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향 일품인 유자, 술로 빚으니 바다음식과 찰떡궁합
박상현의 ‘찰나의 맛’
![수확 적기에 접어든 유자 열매들. 은은하면서도 복합적인 향을 갖고 있어 청을 만들면 쓰임이 많다. [사진 박상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9/joongangsunday/20251129010752202uftn.jpg)
페란 아드리아는 2002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생애 처음으로 유자를 접하게 된다. 당시 상황을 일본의 대표적인 요리학교 ‘핫토리영양전문학교’의 창립자인 핫토리 유키오 이사장은 이렇게 전한다. “페란을 긴자에 있는 교토요리 전문점 ‘미부’에 데려갔어요. 그곳에서는 유자 껍질을 통째로 사용한 요리가 나왔는데, 맛을 본 페란은 셰프에게 직접 유자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어요. 페란은 그 자리에서 바로 유자를 손에 쥐고 으깨버렸죠. 사방에 유자즙이 튀었고 방안에는 유자향으로 가득 찼어요. 페란은 그 깊은 향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죠.”
페란 아드리아가 정말로 눈물을 흘렸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중요한 건 이후 그의 행보다. 스페인으로 돌아간 페란 아드리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럽 요리사들에게 유자를 소개했다. 덕분에 유럽 각국에서 일본으로 유자 수입 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EU의 엄격한 검역 조건을 통과해 2013년부터는 가공품이 아닌 생 유자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유럽에서 일본산 유자를 사용한 요리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는 한 명의 셰프가 산업 생태계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과 일본은 대표적인 유자 생산국인데 활용법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유자는 과육을 바로 먹을 수는 없고 껍질과 과즙만 활용할 수 있다. 심지어 저장성이 약해 수확 즉시 과즙과 슬라이스 형태로 가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유차청을 만들고 이를 대부분 유자차로 음용했다. 일본은 유자의 생과를 어떻게든 요리에 활용했고, 유자즙이 함유된 다양한 소스를 개발했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데 주안점을 둔 일본요리에 유자 향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페란 아드리아를 단번에 매료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저장성이 약하고 과육을 바로 먹을 수 없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자가 한국과 일본에서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이유는 특유의 향 때문이다. 유자는 운향과의 열매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향을 갖고 있다. 레몬이 직설이라면 유자는 은은하고 복합적이다. 이러한 매력은 술을 빚었을 때 특히 도드라진다.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 유자 특유의 향과 산미를 오래 가둘 수 있다. 은은한 빛깔도 인상적이다.
![유자 향과 산미를 오롯이 담아낸 ㈜맑은내일의 과실주 ‘사화유자’. 상쾌하고 뒷맛이 깔끔해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사진 박상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9/joongangsunday/20251129010753530grjc.jpg)
제조방식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는 시각적으로 대번에 확인할 수 있다. 츠루우메는 병 아래쪽에 침전물이 꽤 많이 쌓이는 반면, 사화유자는 침전물이 거의 없다. 발효과정에서 고형물이 대부분 분해됐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맛으로도 이어진다. 츠루우메는 밀도가 높아 그냥 마시기보다 탄산수를 섞어서 먹어야 가볍고 산뜻하다. 하지만 사화유자는 그냥 먹었어도 상쾌하고 뒷맛이 깔끔하며 여운이 길다.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특히 우리나라 유자는 일본 유자보다 껍질이 두껍고 향이 강해 술을 빚어도 여전히 짱짱하다.
![유자 향과 산미를 오롯이 담아낸 ㈜맑은내일의 박중협 대표(왼쪽). [사진 박상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9/joongangsunday/20251129010754819eeix.jpg)
페란 아드리아가 유럽 미식계에 일본 유자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사화유자는 한국산 유자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소비자가 그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방어와 굴을 비롯해 바다가 본격적으로 맛있어지는 계절이다. 유자의 향과 매력을 온전히 담아낸 사화유자는 바다에서 얻은 음식과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궁합이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