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반계리 은행나무로 출근한 화가 "보이는 대로 보는 법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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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 은행나무 앞에서 찍은 인증사진으로 뒤덮인다.
서양화가 최선길(63) 작가는 2019년 11월부터 지금까지 6년간 이 은행나무를 출근하듯 찾아 그의 화폭에 담았다.
그의 반계리 은행나무 그림과 단상이 담긴 그림 에세이다.
올겨울에도 은행나무 앞에 앉아 기꺼이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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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반계리 은행나무 화폭에 담아
"보고 싶은 것 아닌 보이는 대로 그리는 법 배워"

가을이 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 은행나무 앞에서 찍은 인증사진으로 뒤덮인다. 수령 1,300년의 천연기념물, 강원 원주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다. 최근 은행나무를 보러 간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 사람을 한번쯤 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양화가 최선길(63) 작가는 2019년 11월부터 지금까지 6년간 이 은행나무를 출근하듯 찾아 그의 화폭에 담았다.
그의 화폭이 최근 '어느 날, 한 나무를 만났다'로 출간됐다. 그의 반계리 은행나무 그림과 단상이 담긴 그림 에세이다. 24일 전화로 만난 그는 "나무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생각이 익어가는 과정을 겪었다"며 "나무는 인생의 큰 스승"이라고 했다.
최 작가는 2019년 11월, SNS에서 우연히 이 나무 사진을 봤다. 마침 당시 몇 년 전 귀촌한 집(원주 부론면)에서 차로 20~30분 거리였다. 나무는 그가 즐겨 그리는 익숙한 소재였음에도, 마주하고 나니 "긴 시간 이 나무를 그리지 않고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을 잡고 거의 매일같이 나무를 찾았다. 똑같은 나무를 그리는 데도 지겹지 않았다. "5시간을 그리면,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와 흔들림이 고스란히 담긴 다채로운 표정"이 그려졌다. 회화의 시간성이다. 찍은 사진을 보며 그리는 대신 나무 앞에서 현장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다.


1년 뒤, 이렇게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마치고 나무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찾아간 날이었다. "전시회 하느라 보름 만에 다시 갔는데 너무 낯선 거예요. 나무의 형상과 뿜어나오는 기운, 모든 게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기한을 정하지 말고 계속 그려보자 한 거죠."
그게 벌써 6년이 됐다. 나무는 보면 볼수록 새롭다. 사람들 발길이 뚝 끊긴 겨울, 쓸쓸하고 고독하게 서 있는 나무에는 자신이 투영돼 보였다. 또 어느 날 나무 뿌리가 사람이 누워 있는 듯 목신의 형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가 오랜 시간 한 나무를 그리며 배운 건 "보고 싶은 대로(관념)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대로(인상)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2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거든요. '면밀히 관찰해야 된다' '남들이 안 보는 것을 볼 줄 알아야 된다' 이런 화가들의 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게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더라고요. 원하는 그림이 있어서 대상을 나에게 맞춰서 보는 거죠. 그런데 나무를 오래 그리다 보니 깜짝 놀랄 만큼 전혀 생각지 않았던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내 욕심과 기준을 내려놓고 보여지는 대로 본다는 게 나무를 그리기 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죠."
지금껏 그린 은행나무 그림은 200여 점. 작품은 서울 강남구 아트큐브 2R2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천년의 노래: 가을의 서사'에서 볼 수 있다. 나무를 언제까지 그릴 셈이냐고 물었다. 그는 "나무가 자연스럽게 '이제 그만 와라'고 할 때까지 그릴 생각"이라고 답했다. 올겨울에도 은행나무 앞에 앉아 기꺼이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전시는 12월 17일까지.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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