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어색했던 한국, 이젠 친절하고 안전한 우리 집이죠"

박슬옹 기자 2025. 11. 27. 22:5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2년차 이주민 오세용 씨의 김해살이
부모님 국제결혼으로 12살 입국
예의·친절함에 한국의 온기 느껴
다문화 이주민 위한 정책 홍보 절실
"모르면 물어봐라" 언어 공부 조언
22년째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오세용 씨가 인터뷰가 끝난 후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이 이제 제 집이에요. 하지만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편하지만은 않아요."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나 12살 때 한국으로 입국한 후 22년간 한국에서 살아온 오세용(34) 씨는 자신을 "김해에서 자란 다문화 이주민"이라고 소개했다. 고려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국제결혼을 계기로 한국에 들어와 김해에 정착했다. 지금은 한국 이름까지 얻어, 부모와 여동생·남동생까지 모두 김해에 살고 있다.

■ 오히려 이전보다 더 냉정해진 이주민에 대한 시선

오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김해 주촌초에 전학 온 뒤 임호중, 삼문고를 거쳐 중·고교를 모두 김해에서 마쳤다. 어릴 적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낯선 얼굴도, 언어도 아닌 이름이었다.

그는 "원래 이름은 러시아식 이름이라 발음이 낯설었다. 특이한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놀림을 받는 일이 많았다. 그냥 아이들 장난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상처가 됐다"고 회상했다.

의외로 그에게 언어는 큰 장벽이 아니었다. 그는 "그때 아이들은 지금보다 순수했다.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같이 놀고, 말을 걸어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웠다. 언어 때문에 왕따를 당한다거나, 아예 소통이 안 돼서 힘들다는 생각은 못 해봤다"고 말했다.

진짜 어려움은 성인이 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직장과 일상에서 한국분들이 본인도 모르게 하는 인종차별, 차별 발언이 꽤 많다. 지금도 그렇다. 유교 문화가 강하고 보수적인 사회라는 점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분명 상처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15년, 20년을 비교하면 외국인을 보는 시선이 오히려 나빠진 면도 있다"며 "김해에 외국인이 거의 없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순수하게 '신기하다'는 눈으로 보며 먼저 다가와 주는 느낌이 많았다. 요즘 5~10년 사이에는 외국인 범죄 뉴스가 자주 나오면서 전체를 한꺼번에 묶어 보는 시선이 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특정 국적 범죄를 계기로 모든 외국인을 싸잡아 보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어떤 나라 사람 몇몇이 음주운전, 폭행 사건을 일으키면 그 나라뿐 아니라 '외국인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인식도 생겨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규칙을 지키지 않고, 본국에서 살던 습관 그대로 행동해 주변에 피해를 주는 외국인들 책임도 분명히 있다. 규칙을 안 지키면 안 좋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서로가 그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한민국에 대한 이미지는 '친절하고 치안 좋은 나라'

그럼에도 오씨가 한국을 '집'이라고 부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예의와 친절이었다.

"한국은 예전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지 않나. 제가 보기엔 예의라는 건 결국 '친절'이다. 누구를 붙잡아 길을 물어봐도 대부분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게 정말 좋았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옛 소련 지역은 치안이 많이 안 좋았다. 반면 한국은 밤늦게 다녀도 비교적 안전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치안 강국'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태어난 여동생·남동생이 부럽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동생들은 토종 한국인이니까 제가 어렸을 때 겪었던 어려움은 잘 모른다. 대신 그 아이들은 친구 관계, 공부 스트레스 같은 한국 아이들의 평범한 고민을 겪었다. 서로 겪는 고민의 종류가 다를 뿐,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다문화 가정 위한 정책 많으나 홍보는 부족

오씨 가족이 한국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다문화 정책이 체계적이지도, 정보가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았다.

"우리가 왔을 때는 김해에 귀화 가족이 거의 없었다. 이주민들을 위한 정책이 없었다기보다, 우리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몰랐다. 어딘가로 넘어 넘어 듣긴 했지만 실제로 혜택을 체감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정부가 외국인뿐 아니라 일반 서민을 챙기려는 정책을 이어가는 건 긍정적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다만 다문화 가정을 겨냥한 정책 홍보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문화 인식개선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가장 필요한 건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은 그냥 농담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에겐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미국처럼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교육, 민족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이 한국에도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김해외국인치안센터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김해외국인치안센터에서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문제는 외국인들이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거다.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대사관으로만 달려간다. 치안센터가 있다는 사실만 더 잘 알려져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 언어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 부딪히는 것, 계속 도전해야

오씨는 현재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병원과 노동부 등에서 프리랜서 통역사로 일했다. 한국어·러시아어·영어 3개 국어를 구사하는 그에게 언어는 특기이자 직업이다.

그의 언어 공부 비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언어를 '공부'라고 생각하면 못 한다. '시험 점수'를 목표로 하면 지치기 쉽다. 그냥 친구들, 원어민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신 있게 부딪혀보는 게 더 중요하다. 틀려도 말해 보고, 자꾸 쓰다 보면 저절로 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늙어서 머리가 안 돌아가서 못 배운다'고들 하시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이 보다는 의욕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해에 70대 어르신이 하는 핫도그 집이 있는데, 그 어르신은 포장을 뜻하는 한국식 콩글리쉬인 '테이크아웃'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투고(to go)'라는 정확한 표현을 쓰시더라. 나이가 들었다고 영어, 한국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필요하다면 젊은 세대에게 당당히 물어보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자신처럼 어린 나이에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민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모르면 물어봐라"고 답했다.

그는 "언어 때문에 많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언어 지원이 좋아졌다. 한국어를 마음껏 배울 수 있는 시대다. 귀찮아하지 말고, 너무 부담만 갖지 말고, 일단 한국어를 꼭 배우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어를 못하면 공부 못한다. 애들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친구들을 보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언어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지식은 있는데, 문제를 이해하는 언어 자체가 부담이 되니 자꾸 틀리고, 그러다 자신감이 떨어져 포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등학교 과정까지는 어떻게든 버티지만,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 내용이 훨씬 고차원적이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더 많이 힘들어한다"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언어부터 튼튼히 다지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 사회가 다문화 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갈등도, 불편함도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로 '모르면 묻고, 다르면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만 갖춰진다면 충분히 함께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저에게 김해가 집이 된 것처럼, 뒤따라오는 이주민들에게도 이곳이 '두 번째 고향'이 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Copyright © 경남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