 글로벌 핀테크기업으로 '국경없는 결제'를 구호로 은행의 복잡하고 느린 해외송금절차와 높은 수수료를 개선하겠다며 등장했다. 20개 이상 통화로 현지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멀티통화 계좌개설, 환전/송금/가상-실물카드 즉시발급서비스를 제공하며 결제수수료가 없다. 2025년 현재 15만개 기업고객와 연간 결제처리액 1300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신용카드가 주된 결제 수단이다. 아마 사용에 익숙하고 무이자 할부 서비스 기간과 여러 우대혜택이 계속 추가되면서 BNPL으로 갈아탈 유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신용카드 사용이 금융시스템 건전성 관리, 부채관리, 투명한 세수 관리에 용이하다. 한국 온라인 결제 시스템은 신용카드와 같이 엄격한 금융감독을 받고있고 스마트폰은 그저 신용카드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모바일 생태계가 핀테크가 아닌 SNS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양질의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결제 데이터이다. 결제 정보가 테크회사가 아니라 신용카드 회사에 쌓이고 있다. 카메라, 컴퓨터, 전화기 등 모든 전자 디바이스가 스마트폰으로 통합되어 모바일 생태계를 만드는 시대에 우리는 아직도 카메라, 휴대폰을 따로따로 가지고 다니는 셈이다.
거래는 구매에서 시작해서 지급으로 끝난다. 1세대 결제 수단인 신용카드는 후지급과 할부기능으로 소비를 촉진했다. 2세대는 한 손에 들어온 인터넷 즉 모바일 결제였다. 여기서 한국은 신용카드를 모바일 디바이스를 연동했고, 중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은행, 신용카드사 등 제도권 금융에서 벗어나고 있다. 더 빨리, 더 쉽게, 상품을 구매하고 해외송금까지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해외송금 수수료와 환전의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암호화폐 이용자도 늘고 있다. 암호화폐는 은행이라는 중앙통제에서 벗어난 온라인 지급 수단이자 자산이다. BNPL은 지급수단이 아닌 무이자 할부라는 기능을 추가한 온라인 지급플랫폼이다. Airwallex 창업자인 Jack Zhang은 얼마 전 스테이블코인의 결제 플랫폼으로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BNPL의 우위를 주장했다는데 내가 볼 때는 BNPL과 스테이블코인은 경쟁자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이 BNPL 플랫폼에서 온라인지급수단으로 글로벌 결제 통화인 달러를 대신할 것 같다.
BNPL은 결국 온라인에서 시간을 파는 금융서비스이다. 지연된 결제는 부채이다. 부채는 미래의 현금흐름을 끌어다 현재에 쓰는 것을 말한다. 과도한 생산과 탐욕스런 소비가 쌓아올린 부채의 시대에 다시 부채를 끌어 소비를 유도하는 서비스라니, 정말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극한의 이익을 추구하며 가능한한 빠른 속도로 회전하려는 자본의 속성도 새삼 공포스럽다. 게다가 아직 금융당국의 감독범위 밖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은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 틀림없다.
BNPL은 소비자의 효용을 당장 높일 것이다. BNPL이 산업혁신의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돈이 흐르는 곳에 새로운 산업이 생기기 때문이다. 중국 이커머스산업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 덕택에 해외로까지 활성화되었다. 전국의 공장들이 더 싸게, 더 빨리, 더 다양한 상품을 만들게 했다. Made in China가 가성비와 무한 생산이라는 파괴적인 아이템을 얻었다. 온라인 소비와 오프라인 생산이 만나 중국은 글로벌 제조 허브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조삼모사의 고사가 원숭이들의 한계효용을 극대화하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기 위해서는 단 한번의 거래이거나 원숭이재벌처럼 내일을 위한 복리투자여야 한다. 매일 주는 족족 다 먹어버리면 사실 오전에 4개, 저녁에 3개는 큰 차이가 없다. 아침 포만감이 저녁의 배고픔으로 상쇄될 것이고 도토리가 질려 고구마를 원할 수도 있으니 첫 날에 느꼈던 효용은 점점 줄어든다.
우리는 일생동안 깨알같이 많은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매 거래마다 오늘의 효용을 위해 내일의 부채를 끌어온다면 부채는 무한대로 커질 것이다. 미래를 미리 써버린 대가로 현재에 나를 갈아넣어야 하는 숙명을 안게 된다. 시지프 신화처럼, 영원히 지속되는 현재의 고통으로 미래의 시간은 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은 공짜가 아니다.

제주 출신으로 제주대(행정학과)를 졸업, 중국복단대학교 법학원에서 석사(민상법), 화동정법대학교에서 박사학위(경제법)를 땄다.
2009년부터 대광경영자문차이나(삼화회계법인 중국지사) 대표를 맡아, 중국기업의 한국증시 상장과 한국기업의 해외투자 설계 및 법무 컨설팅, 중국기업의 한국 투자설계 및 법무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