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마을에 매춘 여성만 2000명...예상 못한 재앙에 동네는 타락했다 [히코노미]
벌써 며칠째, 해가 뜨지 않았다. 푸른 빛으로 찬란한 하늘에 잿빛 먼지가 커튼을 쳤다. 더께 진 먼지는 인간과 해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빛이 없는 도시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빛은 생명에 기운을 불어넣은 촉매여서, 빛이 사라지자 인간들도 기운을 잃어갔다.
밤에 어두웠다가, 낮에 어스름했다가, 다시 저녁에 어두워지는 날들의 반복.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우울한 사내들이 쉽게 주먹을 휘둘렀다. 만연한 폭력이 폭력을 불러, 먼지와 피가 도시를 물들였다. 도시는 더욱 어두워졌다.

1930년을 미국은 ‘더러운 30년대’(Dirty 30‘s)라고 부른다. 경제 대공황(1929년)에 이어 먼지 폭풍우가 미국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얼핏 인재(人災)와 천재(天災)의 앙상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재와 인재가 겹쳐 일어난 일이었다. 먼지 폭풍우를 부른 건, 우매한 인간의 경제활동이 부른 촌극이어서였다. ’더스트 보울‘(Dust Bowl·흙먼지 그릇)로 불린 일대의 사건이었다.


중·서부 대평원(Great Plains)에 오는 개척자들에게 미국 정부 소유의 토지를 160에이커씩 무상 할당했다. 울타리를 세우고, 땅을 개간하고, 씨앗을 심기만 하면 큰 땅을 가질 수 있었다. 무산자로서 서러운 삶을 살아가는 도시민, 남부 농장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흑인의 마음은 들떴다. 어엿한 제 땅에서, 가족을 먹이고 재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2억7000만 에이커 규모의 땅이 개인에게 넘어갔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토지양도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11배나 되는 땅이 손바뀜한 것이었으니까. 미 대륙을 달리는 철도에는, 부농이 되겠다는 야망으로 가득한 사내들로 가득했다.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때의 토지 양도가 극도의 재앙으로 돌아올 줄은.

이제 막 농사해보는 뜨내기 농사꾼들은 “쟁기질이 비구름을 부른다”는 미신을 되뇌며 열심이었고, 하늘은 이를 어여삐 여기듯 비를 뿌려줬다. 공장의 작업복을 갈아입은 농부들은 소를 사들여 풀어놓거나, 밀을 심으면서 마음속에 농심(農心)을 파종했다.

1차 세계대전의 총성에 미국 중남부 농부들은 미소 지었다. 유럽이 전쟁에 휩싸여 농업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었다. 배고픈 군인들은 싸울 수 없어서, 유럽 지도자들은 성난 군인을 먹을거리로 달래야 했다. 유럽이 잇달아 미국에 곡물 수입을 요청한 배경이었다.
1차 대전 동안 곡물 가격이 3배가 뛰었고, 대평원의 농부들은 노랗게 익은 곡물로 황금을 거둬들였다. 촉촉한 비가 자주 내리고, 농부들의 트랙터질 몇 번에 곡물이 쑥쑥 자랐으며, 수확한 곡물은 유럽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야말로 신의 축복, 할렐루야.

대평원은 미국 정부의 든든한 지지 기반이었다. 정부가 양도한 땅 덕분에 부농이 될 수 있었으니까.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 성공에 취해, ‘홈스테드법’의 판을 키웠다. 1909년과 1916년에도 홈스테드법이 추가로 발의됐다. 대평원은 어느덧 사람과 트랙터로 빽빽 차고 있었다. 너른 대평원에서 콤바인이 매일같이 땅을 갈았다.

1918년 전쟁이 끝나자, 특수도 끝났다. 군인이 총을 내려놓고, 농부로 돌아가면서였다. 유럽인들은 이제 제 땅의 밀을 찾았다. 미국 밀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수요가 줄면 가격도 함께 떨어지는 건 경제학의 법칙이어서, 밀 가격은 10년 동안 80%나 떨어졌다.

