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매일 피해자 사진 봤다… DNA 일치 결과에 눈물 흘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5년간 매일같이 이 사진을 봤어요."
김장수(55·경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중요미제·장기실종사건 수사팀장의 책상 오른쪽 가림막에는 인쇄된 사진이 붙어 있다.
미제사건전담팀으로 발령이 난 2021년 초, 신정동 사건을 수사하게 된 김 팀장은 일단 사진부터 붙였다.
김 팀장은 "수사 기법이라 말할 순 없지만, 범행 정황상 처음부터 두 사건의 범인이 다른 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년 미제 신정동 연쇄 살인사건 맡은 뒤
젤 먼저 사무실 책상 옆 피해자 사진 붙여
23만1897명 대상 수사… 국제 공조까지
주말엔 신정동 종일 머물고 '쪽잠' 자기도
"죽어도 끝나지 않아, 살인범들 자수하길"

"5년간 매일같이 이 사진을 봤어요."
김장수(55·경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중요미제·장기실종사건 수사팀장의 책상 오른쪽 가림막에는 인쇄된 사진이 붙어 있다. 20대 여성의 학생증 사진과, 40대 여성의 마지막 행적이 담긴 폐쇄회로(CC)TV 장면. 두 사람은 신정동 연쇄살인사건 피해자다.
미제사건전담팀으로 발령이 난 2021년 초, 신정동 사건을 수사하게 된 김 팀장은 일단 사진부터 붙였다. 사건이 잘 안 풀리는 날에도 사진을 보면 각오를 다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실제 이렇게라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막막한 날들이 쭉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첫 예감이 좋았다. "왠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예감은 5년 만에 들어맞았다.

엽기토끼 살인사건? "범인 다른 것 알았다"
서울청 형사기동대는 21일 '신정동 연쇄살인'의 범인을 특정했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20년 만이었다. 범인은 범행 당시 60대였던 건물 관리인 장모씨로 사건이 일어난 건물의 관리인이었다. 장모씨는 2015년 암으로 이미 사망한 뒤였다. 경찰 발표 사흘 뒤인 지난 24일 서울 성북구 종암경찰서에 있는 서울청 형사기동대 사무실에서 김 팀장을 만났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109440005652)
2005년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는 6월과 11월에 여성 두 명이 성폭행 뒤 살해, 유기됐다. 세간엔 '엽기토끼 살인사건'으로 알려졌다. 2015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과 '2006년 신정동 납치 미수 사건'을 동일범 소행으로 추정해 다뤘는데, 납치됐다 범인 윗집으로 도망친 피해자가 "윗집 신발장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증언해서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도 범행이었다. 장모씨는 납치 미수가 일어난 2006년 5월에는 다른 강간치상 범행을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김 팀장은 "수사 기법이라 말할 순 없지만, 범행 정황상 처음부터 두 사건의 범인이 다른 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수사 대상자 23만 명에서 1명까지

연쇄살인 사건은 서울 양천경찰서가 8년간 수사했지만 결국 미제로 남았다가 2016년 미제사건전담팀으로 넘어왔다. 미제사건전담팀은 증거물 재감정을 맡겼고, 2020년엔 2건의 살인 증거물에서 같은 유전자정보(DNA)가 확인됐다. 피의자의 DNA를 확보함과 동시에 2건의 살인이 동일범 소행이란 사실이 확실해진 것이다. 이듬해 초, 이 사건을 맡게 된 김 팀장이 희망을 가진 이유다.
수사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추리고 추려냈지만 수사 대상자가 23만1,897명에 달했다. 김 팀장은 해외 유명 프로파일러들의 자료를 죄다 수집했고, 한국 연쇄살인도 전부 분석해 연쇄살인범의 특징을 추출해냈다. 이를 토대로 유사 수법 전과자, 피해자들의 통신 내역 관련자, 신정동 전·출입자 등을 살펴 명단을 뽑았다. 방대했지만 별 수 없었다. 범인이 어디 숨어 있는지 모르니, 종이 한 장 허투루 넘기기도 겁났다. '한 명 빠뜨리면 그게 범인일 것'이란 생각으로 임했다.

김 팀장은 범인을 찾아 전국 곳곳을 누볐다. 산속에 사는 수사 대상자를 만나러 갔다가 차량이 계곡 급류에 휩쓸리는 아찔한 상황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1,514명의 유전자를 채취해 대조했지만 모두 범인과 불일치했다. '사건이 벌어진 동네에 중국동포(조선족)가 많았다'는 주민 이야기를 듣고, 어렵사리 국제공조 수사를 통해 중국 DNA 데이터베이스도 대조해봤다. 마찬가지로 일치하는 DNA는 없었다.
안갯속 같던 이 시기, 김 팀장은 평일엔 수사를 하고 주말이면 신정동으로 갔다. 그러곤 온종일 동네에 머물렀다. 주민인 척 편한 복장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그곳을 샅샅이 훑었다. 혹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띌까 봐 사비로 중고 경차도 한 대 샀다. 동네에서 밥을 먹고, 차에서 쪽잠을 잤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날들이었다.

