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이 ‘목마와 숙녀’를 노래할 때, 그가 마셨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박인희의 시 낭송 《목마와 숙녀》를 듣기 전까지는 시인 박인환을 몰랐다. 당시 교과서에 실렸던 서정시들과는 확연히 다른 이 시 낭송을 처음 듣고 곧바로 센티멘털리즘에 빠졌다. 허무적이고 절망적이었고 쓸쓸하였다.
반면 이 시는 그동안 알았던 다른 한국 시에 비하여 세련되었다. 이 시를 수백 번 암송하였다. 시적 감성이 부족하던 내게 《목마와 숙녀》는 특별한 몇 시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시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고 시작한다. 이 한 문장은 목마와 숙녀에 대한 의문만 키웠다. 다음 이어지는 시구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전반부는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로 끝난다. 세월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지 않으려 우리는 시들어가고 순수하던 시절의 꿈과 이상과 작별하여야 한다. 그런데 다 마셔버린 빈 술병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무기력하게 바람에 쓰러지는데 왜 늙어 버린 버지니아 울프의 눈을 바라보아야 하나?
장면 전환이 일어나면서 이 시에 대한 이해는 더 어려웠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앞과 뒤의 말줄임표와 함께 '등대에'가 갑자기 등장한다. 뒤에 『등대에(로)』가 버지니아 울프 생애를 그린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 시는 더 이상의 이해를 허락하지 않았다.
최근 나는 이 시를 영화로 풀이하는 한 작가의 설명을 들었다. 화면은 늙은 버지니아 울프의 까만 눈을 클로즈업하더니 검은 바다를 향해 빛을 비추고 있는 등대로 바뀐다. 『등대에(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생애를 그린 책이다. 영화로도 상영되었다. 그러니 시의 후반부 '등대에(로)'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을 회상하는 영화 속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에 한국전 후 꿈과 이상, 사랑의 진실을 잃고 서럽게 버터야 하는 박인환의 현실과 고통이 오버랩된다. 카메라는 박인환을 향하고 '페시미즘, 미래, 처량, 서러운 이야기, 술, 인생, 통속, 한탄, 가을 바람소리'를 슬프게 내뱉는다. 이제 이 부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마지막 구절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에는 시인의 체념이 붙어 있다.

박인환은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중퇴한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박인환의 시를 만날 때마다 나는 이 이력이 궁금하였다. 그는 강원도 인제군 상동리 태생이다. 그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재학 중 영화를 보았다는 이유로 퇴학당하여 황해도의 중학교로 전학하였다. 졸업 후 그는 평양의전에 진학한다. 그리고 그는 짧은 의학 공부 수학을 접고 서울로 돌아와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가 평양의전에 진학하고 학업을 중단한 시기는 1944년에서 1946년 사이로 추측된다. 의전에 입학하고 떠나 남으로 내려온 이력에 대해 그는 자신의 입으로 설명하지 않아 의문만 키웠다.
시인의 고향은 38도선 북쪽이다. 해방과 함께 그의 고향은 북한의 일부가 되었다. 그가 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할 때 우리나라에는 서울에 세브란스의학교, 경성의과대학 및 경성의전이, 대구에 대구의전, 평양에 평양의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가 평양의전에 진학한 이유는 고향의 위치와 관계가 있다고 추측된다. 그리고 그가 평양의전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온 과정과 내력은 당시 혼란한 시대 상황이 원인이 되었다는 설만이 무성할 뿐이다. 아무튼 그가 북(평양)을 떠나 남(서울)을 선택하였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몇 평론가들은 의학 공부로 과학적 사고와 감정이 결합하여 모더니즘 시의 특성을 좌우하였다고 생각한다. 의학 공부가 아픈 몸과 슬픔, 육체적 고통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의 시에서 실존적 허무를 내면화시켰다고도 설명한다. 짧은 의예과 수업이 이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으나 반박할 만한 근거도 없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클라리사,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
《목마와 숙녀》는 내가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계기가 되었다. 《댈러웨이 부인》은 1925년에 간행된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이다. 소설은 주인공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런던에서 파티를 준비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줄거리 전개 대신,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탐구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다. 소설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런던이다.
클라리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상류층 여성이다. 하루 종일 자신이 주관하는 저녁 파티를 준비한다. 이 하루 동안 그녀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드러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흐르면서 울프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이 인생 전체와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종소리, 도시의 소음 등이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시간과 물리적 시간을 연결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클라리사는 성공적이고 안정된 삶을 사는 상류층 여성으로 그려지지만, 그녀의 내면은 공허함과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소설은 한 인물의 관점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을 넘나든다. 클라리사뿐만 아니라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 리처드 댈러웨이, 피터 월시 등의 시점을 통해 사회의 여러 층면을 다각적으로 조망한다.