사람의 지력은 팔수록 샘솟지만, 땅의 지력은 팔수록 떨어지기 마련이어서, 끊임없는 경작은 땅을 볼모지로 만들고 있었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이 미국을 덮쳤다. 곡물 가격도 덩달아 폭락했다. 기다렸다는 듯, 하늘도 비를 거둬들였다. 대평원의 농부들은 맑고 화창한 하늘에 소름이 끼쳤다. 아무리 쟁기질해도 비가 내리지 않고 있어서였다. 곡물이 죽고, 초지가 사라지면서, 촉촉한 땅이 메말라갔다.

대평원에는 생명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네브래스카, 캔자스, 다코타, 콜로라도, 몬태나, 와이오밍,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텍사스 평원, 아이다호, 오리건 서부 평원이 모래로 가득해서였다. 작물 위에 내려앉았던 모래는 이윽고 사람의 집에, 차에, 슈퍼마켓에, 레스토랑에 불어닥쳤다. 평원의 사람들은 먹을 때 마다, 말할 때 마다, 숨쉴때 마다 모래 알갱이를 씹어야 했다.
![“가자, 가자, 인간을 벌주러 가자.” 사막 위에 모래 폭풍을 공중에서 촬영한 모습. [사진출처=Olga Ernst & Hp.Baumeler]](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9/mk/20251129091820345ixzp.jpg)
사람을 끌어당긴 대평원은, 이제 사람을 모래로 튕겨냈다. 동서남북에서 대평원으로 몰려온 이민자들은, 대평원에서 사방팔방 동서남북으로 떠났다. 탈출하지 않으면 모래 속에 묻힐 운명이어서였다.

도시로 탈출에 성공했어도, 그들을 기다리는 건 눅진한 가난이었다. 대공황의 여파로 도시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일자리가 없는 남자들은 술에 취했고, 화난 부인들은 이혼을 선언하고 구직활동을 다녔는데, 대공황기에 여자들이 구할 직장이 있을 리 없어서, 수 많은 여자가 몸을 팔았다.


모래바람을 뚫고 사람들은 도시에 다다랐지만, 모래는 분노의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1934년 대평원에 큰바람이 일었다. 큰 바람은 모래를 끌어 올려, 편서풍에 기대어 도시까지 달려갔다. ‘더스트 보울’이었다. 도시로 도망친 농부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대평원에서 본 모래가 다시 눈앞에 도달해 있었으니까. 모래는 눈 속으로, 콧속으로, 입속으로 맹렬히 달려왔다. 마치 시신을 염하려는 장의사처럼.


남자들은 직업을 잃었고, 여자들은 몸을 팔면서 생명을 부지했다. ‘더스트 보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하루에만 현재 가치로 5억7000만달러인 것으로 전해진다. 1930년대 농민 250만명이 대평원을 떠났다. 1940년대에도 250만명이 고향을 등졌다.

1950년 대평원에 다시 가뭄이 닥쳤다. 모래는 더 이상 성내며 날아가지 않았다. 대평원은 그렇게 평온을 찾았다. 작은 모래바람을 먼지 폭풍우로 만들었던 건 정치적 포퓰리즘과 인간의 욕망이었다. 화난 자연은 인간에게 가혹한 보복을 내린다는 걸, 우리는 너무 늦게 깨쳤다. 어쩌면 아직 모르고 있는 진실일지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만든 ‘더러운 시대’(Dirty Ages)에 살고 있으니까.

ㅇ미국 남북전쟁 시절, 집권 세력인 링컨은 서부 대평원을 개척해 우호 세력을 만들고자 정부 땅을 불하하는 ‘홈스테드법’을 밀어붙였다.
ㅇ밀 가격이 폭등하면서 서부 대평원에 이주민들이 무분별하게 농사를 지어가면서 초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ㅇ1929년 대공황과 함께 대평원에 가뭄이 닥치면서 땅이 모래로 변하기 시작했고, 1935년에는 폭풍까지 덮쳐 ‘더스트 보울’이라는 이름의 먼지 폭풍이 일었다.
ㅇ당황한 미국 정부가 토지 보양에 나서고, 1939년부터 다시 비가 내리면서 대평원은 안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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