이런 노력에도 잡히지 않던 실마리는 용의자가 이미 숨졌을 가능성에 대비해 사망자 56명으로 범위를 확대하며 잡히기 시작했다. 몇 명이 수사 끝에 제외되고, 장씨 차례가 됐을 때 김 팀장은 '이 사람 같다'는 느낌이 왔다고 한다. 다만 장씨는 숨진 뒤 화장돼 유골 확보가 불가능했다. 그가 살았던 지역 병원 40곳을 샅샅이 탐문한 끝에, 검체가 보관된 병원을 겨우 찾았다. 10년 전 사망한 사람의 검체가 남아 있다는 건 천운이었다.
검체는 손톱 절반보다 작은 세포 조직이었다. 결과를 장담할 순 없었지만, 올해 5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그 뒤로 또 잠 못 이루는 밤의 연속이었다. "매일 저녁에 소주를 2병씩 먹었어요. 그리고 (국과수에) 전화해 '(감정) 결과 안 나오면 안 된다'고 호소했죠." 국과수에서도 절박함을 모를 리 없었다. 국내 시약으로 진행한 첫 분석이 실패하자, 국과수 측은 곧장 독일·일본 시약 긴급 구매를 신청했다. 구매에만 8주가 걸렸다.
7월 9일, 2개월 만에 연락이 왔다. 결과는 전화로 알려주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감정서가 나갈 것"이라고만 했다.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어떤 건가요. 1번이에요, 2번이에요." 대답이 돌아왔다. "아시잖아요."
"그때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고요." 지난 20여 년간 울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던 김 팀장은 인터뷰 중에도 눈물을 훔쳤다. 그는 "잠시 뒤에 마저 이야기하겠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DNA가 일치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왔지만 2개월 더 보강수사를 했다. 범행을 재구성하고, 정황 증거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장씨가 일했던 신정동 빌딩 지하를 압수수색해, 시신을 결박하는 데 쓰인 것과 성분이 동일한 노끈을 찾았다. 시신에 묻었던 곰팡이·먼지 성분이 지하 환경과 유사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장씨와 함께 수감된 교도소 재소자 10명을 탐문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장씨가 '사람을 죽여 봤다'고 말하거나,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피해자에 대한 묘사를 했다는 진술까지 확보했다.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수사를 한 건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김 팀장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앞서 김 팀장은 2017년 '초안산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는 2012년 서울 도봉경찰서에 경위로 근무할 당시 집단 성폭행 사실을 인지했고, 신고를 꺼리는 피해자들을 수년간 설득했다. 그사이 다른 경찰서로 발령이 났지만 이 사건을 매듭지으려고 도봉서로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 사건 발생 5년 만에 가해자 22명을 법정으로 보냈다. "내게 포기란 없다"는 게 김 팀장의 신조다.

어렵게 범인을 찾았지만 죗값을 물을 수는 없게 됐다.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은 피의자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종결될 예정이다. 그래도 진실의 가치는 크다고 김 팀장은 말한다.
"답답했을 유가족이 사건의 전말과 범인을 알게 됐으니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되겠지요. 또 다른 의미는 '죽어도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른 살인범, 미제사건 범인들도 지켜보고 있겠죠. 그들에게 저승이라도 쫓아갈 테니 죽고 나서까지 가족들 고생시키지 말고 자수하라고 하고 싶어요."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연체만 없으면 된다? 절반이 900점 넘는 '초고신용시대' 관리법은 다르다 | 한국일보
- 휴대폰으로 어머니 가격해 기절··· 이랬던 최중증 지훈씨가 달라졌다 | 한국일보
- '초코파이 절도 사건' 항소심 무죄…"나도 먹었다" 동료들 증언에 뒤집혀 | 한국일보
- 1세 아이 데리고 고교생 제자와 수차례 호텔 갔던 여성 교사... 무혐의 처리 | 한국일보
- "잘가 나의 슈퍼히어로"... 결혼 앞둔 홍콩 소방관 순직에 추모물결 | 한국일보
- 결국 입 연 '마라톤 성추행 논란' 女선수"극심한 통증... 사과 전혀 없었다" | 한국일보
- 기적을 예언한 과학자, 세계 1등 갈망을 채우다 | 한국일보
- 60대 대리기사 차에 매단 채 1.5㎞ 질주… 결국 숨지게 한 30대 남성 | 한국일보
- 샤넬백 교환 유경옥 "영부인 부탁 받고 검찰서 거짓 진술" 증언 | 한국일보
- 3대 난관 극복해낸 4차 발사… 한뼘 성장한 한국 우주기술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