소설의 또 다른 주요 인물인 셉티머스는 전쟁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전쟁 참전 군인이다. 그는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며, 그의 아내 리치아가 그를 도우려 하지만, 셉티머스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클라리사의 이야기는 셉티머스의 비극적인 이야기와 교차하며, 두 인물의 내면과 사회적 억압에 대한 고찰이 중요한 주제로 다뤄진다. 그의 삶을 통하여 전쟁이 개인과 사회에 남긴 심리적, 정신적 상처, 그리고 전쟁 후 영국 사회의 혼란과 변화, 인간 존재의 불안 등도 탐구하였다.
소설 속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건강하지 않다. 그녀는 소설 초반, 과거에 심장병을 앓았음을 상기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클라리사는 자신이 젊었을 때 겪었던 질병과 수술을 떠올리며, 그로 인해 활력이 약해졌다고 느낀다. 그녀는 겉으로는 매우 활발하고 사회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고립감과 삶의 덧없음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고 있다. 그녀의 정신적 상태 역시 좋지 않다. 전쟁과 상실의 시대를 지나며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계속해서 반추한다. 그녀는 감정적인 소외감과 공허함을 느끼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구심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셉티머스가 겪는 극단적인 정신적 고통과 대비되면서, 클라리사의 내면적 고뇌는 더욱 부각된다.
소설에서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종종 다른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그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과 그들의 관계를 재확인한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한 일상적인 의식이 아니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그녀의 외적인 삶을 안정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클라리사가 매우 복잡한 내면을 숨기고 있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는 독특한 장치로도 작용한다.
버지니아 울프와 박인환...차와 술
영국인인 버지니아 울프에게 차 마시기는 일상이었다. 조울증과 우울증을 앓았던 그녀에게 차는 위안과 안정감을 제공하였다. 그녀는 전쟁에 반대하며 자살로 생을 끊었으나 당시로는 노령까지 이 땅에서 버텼다. 주인공 클라리사처럼 차의 힘을 빌려 버틸 수 있었을지 모른다. 런던의 블룸즈버리 지역의 예술가, 철학자, 작가들과 교류하던 모임인 블룸즈버리 그룹의 기록에는 버지니아 울프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고 적혀있다.
박인환은 안타깝게도 29살의 나이에 일찍 요절하고 말았다. 박인환은 버지니아 울프의 감정과 시각에 깊게 공감한 시인이다. 그러나 시인 박인환이 차를 마셨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위스키를 즐겼다. 폭음은 그를 30세에 죽음으로 몰고 갔다. 박인환이 차를 통하여 위안과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면 1956년 이후에도 오래 이 땅에 남아 우리에게 보석 같은 시를 선사했을지 모를 일이다.
유영현 티클리닉 디렉터(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

유영현 디렉터 (yhyoo@dau.ac.kr)
Copyright © 코메디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년 여성이 ‘이 영양제’ 너무 많이 먹었더니…신장에 문제 생길 수도 - 코메디닷컴
- 아침 공복에 삶은 달걀 + ‘이 음식’ 먹었더니…혈당, 뱃살에 변화가? - 코메디닷컴
- 41kg 최준희, 더 앙상해진 몸매…“사람이 여기까지 빠질 수 있구나” - 코메디닷컴
- ‘뱀이다’ 김혜연 “몸매 비결은 ‘이것’ 8개 먹기?”…건강엔 괜찮나 - 코메디닷컴
- 아침부터 힘 ‘불끈’...단백질 가득한 아침 식단은? - 코메디닷컴
- “코 큰 男 ‘거시기’도 크다”는 속설…日연구팀, 진짜 상관있다고? - 코메디닷컴
- 매일 아침 머리 감을 때 쓰는데 ‘헉’...이렇게 위험한 성분이 들어 있다고? - 코메디닷컴
- 식사 후에 ‘이 습관’ 꼭 실천했더니…당뇨 ‘전 단계’에 어떤 변화가? - 코메디닷컴
- “가슴 보형물 덕에 ‘암’ 빨리 발견?”...샤워 중 멍울 쉽게 잡혔다는 32세女, 진짜? - 코메디닷
- ‘고개 숙인 남자’…조루증 치료는 ‘자가요법’부터, 어떻게? - 코메디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