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뚜안을 누가 3층 낭떠러지로 몰았나…다시 맞춘 그날의 3시간
재구성한 25살 베트남 유학생 추락사
시민사회, 사망 규명 진상조사위 출범
지난달 28일 대구 성서공단에서 25살 베트남 여성이 출입국외국인사무소 단속 중 추락사했다. 값싸게 쓰이고 버려지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추락의 과정’을 재구성했다. ‘단속당하기 싫으면 합법적으로 살면 된다’는 말은 명쾌하지만 되풀이되는 죽음의 이유를 짚어내기보다 덮어버린다.

수영(가명)이 “결혼식 날 뭐 입을 거냐”(2시55분)고 문자로 물었을 때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뚜안은 7분 뒤 답을 보냈다. 나흘 전(10월24일) 셋이 만난 자리에서 응옥(가명)의 결혼 날짜가 잡혔다는 말을 들은 뚜안은 많이 웃고 크게 기뻐했다. 평소처럼 밝고 생글거리는 목소리로 응옥을 축하했다.
뚜안과 응옥과 수영은 서로에게 ‘절친’이었다. 뚜안과 응옥의 부모는 베트남에서부터 가까운 이웃이었고 2018년 대구로 유학 온 뚜안은 응옥과 몇 년간 함께 살았다. 수영과는 계명문화대(2년제) 한국어문화과에서 친해졌다. 졸업 뒤 응옥과 수영은 계명대 한국어교육과로 진학했고 뚜안은 같은 대학에서 국제통상학을 전공했다. 엄마가 한국인 아빠와 재혼한 응옥이나 부모의 한국 귀화 뒤 입국한 수영은 ‘한국 사람’이었다. 뚜안만 베트남 국적이었다. 둘만큼이나 한국을 사랑했다. 베트남엔 없는 ‘뚜렷한 사계절’을 특히 좋아했다.
“뚜안, 공장에 무슨 일 있어?”(3시15분)
4분 전 수영에게 지인의 전화가 걸려 왔다. 성서공단(달서구) 자동차부품 공장에 단속반이 들이닥쳐 수영의 다른 친구 ㄱ이 붙잡혔다고 했다. 경주 아펙(APEC)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하고 국민 일자리 침해를 막겠다며 한달 전부터(9월29일~12월5일) 계속해온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이었다. 뚜안은 ㄱ과 2층에서 일하고 있었다. 뚜안의 응답이 없자 수영이 전화(3시23분)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2분 뒤 “숨어 있다”는 뚜안의 문자가 왔다.
“너무 무서워.”(3시26분)
3층으로 도망간 뚜안은 에어컨 실외기 보관 창고로 피했다. 체구가 작은 그는 낮은 테이블 아래 몸을 감췄다. “조금 전 내가 있는 곳으로 출입국이 왔다”(3시39분)거나 “출입국이 소리치고 있다”(3시40분)며 놀란 마음을 수영에게 전했다.

비자라는 함정
“나도 3층.”
뚜안이 수영에게 무섭다고 말하던 그때(3시26분) ‘회사 언니’ ㄴ이 자신의 위치를 뚜안에게 알렸다. ㄴ도 3층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두 사람은 바짝 긴장했다.
“출입국이 3층에 올라오고 있을까?”(4시37분 뚜안) “그런 거 같아.”(4시37분 ㄴ) “출입국이 언니 숨은 자리에 다시 왔어?”(4시38분 뚜안) “아까 왔는데 지금은 없어.”(4시38분 ㄴ)
단속을 피해 숨었지만 뚜안은 미등록이 아니었다. 유학비자(D2)로 학교를 다녔고 지난 2월 대학 졸업 뒤엔 구직비자(D10)로 체류했다. 구직비자는 체류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였지만 불가능하게 하는 근거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줄면서 존폐 기로에 몰린 대학들에게 외국인 유학생은 중요한 현금 공급원”(대구 지역 한 대학교 한국어교원)이었다. 정부도 유학생 유치를 장려(2023년 8월 교육부 “2027년까지 30만명 유치로 세계 10대 유학강국 도약”)했으나 그들이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길은 막아놨다. 빚을 내 유학 온 가난한 나라의 학생들은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라도 공부만 할 순 없었다.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벌려면 일을 해야 했지만 아르바이트 시간(한국어능력점수와 학위 여부 등에 따라 차등 부여)은 엄격하게 제한됐다. “일을 못해 먹을 것도 살 수 없을 만큼 힘들어하다 결국 학교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수영의 주변에도 많았다. 대학 시절 식당에서 일했던 뚜안도 졸업 뒤 대학원 등록금 마련을 위해 그 공장을 찾았다. 구직비자는 전문직종이나 첨단기술 분야 취업 활동만 허락했다. 비수도권 외국인 졸업생들이 그마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제조업은 아예 취업이 불허됐다. 출근 2주밖에 안 된 날 단속이 들어왔다.

