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이 문 열고 여수가 운명 결정…석유화학 구조조정 첫 장 열렸다

안옥희 2025. 11. 28.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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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 ‘1호 구조조정’ 대산 통합안 제출

[비즈니스 포커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1월 26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LG화학 여수공장을 현장점검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1월 26일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열린 ‘여수 석유화학기업 사업재편 간담회’에서 강력한 발언을 내놨다.

“대산이 사업 재편의 포문(gate)을 열었다면 여수는 사업 재편의 운명(fate)을 좌우할 것”이라며 정부가 제시한 연말 사업재편 계획서 제출 기한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어 “기한 연장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으며, 산업부가 더 이상 권고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본격적인 정책 집행 단계로 전환했음을 공식화했다.

이 같은 발언에는 이날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제출한 대산 NCC 통합·재편안, 즉 국내 석유화학업계 첫 공식 구조조정안이 자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마침내 1호안이 나왔다”는 평가와 함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긴장감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대산 사례는 단순한 설비 통합을 넘어, 수년간 이어져 온 ‘선제 감축을 누가 맡을 것인가’에 대한 업계 내 미묘한 기싸움을 처음으로 깨는 이정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왜 지금인가, 글로벌 공급 과잉·수익성 한계점 돌파

한국 석유화학은 중국과 중동, 최근에는 인도까지 범용 화학 설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글로벌 공급과잉 상태에 직면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NCC(나프타 분해설비) 가동률은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범용 제품에서 70% 이하 가동은 사실상 적자를 의미한다.

여기에 전기요금 인상, 납사 가격 변동, 안전 규제 강화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은 더 이상 ‘버티기 전략’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8월 정부는 국내 전체 NCC 용량 1470만톤 중 18~25%에 해당하는 270만~370만톤을 기업들이 자율 감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산업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방안’과 업계 자율 협약은 이제 기업 스스로 위기를 흡수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탈탄소·친환경 규제, 원료 가격 변동성, 글로벌 경기 둔화가 겹치면서 기존 ‘규모의 경제’ 전략은 효과를 상실했다. 이에 따라 설비 통폐합과 CAPA 감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 과제가 됐다.

석유화학 기업들의 에틸렌 생산량과 감축 목표. 그래픽=정다운 기자

 ‘대산 1호’가 바꾼 게임의 판

11월 26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대산 NCC 설비 통합·재편안을 제출했다. 롯데케미칼이 대산공장을 분할하고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는 방식이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첫 공식 구조조정 사례로 평가된다.

정부가 제시한 연말 제출 기한과 정책적 인센티브는 단순 권고가 아닌 강제적 압박으로 작용하며 타 산단 기업에도 유사한 조치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 구조조정 무대는 여수 국가산단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수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NCC 통합 방안을 두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으나, 설비 규모 차이와 지분 구조 조정 등 난제가 얽혀 협상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천NCC와 롯데케미칼 역시 내부적으로 구조조정 옵션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지역 기업들도 공동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에쓰오일 등 3사는 외부 컨설팅을 통해 구조개편 방향을 논의 중이며, 연말까지 사업재편안을 제출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NCC 감축량 배분, 눈치싸움 최대 난제

표면적으로는 사업재편 필요성에 모두 공감하지만 실제 재편안 제출은 쉽지 않다. 감축은 곧 손실을 의미한다. 감가상각, 재고 축소, 공장 가동 중단 비용 등이 한꺼번에 발생하고 선두에서 결정한 기업이 불리해진다. 여수·울산 산단은 지분 구조와 원료 공급 라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NCC 한 라인이 멈추면 합성수지·EO계열·C4계열 전반에 영향이 미친다. 감축이 실현되더라도 국내 수요를 넘어 국제 시장의 공급 과잉이 지속되는 한, 가격 안정과 수익성 회복은 장담할 수 없다.

글로벌 시장 변동성이 여전히 큰 만큼, 감축에 나선 뒤 2~3년 안에 국제 에틸렌 가격이 반등할 경우 감축 기업만 생산능력을 줄인 채 손실을 떠안게 되고, 경쟁사 대비 이익 개선 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내 에틸렌 생산량(1470만톤)의 18~25%인 270만~370만 톤 감축이 정부 요구 사항으로 제시됐지만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구체적 감축량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울산과 여수 산단에서 나머지 160만 톤을 분담해야 하며 다른 산단 기업들은 눈치보기 전략을 이어가고 있어 갈등의 씨앗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의 NCC 설비가 있는 대산석유화학단지. 사진=한국경제신문

 감축·재편 효과와 리스크 교차

대산 재편이 실제 감축과 효율화를 이끌고 여수·울산도 후속 재편을 진행하면 몇 가지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첫째, NCC CAPA 감축으로 범용 제품 가격과 마진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측에 따르면 전체 CAPA가 15~20%만 줄어도 국내 기업 가동률 개선과 마진 정상화 효과가 가능하다고 전망된다.

둘째, 설비 통합으로 고정비 절감과 운영 효율 증대가 기대된다. 동일 단지 내 유틸리티·설비 공유로 비용 효율이 크게 올라갈 수 있다. 셋째, 범용 중심 CAPA에 묶였던 자금을 고부가가치 화학, 친환경 소재, 첨단 소재 투자로 전환할 여력이 생길 수 있다. EOA·PO, 배터리 소재 등 스페셜티 분야 투자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하나증권 윤재성 연구원은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은 2024년 기준 1000억원 이상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크래커 통합과 셧다운이 시행되면 통합 법인의 손실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여수 NCC 가동률 상향과 손익 개선, 나아가 흑자전환까지 기대할 수 있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금융 인센티브도 긍정적 요소다. 기업분할·합병 과정 단순화, 여신 한도 상향, 신용평가 항목 완화 등 정책적 지원이 예상된다. 승인 절차는 2025년 12월 완료, 2026년 1분기 공정위 사전심사 결과가 나오면 금융권과 구체적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본격 생산 조정과 설비 최적화는 2026년 중반 이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NCC 한 라인 감축은 수백 개 협력 업체와 수천 명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지역경제 충격이 불가피하다. 여수 산단은 LG화학·GS칼텍스·여천NCC·롯데케미칼 등이 얽혀 있어 단순 통합 모델 적용이 어렵고 울산은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등 변수까지 겹쳐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공정위 조건부 승인 가능성도 구조조정 표준화와 속도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완결의 열쇠는 특별법과 공정위 심사

실제 시행령 제정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까지 모두 통과돼야만 구조조정이 완결되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완결성을 확보하려면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수다.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명 ‘석화 특별법’이 조만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예정이다. 이 법은 기업 합병과 설비 재편에 필요한 재정·금융 지원 근거를 제공한다.

정부는 법 통과 직후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정책자금 지원, 자산 재평가, 조세 혜택 등 구체적 지원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시설 통합 및 합병 과정에서 담합 논란을 방지할 세부 기준도 설정한다. 대산·여수 NCC 등 구조조정 중인 기업에 우선 적용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산 NCC 1호 통합은 한국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며 “다만 감축량 분배, 지역경제 영향, 공정위 승인 등 넘어야 할 난제가 많아 향후 산업 전반의 재편은 여수와 울산 산단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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