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울중앙지법 영장 4인방, 그들은 과연 정치적인가?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 4명이 정치적 판단으로 3대 특검의 구속영장을 기각한다는 의혹은 사실일까? 11월 17일 순직해병 특검팀(이명현 특별검사)이 전직 공수처 부장검사 2명(김선규, 송창진)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19일 김건희 씨의 오빠 김진우 씨에 대해 김건희 특검팀(민중기 특별검사)이 청구한 영장도 나오지 않자, 여권과 진보진영에서는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는 것은 물론 법원의 조직적인 특검 무력화 의혹까지 제기한다.
물론 특검 수사력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있고, 무리한 영장 청구로 자충수를 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설사 그런 면이 있다고 쳐도 세 특검의 평균 구속영장 기각률이 50%를 넘는 건 이례적이고 지나치다. 아무리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고 재판에서 유죄를 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도 수사는 수사대로 완결성이 있는 법이다. 결정적인 고비마다 영장을 기각해 수사 동력을 떨어뜨리고 수사의 맥을 끊어버리는 행위는 예사롭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을 전담하는 판사는 정재욱, 박정호, 이정재, 남세진 네 명이다. 영장 4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의 직급은 모두 부장판사인데, 사법연수원 기수로는 정 판사가 선임이다(30기). 그 다음이 연수원 32기 동기인 박 판사와 이 판사다. 유일한 여성인 남 판사는 33기다. 특히 이른바 ‘수원지법 3인방’으로 불리는 정 판사와 박 판사, 이 판사는 내란 동조 의혹에 휩싸인 조희대 대법원장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공교롭게도 세 판사는 모두 이재명 대통령 부부 관련 재판이 진행되는 수원지방법원에서 근무하다 지난 2월 나란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로 옮겨왔다.

종잡을 수 없는 영장 발부 기준
정재욱 판사는 김건희 씨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반면 한덕수 전 총리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채 해병 사건 직권남용 피의자 5명, 양평 공흥지구 특혜 개발 의혹에 관련된 김진우 씨에 대한 영장은 기각했다. 특히 내란 우두머리 방조 또는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총리에 대한 영장 기각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박정호 판사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해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김건희 씨에게 공천 청탁 대가로 그림을 뇌물로 제공한 김상민 전 부장검사를 구속하고, 최근에는 조태용 전 국정원장에 대한 영장을 발부하는 ‘균형감각’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정재 판사는 지난 6월 경찰의 출석 통보에 세 차례나 불응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내란 특검이 청구한 체포영장을 기각해 비난을 샀던 전력이 있다. 하지만 해병 특검 주요 피의자인 임성근 전 사단장을 구속함으로써 이종섭 전 장관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정 판사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남세진 판사는 7월 초 내란 특검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공수처의 체포 시도를 경호처를 시켜 막은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와 직권남용 혐의 등을 인정하고, 증거 인멸 우려도 있다고 판단했다. 김건희 특검에 의해 영장이 청구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구속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잇따른 영장 기각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박성재 전 장관에 대한 내란 특검팀의 영장 재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 이어 해병 특검이 수사 방해 혐의로 청구한 전직 공수처 검사들에 대한 영장도 기각했다.
이처럼 영장 발부 내용으로 보면, 네 판사가 정치적으로, 또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결정을 내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적어도 형식 면에서는 사람이 아닌, 사안별로 판단했다는 느낌이 든다. 판사들 나름대로 ‘균형’을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4인방에 대한 의구심이 깊어지는 것은 영장 발부의 원칙과 기준이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대 출신인 정재욱 판사는 이상민 전 장관과 김건희 씨를 구속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김씨에 대한 전격적 영장 발부는 특검 수사에 긍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언론도 “차분한 성격”이니 “합리적인 결정”이니 하면서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그가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 인멸 우려도 없다”는 이유로 한 전 총리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자 여론은 돌변했다. 언론도 장단을 맞췄다. 예컨대 한겨레는 “계엄선포문 인지와 국무회의 소집, 사후 계엄선포문 작성 및 포기 등에 관한 한덕수의 거짓말을 방어권으로 옹호해줬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이어 채 해병 사건에서 직권남용 공범 혐의를 받는 이종섭 장관 등 5명에 대한 영장을 줄기각하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정 판사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어느 정도 소명되나, 주요 혐의와 관련해 법리적인 면에서 다툴 여지가 있다”는 알쏭달쏭한 논리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미 상당한 증거가 수집된 점, 방어권 보장의 필요성, 불구속 수사의 원칙까지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판사가 방어권 보장과 불구속 수사 원칙을 내세우면 웬만한 구속영장은 기각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원칙의 선택적 적용이다. 정 판사가 김건희 씨와 이상민 전 장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을 구속할 때 공통으로 내세운 기준은 ‘증거 인멸 우려’였다. 그런데 비상계엄 당일 밤 내란 동조 행적이 거의 드러난 한 전 총리야 그렇다 쳐도 여전히 범죄혐의를 부인하는 이종섭 전 장관을 비롯한 채 해병 사건의 직권남용 피의자 5명에 대해 이런 잣대를 들이대지 않은 것은 의아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해병 특검이 한꺼번에 5명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전략적 실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사건에 정통한 모 변호사는 “일부는 불구속기소를 해도 되는데 굳이 다 영장을 청구해 논란을 자초했다”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상황에 따라 다른 ‘증거 인멸’ 잣대
박정호 판사는 한 전 총리 영장을 기각한 정재욱 판사와 마치 이어달리기라도 하듯이 박성재 전 장관의 구치소행을 막아섰다. 박 전 장관의 경우 한 전 총리와 달리 불법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행위’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누가 봐도 ‘구속각’이었다. 내란 특검은 그가 법무부 간부들에게 구치소 수용 시설 점검과 출국금지 대상자 파악 등을 지시한 것을 내란 중요 임무 종사로 간주했다.