“울고 싶어.”(6시11분)
ㄷ이 “괜찮냐”(6시10분)고 묻자 뚜안이 답했다. 단속 소식이 메신저와 에스앤에스(SNS)를 타고 빠르게 전파됐다. 인근 공장 노동자들도 사진을 찍어 올렸다. 많은 눈들이 단속을 지켜보며 중계하고 있었다. 뚜안의 안전을 염려하는 친구와 지인들이 잇따라 연락했다. “배터리 아껴 쓰라”는 ㄷ에게 “10%”뿐인 뚜안은 “왜 이렇게 오래 단속하는지 모르겠다”(6시24분)며 괴로워했다. 3시간 넘도록 창고 테이블 밑에서 꼼짝 못하는 동안 뚜안은 호흡과 생리적 곤란을 호소했다.
“출입국이 명단 가지고 아직 못 찾은 사람 찾고 있어.”(6시26분)
에스앤에스에서 단속 장면들을 캡처해 보내며 수영이 ‘밖’의 상황을 전했다.
“응.”
6시27분. 뚜안은 짧게 답했다.

뚜안은 예전 공장에서 구직비자로 일하다 벌금을 문 적이 있었다. 다시 단속되면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에 필사적으로 숨었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뚜안의 꿈은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니었”(수영)다. “힘들게 일해온 부모의 고생을 덜고 7살 어린 남동생의 학비를 뒷바라지 하는 것”(뚜안 아버지)이 딸이자 누나의 꿈이었다.
“어디야? 다 갔어. 너 어디야?”
6시38분. 단속반 버스가 공장 정문을 나서는 사진을 페이스북에서 받아 전송하며 수영이 물었다. 뚜안은 문자를 읽지 않았다. 1분 뒤 ㄹ이 메신저로 뚜안을 찾았다.
“언니, 어디 숨어 있지? 다행이다.”
ㄹ도 에스앤에스 게시물을 문자 아래에 붙였다. 누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먼 나라 뉴스처럼 뚜안에게 전달됐다. 반응이 없었다.

“ㅠㅠ 무섭다, 왜 이렇게 오래…”
7년 전 베트남에서 유학 온 마이는 경기도 수원의 한 대학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 뒤 광주광역시에서 학교를 다니다 중퇴했다. 유학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했지만 등록금과 기숙사비도 대지 못해 학생 신분을 잃고 미등록이 됐다. 그 공장에선 파견직으로 4년을 일했다. 성서공단으로 인력을 보내는 파견회사들은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몇 개월 단위로 업체 이름을 바꾸거나 노동자에게 미리 받아둔 돈을 퇴직금으로 서류를 꾸며 돌려줬다.
마이는 6시28분에 상자에서 나왔다. 물건을 위에 올려 단속반 눈을 피하도록 도왔던 한국인 직원이 “출입국 갔다”며 상자를 두드렸다. 공포가 가시지 않은 마이는 회사 뒷문을 향해 뛰었다. 1층 자재창고 앞에 한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 “의식이 없었고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섭고 다급해 깨우지도 못하고 집으로 달렸”다. 남동생에게 전화(6시34분)해 쓰러진 사람이 있다고 알렸다.
누나의 전화를 받았을 때 동생은 이유진(대구경북베트남공동체 전 회장·2010년 결혼이주)과 공장 앞에 있었다. 이유진은 4시46분에 공장 정문에 도착했다. 5시께 단속반에게 명함을 건네며 “오래 했으니 그만하고 돌아가달라고 요청”했다.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회사에서 받은 명단과 대조하면서 남자 몇 명 여자 몇 명 남았다며 계속 수색을 지시”했다.
마이가 동생에게 알려준 장소로 이유진이 찾아갔을 때(6시50분께) 여성의 몸은 덮개로 싸여 있었다. 119구급대원이 신분 확인을 부탁하며 덮개를 들췄다. “처음 보는 귀엽고 하얀 얼굴이 피를 흘리며 눈을 못 감고” 있었다. 그날 이유진은 밤새도록 울었다.

