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왜 가요" 탄식…한국 영화에 대체 무슨 일이 [붕괴위기 K무비 (上)]
日 애니에 1위 내주고 '참담'
팬데믹 넘어 7년째 위기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부족"

2025년 한국 극장가를 바라보는 영화계 내부 평가는 냉혹하다. 올해 상반기 국내 상업영화(순제작비 30억 원 이상)는 20여 편에 그쳤다. 팬데믹 충격이 가장 컸던 2021년(17편)과 큰 차이가 없고, 팬데믹 이전인 2019년 60편 가까이 개봉했던 것과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제작 편수 자체가 줄면서 극장가의 선택지는 자연히 좁아졌다.
흥행 성적도 냉혹하다. 올해 전체 박스오피스 1위는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차지했다. 애니메이션 외화가 국내 전체 흥행 1위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8일 누적 관객 수는 565만1303명으로, 기존 한국 실사 영화 1위였던 '좀비딸'(563만7455명)을 넘어섰다.
2010년 '아바타', 2011년 '트랜스포머 3', 2021년 '스파이더맨: 노웨이홈' 등 외국 실사 영화가 한 해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사례는 있었지만, 애니메이션 외화가 전체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대 해외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인 '겨울왕국 2'(1376만명)조차 '극한직업'(1626만명), '어벤져스: 엔드게임'(1397만명)에 밀려 2019년 3위에 그친 바 있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관객 500만 명을 넘어선 작품은 '좀비딸'이 유일하다. 지난해 '파묘'와 같은 '천만 영화'는 단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 주요 배급사들조차 줄줄이 고배를 마시며 시장 전반이 동반 침체에 빠졌다. 기대작으로 꼽혔던 작품들도 성적은 제한적이었다.
하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던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는 개봉 전 해외 200개국 선판매 기록을 세웠지만, 국내 관객 수는 294만1466명에 머물렀다. 유명 감독의 이름값마저 흥행으로 연결되지 않는 현실이다.

◆ "볼 영화도, 찍을 영화도 없다"
문제는 단순한 흥행 참패가 아니다. 흔들리는 산업 구조 자체다. 한국 영화 제작 편수는 해마다 줄고 있으며, 투자 시장은 위축 일로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제작 현장에 늘 50~60편의 상업영화가 포진해 있었지만, 지금은 체감상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제작비는 오히려 늘어났다. 2022년 기준, 순제작비 30억원 이상 상업영화 36편의 편당 평균 총제작비는 124억원을 넘었다. 2019년 같은 기준 평균 제작비(약 100억원)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관객 수는 줄어들고 제작비만 불어나는 기형적 구조다. 제작 편수가 줄면서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도 자연스레 낮아졌다. 투자사들은 흥행 가능성이 검증된 장르와 소재에만 몰렸고, 실험적·창의적 기획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걸러졌다. 몇몇 유명 감독에게만 기대는 구조 역시 제작 생태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관객 감소의 원인이 단순히 'OTT 탓'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극장을 찾아갈 만한 작품 자체가 부족해졌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좋은 영화는 지금도 잘 나간다. 독립영화 '세계의 주인' 같은 작품은 누적 관객 수 12만 명을 돌파하지 않았나. 문제는 그만큼 설득력 있는 작품이 있었느냐는 것"이라며 "관객들의 취향은 세분화됐는데, 콘텐츠는 여전히 획일적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관객 눈높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는데, 제작 환경은 되레 보수적으로 바뀌었다"며 "한국 영화를 외면한 게 아니라, 볼만한 영화가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퇴근 후 평일 밤 1만5000원을 내고 영화표를 끊고, 팝콘 콤보까지 하면 2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 비용을 쓰고서라도 극장으로 향하게 만들 작품이 과연 몇 편이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OTT와의 경쟁도 거세다. 휴대전화 요금과 묶어 체감상 '거의 공짜'에 가깝게 이용할 수 있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과의 경쟁은 갈수록 불리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제 '극장이니까 본다'는 시대는 끝났다"며 "오직 '이 영화여서 본다'는 선택만이 관객을 움직인다"고 말했다.
또 영화관 티켓값은 여러 차례 인상됐지만, 관객 만족도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 이창동 감독마저 넷플릭스 行…"극장엔 어떤 작품이 남겠나"
세계 영화 시장은 팬데믹 이전 대비 80% 수준까지 회복했지만, 한국만 유독 바닥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누군가 해결하려고 나선 적이 없었던 구조적 방치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영화 시장은 구조적으로 독과점과 수직계열화가 심화했다"며 "정작 모험 자본은 사라지고 안전 자본만 남았다"고 진단했다.
한국 영화계 거장 이창동 감독마저 신작 '가능한 사랑'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에서는 충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 관계자는 "이 정도 작품마저 극장이 아닌 OTT로 가는 상황이라면, 도대체 극장 영화에는 어떤 작품이 남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올해 열린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김성수 감독은 "한마디로 진단하자면 '붕괴'다. 지금 한국 영화는 아예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장재현 감독은 "저희끼리 얘기한다. 좀 '또라이' 같은 후배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경쟁자이자 이상한 감독들이 있어야 산업이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금이 단순한 붕괴의 시기가 아니라, '전환'의 시기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극장 중심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투자 시장의 독과점과 수직 계열화를 완화하며, 신진 감독과 다양한 장르에 숨 쉴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화적 경험은 더 이상 극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소비 방식이 달라진 만큼 산업 역시 변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한국 영화가 다시 관객을 부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이야기와 선택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관객의 눈높이는 높아졌지만, 극장에서 볼 만한 작품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극장이니까 보는 영화'가 아닌, '이 영화여서 보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국 영화계는 7년째 이어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조적 개혁과 창작 생태계의 재정비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극장은 그저 과거의 명성을 추억하는 공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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