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릿, 귀여울지 말지는 내가 정한다! [뉴트랙 쿨리뷰]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귀엽다'의 사전적 의미는 '모양이나 행동이 앙증맞고 곱살스러워 예쁘고 정겹다'이다. 흔히 어린 아이를 보며 귀엽다고 하듯, 작고 여리면서 또 앙증맞은 존재를 보며 이 표현을 쓴다. 그리고 이 감탄에는 보이지 않는 전제가 깔려 있다. 보호받는 존재라는 은연이다. 귀여움은 분명한 칭찬이지만 이처럼 은근하게 내려보는 시선이 녹아있다.
그래서 막 데뷔한 아이돌 그룹은 귀여운 콘셉트를 자주 택한다. 신인그룹의 경우 대다수 멤버가 미성년자라 나이대에 어울리고, 팬덤 형성에도 유리하며, 태가 어설프더라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의 쿠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귀여우니까 사랑받는다. 그래서 귀여움은 때때로 성장의 완충재로 쓰인다.
그런 의미에서 데뷔 2년 차를 맞은 걸그룹 아일릿이 신보 제목으로 '더 이상 귀엽지 않다'는 뜻의 영문 'NOT CUTE ANYMORE(낫 큐트 애니모어)'를 꺼내든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아직 신인 연차에 미성년 멤버가 두 명(원희, 이로하)이나 있으니 지금도 귀여움 안에 머물러도 충분히 이해와 사랑받을 시기다. 오히려 그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일릿은 그 보호막을 가장 유효한 순간에 걷어냈다.

앨범명과 동명의 타이틀곡 'NOT CUTE ANYMORE' 뮤직비디오에서 그 변화는 더욱 선명하다. 시작부터 'CUTE IS DEAD(귀여움은 죽었다)'라고 적힌 묘비 앞에 서 있는 멤버의 모습으로 메시지를 강렬하게 띄운다. 또 멤버들은 프릴과 리본, 레이스로 대표되던 기존 스타일을 과감히 덜어낸 채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등장하고, 심지어 트레이닝복을 입는다.
뮤직비디오는 안전한 아기자기함 대신 예측 불가한 속도감과 위험한 자유를 그려낸다. 무표정한 멤버들은 카메라를 향해 표정을 내주지 않는다. 감정을 타인이 아닌 '내가 선택한다'는 태도가 바로 무표정에 담긴 의미다.
멤버들은 이 노래에서 외부의 기대에 반응하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서사를 끌고 가는 주체가 된다. 그래서 이 곡은 '더 이상 귀엽지 않겠다'는 뜻이라기보다 '귀여움을 포함한 모든 모습을 내 의지대로 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사운드도 같은 구조를 취한다. 표면적으로는 레게 리듬 기반의 팝이지만, 미니멀한 프로덕션 사이사이에 아기자기한 소스가 은근하게 심겨 있다. 귀여움을 부정하겠다고 말하면서도 귀여움의 잔재를 신경질적으로 삭제하진 않았다. 귀여움을 아예 없앤 게 아니라 선택적 옵션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특히 곡의 구조는 감정을 끌어올렸다가 폭발시키는 대신 적정 온도를 계속 유지한 채 은근하게 밀어붙이는 방식을 택한다. 후렴으로 들어서며 잠시 확장될 듯하다가 다시 단정하게 수축하고, 보컬도 고음을 질러 감정을 과시하기보다 힘을 덜어낸 톤으로 툭툭 말을 던지듯 이어간다. 덕분에 전체 흐름은 차분하지만 멜로디와 리듬의 반복이 피부 아래까지 천천히 파고드는 특유의 세련된 긴장감을 만든다.
가사에서는 "I got Suede on my vinyl / 나의 동화책" "공포영화 좀 볼까?"처럼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취향을 병치한다. 이 같은 방식은 타인의 시선 속 단일한 귀여움이 아닌 겹겹의 취향과 면들을 가진 '진짜 나'를 드러낸다. 동화책을 사랑하면서 록을 듣고, 젤리슈즈를 신으면서 공포영화를 본다는 이채로움은 귀여움과 거친 면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확장을 품는다. "강아지보단 난 느슨한 해파리가 좋아"라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친근하게 반응하도록 길들여진 존재가 아니라, 느슨하고 예측 불가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 역설은 수록곡 'NOT ME(낫 미)'에서 더 확장된다. 자신들을 부르는 수많은 이름을 나열한 뒤 "That's not my name"을 반복해 세상의 라벨링에 정면으로 부딪친다. 그 라벨들이 전부 틀린 말은 아닐지 몰라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귀여움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귀여움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선택할 권리를 되찾는 서사다.

그래서 아일릿은 이번 컴백에서 귀여움을 거부하면서도 결국 자연스럽게 귀여움을 품어낸다. 이것은 콘셉트 실패가 아니라 콘셉트 완성이다. 귀여움을 없애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룹이었다면 진짜 귀엽지 않아졌겠지만, 아일릿은 귀여움을 없애지 않는다. 귀여움을 컨트롤 가능한 정체성 중 하나로 격상하는 방식으로 해체한다. 그 결과 귀여움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하는 미성숙함이 아니라 감정, 태도, 이미지 등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재배치된다. 이번 컴백의 미학은 바로 이 지점, 귀여움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귀여움의 권한을 주체로 되돌리는 방식에 있다.
아일릿에겐 누구보다 더 서둘러 성장해야 했던 결코 쉽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고, 그 과정조차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확장하는 원재료로 삼았다. 그래서 '귀엽지 않다'고 선언한 타이밍은 기막히다. 귀여움의 보호막이 여전히 유효한 순간에, 스스로 그 보호막을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선택으로 아일릿은 더 이상 귀여워야 하는 그룹이 아니라, 귀여울 수도 있는 그룹이 됐다. 귀여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귀여움을 포함한 수많은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는 그룹. 그리고 바로 그 자유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것 중 가장 성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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