“뚜안 어떻게 됐어요?”
이유진이 들고 있던 뚜안의 휴대폰을 알아보고 한 청년이 다가와 물었다. 6시27분 이후 뚜안의 응답이 없자 차를 몰고 달려온 수영이었다. 수영은 아득해졌다. 뚜안이 왜 1층에서 추락사 한 채 발견됐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언니야? 진짜 언니야? 언니라고 말하지마.”(8시23분)
수영의 손으로 넘어온 휴대폰이 뚜안의 안위를 묻는 문자와 전화들로 쉬지 않고 울었다.
그 전화들에 섞여 뚜안 아버지의 번호가 떴다. 그날 딸과 저녁 시간을 보내기로 했던 부모(경북 칠곡에서 일)가 도착한 뒤에야 수영도 뚜안 곁(8시19분)으로 갈 수 있었다. 부모와 수영이 오열했다.
이유진의 연락(7시1분)을 받고 김희정(금속노조 성서공단지회장)이 공장에 닿았을 땐(7시30분께) 수십명의 베트남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엔 집으로 도망갔다가 뚜안이 걱정돼 공장으로 돌아온 마이도 있었다. 마이는 그 자리에서 ㅁ을 만났다.
ㅁ도 공장에서 구직비자로 일했고 뚜안과 친했다. ㅁ이 숨어서 뚜안과 나눴던 문자를 마이에게 보여줬다. 뚜안은 “출입국이 와서 손전등으로 살펴보고 갔다”거나 “누가 들어와서 불켰어. ㅠㅠ 무섭다”고 했다. 각각 5시27분과 5시58분에 수신됐다.
현장을 살핀 김희정은 오후 2시50분부터 시작된 강압적이고 이례적인 장시간 수색이 뚜안을 사망으로 몰았다고 봤다. 법무부는 부인했다. “적법절차를 준수”한 단속이었고 “5시50분경 철수”해 6시30분 이후로 추정되는 사망과 무관하다고 발표(10월29일)했다. 단속과 사망이 별개란 주장은 이주민뿐 아니라 그들 없인 유지되지 않는 지역사회의 반발과 대책위원회 구성을 불렀다. “최저임금으로 고착화돼 한국인 노동자를 구하기 힘든 성서공단 제조업체들과 주변 상권은 이주민 아니면 생존이 불가능”(김희정)했다. 뚜안이 일한 공장은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며 법무부가 ‘중점단속 분야’로 지목한 건설·배달·택배 쪽 회사도 아니었다.
“오늘 야간 근무할 수 있습니다.”
이튿날 파견회사로부터 마이에게 문자가 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건 공장으로의 출근 의사를 물었다. 뚜안 추락 당시에도 공장 기계는 멈추지 않고 돌았다. 아무 일도 없지 않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뚜안이 떠올라 마이는 보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마이는 출근하지 않았다.
증식하는 혐오 폭력
외국인 혐오를 앞세워 정치적 이득을 꾀하는 일들이 전직 대통령 차원에서 시도되면서 한국은 비자 유무와 상관없이 이주민들에게 한층 위험한 사회가 되고 있었다. 뚜안이 졸업한 계명대 주변에서도 ‘신고 안 할 테니 돈을 달라’며 위협하는 중학생들이 최근 목격됐다. “비자가 있든 없든 신고부터 하고 체류자격이 확인돼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일들이 빈번”(수영)해졌다.

“착한 딸이었고 좋은 사람이었으니 저세상에서도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거라.”
16일 오후 성서공단역 앞에서 열린 거리추모제에서 뚜안의 아버지(48)가 딸의 영정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가난한 사람은 일하다 죽어야 하냐”며 울먹였다. 아버지 옆에서 수영이 향불을 나눠 줬다. 응옥은 이날로 예정됐던 결혼식을 연기했다.
대책위는 26일 뚜안이 사망한 공장 앞에서 고인의 죽음을 규명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했다. 사망 경위부터 다시 파악한 뒤 단속 규정 위반이 확인되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손해배상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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