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위해 규제 완화”…최태원의 명분 뒤 ‘진짜 목적’

이도윤 2025. 11.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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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금산분리(제도 완화)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투자를 감당할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SK하이닉스 밑에 투자용 특수목적법인(SPC)을 두고 공장 임대 등 리스를 허용하겠다는, 금산분리를 토대로 한 기존 규제 완화 구상이 그대로 굳혀지는 분위기입니다.

이어 "'SK하이닉스에 대한 최태원의 지배'는 절대 건드릴 수 없다는 전제에서 투자 활성화 방안을 모색한다면, AI⋅반도체 투자 활성화라는 국가적 명분을 통해 지배주주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SK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투자 규모를 회사의 수익으로만 계속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이라며 "반도체 뿐 아니라 미래에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을 이끌 산업을 지속 육성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자금 조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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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금산분리(제도 완화)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투자를 감당할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안을 두고 'SK 특혜' 논란이 불거지자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20일 한 말입니다.

최 회장 말대로 투자 위한 것이었다면, 이후 정부에서 금산분리 완화 논의 방향은 달라졌어야 합니다. 사실상 금산분리 혜택을 유일하게 보게 되는 기업인 SK마저 마다하는 안을 고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투자 부양만 목적이라면, 지원할 방법은 많고 특혜 논란이 불거진 기존 금산분리 완화안은 정부에도 SK에도 오히려 부담이죠.

하지만 정부 논의 방향도 분위기도 논란이 일기 전과 바뀐 건 없어 보입니다. SK하이닉스 밑에 투자용 특수목적법인(SPC)을 두고 공장 임대 등 리스를 허용하겠다는, 금산분리를 토대로 한 기존 규제 완화 구상이 그대로 굳혀지는 분위기입니다. 이 구상 가운데 일부는 SK가 제출한 자료가 바탕이 됐습니다.

SK의 진짜 목적은 뭐였을까요. 적어도 '투자'만은 아니어보입니다.

전문가들도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투자 활성화는 명분일 뿐, '진짜 목적'은 지주회사 규제에 균열을 내려는 데 있다고요.

■ "투자비 600조로 급증"…"근거 없어"

최 회장은 지난 16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 관련 투자비가 600조 원 규모까지 늘어날 거라고 말했습니다.

SK가 용인 반도체 투자 계획을 처음 발표할 2019년 당시의 예상 투자액, 120조 원입니다. 6년 새 투자비 400% 폭증을 언급한 겁니다.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 참석한 모습.


문제는 투자 기간입니다. 600조 원을 몇 년 안에 들이겠다는 건지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3년, 4년 안에 600조 원을 투자한다면 연간 투자액이 천문학적인 숫자인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투자 기간이 10년, 20년으로 늘어나면 어떨까요.

SK하이닉스는 이미 연간 30조 원 수준의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HBM 등 고부가가치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니, 설비 투자에 들일 수 있는 돈도 앞으로 늘어날 겁니다. 지금 수준으로 15년, 20년을 투자하면 금산분리 완화 없이도 600조 원 투자 감당에 아무런 문제가 없단 뜻입니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삼성이 20년간 30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했을 때도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왔었다"면서 SK의 600조 투자 주장에 대해 "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평했습니다.

이 전문가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공장 한 라인, 즉 한 기를 짓는 데 200억 달러, 우리 돈 20조 원에서 30조 원이 듭니다. 라인 네 개짜리 공장을 짓는 데 드는 기간은 2년을 잡습니다. 그러면 향후 수년간 SK하이닉스가 집중적으로 써야 할 돈은 600조 원이 아닌 80조 원에서 120조 원 수준이라는 추산이 나옵니다.

물론 공장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 장비에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갑니다. 이를 감안하면, 투자는 더 장기적인 계획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도체 공장에 들어가는 최첨단 EUV 장비는 수급 문제 때문에 한 해 공급받을 수 있는 양이 한정돼 있어섭니다.

이 전문가는 "ASML(장비 업체)에서 만들 수 있는 장비 대수가 한정적이고, 그걸 다른 업체들도 경쟁적으로 기다리고 있다"면서 "장비 놓는 것을 생각하더라도 결국 투자는 장기적인 플랜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시급해서 규제까지 빨리 풀어야 한다는 600조 원 투자, 현실적으로 봤을 때는 매우 장기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 전문가는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우려했습니다. "반도체만 금산분리를 허문다는 건 다른 산업과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투자받은 돈을 반도체 말고 다른 분야로 쓰려할 때 정부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없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 "투자 위해 SPC 설립"…"주주에게 불리"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금산분리 완화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SK는 SK하이닉스 밑에 SPC를 만들고 사모펀드처럼 운영해 공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그런데 이 구상은 주주들 이익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SK하이닉스가 직접 투자받는 것보다 훨씬 비싸게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SK하이닉스가 증손회사로 SPC를 만들어서 자신의 리스크를 전가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리스크에 대한 대가로 회사는 SPC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이자를 줘야 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사모펀드를 통한 자금 조달은 신주 발행이나 채권 발행 등 통상적인 방식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며 " 사채를 쓰는 게 제일 낫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주장"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곧 SK하이닉스와 주주들의 손해로 이어진단 게 박 교수 설명입니다. 주주들은 회사가 저렴하게 자본을 조달해야 이익을 보는데, 사모펀드를 통한다면 이 비용이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박 교수는 "SK하이닉스 이사는 충실의무를 위해 가장 값싼 방식의 자본 조달을 의결해야 한다"며 지금의 금산분리 완화안은 "이재명 정부의 1호 민생 법안인 상법 개정의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투자금 조달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투자 모델 구상도 모두 합리적이지 않다는 게 박 교수 설명입니다.

■ "새 투자 제도 필요"…"지배주주 배 불려"

그런데도 왜 SK는 이런 투자 모델을 정부 측에 냈을까요. 지금으로서는 추론만 가능합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 최태원 회장의 SK하이닉스 지배 욕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지 않더라도, SK하이닉스는 신주를 발행해 충분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증자로 자금을 확보한 것처럼요. 그런데 이런 방식을 쓰면, SK하이닉스를 지배하기 위한 모기업의 지분율이 낮아집니다.

현재 SK하이닉스의 모기업인 SK스퀘어는 하이닉스 지분을 '아슬아슬하게' 들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상 자회사는 손자회사 지분을 최소 20% 들고 있어야 합니다. SK스퀘어가 가진 하이닉스 지분은 20.07%입니다. 이 0.07%로 SK하이닉스가 SK그룹의 지배를 받느냐 아니냐가 갈리는 겁니다. SK 입장에서는 사수해야 하는 숫자입니다. SK의 기업 운영 제1 원칙이 지배 체제 공고화라면요.

결국 '0.07% 지분'으로 지금의 금산분리 완화 논란이 촉발된 셈입니다. SK가 희망하는 안대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한다면, SK하이닉스에 대한 그룹의 지배에 흠을 내지 않으면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회사는 규모를 키우기 위해 외부로부터 증자받을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기존 지배주주의 지배권이 희석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 SK하이닉스가 성장하면서 최태원 회장의 지분이 희석되는 것을 최태원 회장을 포함해 우리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러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SK하이닉스에 대한 최태원의 지배’는 절대 건드릴 수 없다는 전제에서 투자 활성화 방안을 모색한다면, AI⋅반도체 투자 활성화라는 국가적 명분을 통해 지배주주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SK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투자 규모를 회사의 수익으로만 계속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이라며 "반도체 뿐 아니라 미래에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을 이끌 산업을 지속 육성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자금 조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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