하지만 박 판사는 “박 전 장관이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나 인식한 위법성의 구체적 내용, 박 전 장관이 취한 조치의 위법성 존부나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는 고상한 논리로 영장을 내주지 않았다. 어려운 법률용어를 구사했지만, 한마디로 박 전 장관이 비상계엄이 불법임을 몰랐다는 취지였다. 그러자 “다른 사람도 아닌 법무부 장관이 법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 “영장판사가 전직 법무부 장관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조롱 섞인 비난이 쏟아졌다.
이렇듯 진보진영의 원성을 샀던 박 판사는 최근 조태용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조 전 원장의 혐의는 비상계엄을 사전에 알고도 국회에 통보하지 않은 직무유기와 정치 관여를 금지하는 국정원법 위반인데, 박 판사가 내세운 영장 발부 사유는 혐의 중대성과 증거 인멸 우려였다. 반면 내란 선동 혐의를 받는 황교안 전 총리에 대해서는 “객관적 사실관계가 확보됐다”면서도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 등 구속 사유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박성재, 조태용, 황교안 세 사람에 관한 결정을 비교하면, ‘증거 인멸’ 잣대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기각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하기까지 했던 이정재 판사는 임성근 전 사단장을 구속함으로써 해병 특검의 체면을 세워줬다. 만약 임 전 사단장마저 풀려났더라면 해병 특검은 ‘영장 기각률 100%’라는 참담한 기록을 세울 뻔했다.
이 판사는 영장 발부 사유로 “증거 인멸 우려”를 꼽았다. 임 전 사단장이 영장 청구 며칠 전에 그간 기억나지 않는다며 특검에 제공하지 않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갑자기 공개한 점,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이 나오게 부하들을 회유한 의혹, 구명 로비 의혹에 관해 자신에게 불리하게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배우 박성웅 씨를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압박한 점 등을 중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판사는 임 전 사단장과 마찬가지로 과실치사 및 과실치상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최진규 전 해병대 1사단 11포병대대장은 구속하지 않았다. 최 전 대대장은 사건 당시 수중수색을 직접 지시한 현장 책임자인 만큼 책임이 작지 않다. 그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 데 대해서는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없지 않으나, 임 전 사단장과 달리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게 이 판사의 기각 논리였다.
남세진 판사는 지귀연 판사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풀려난 윤 전 대통령을 다시 구속함으로써 여권과 진보진영으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당시 남 판사에 대한 언론 보도는 “차분하고 합리적인 성품” “정치색이 엷고 법리에 밝은 정통 판사” 등 호평이 많았다. 이후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해병 특검, 모해위증)과 김용대 전 드론작전사령관(내란 특검, 외환)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9월 16일 권성동 의원을 증거 인멸 사유로 구속할 때만 해도 남 판사는 진보진영의 우군으로 비쳤다. 하지만 내란 특검이 박성재 전 장관에 대해 공들여 재청구한 영장을 발부하지 않자, 우호적 여론은 한순간에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남 판사의 기각 논리는 “범죄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충분한 방어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도 추가됐다. 수사기관이 통상적으로 내세우는 구속 사유가 다 부정당한 셈이다. 장관실 PC 하드디스크 파기와 휴대전화 교체 등 박 전 장관의 증거 인멸 정황까지 확보한 특검으로서는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관성과 보편성 갖춰야
이처럼 영장전담판사 4인의 영장 발부 기준은 명확하지 않고 오락가락한다. 그들 나름의 원칙과 소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관성과 통일성이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범죄혐의가 충분히 소명됐지만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을 면하고, 누군가는 다툼의 소지가 있지만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된다. 범죄혐의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는 있겠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른바 고무줄 잣대다.
여기에 정파성이 결합하면 호평을 넘어 찬사까지 받았던 판사가 하루아침에 성토 대상으로 바뀐다. 정파성에 따른 비이성적인 비난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영장 판사들이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논리의 일관성과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 언론이 3대 특검의 높은 영장 기각률을 두고 “영장판사들의 철벽 방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법 통제와 인권 보호라는 긍정적 면보다 국민 정서나 합리적 여론과 동떨어진다는 부정적 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영장 기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특검법 취지에 맞는 맞춤형 또는 주문형 수사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정교하고 탄탄한 수사와 인권 친화적인 수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법원의 고무줄 잣대가 합리화되는 건 아니다. 정치적으로 치우쳤다거나 내란세력 수사를 방해한다는 불필요한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영장을 기각할 때는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준과 법리를 제시해야 한다.
뉴스타파 조성식 전문위원 / 전 신동아 기자 blueink@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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