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장했어요!

최지연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교수 2025. 11. 2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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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실습실이 오늘만은 분주하고 시끌벅적한 어느 시골집 앞마당이 되었다. 강의를 듣는 학생도, 강의를 하는 나도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을 앞두고 있어서 약간의 긴장되고 설렜다. 시험도, 발표도, 과제도 아닌 바로 김치 담그기, 즉 김장! 강의를 하며 오늘처럼 흥분되는 감정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기대 이상의 성취감이나 몰입을 잠시 경험할 수는 있지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설렘은 흔치 않다. 나 역시 그랬다. 교수로서 강단에 처음 섰던 순간을 떠올릴 만큼, 어지럽고 들뜬 감정이 고스란히 밀려들었다.

이날 김장은 교양 강좌에서 별도로 마련한 '특별활동'이었다. 말하자면, 참여하고 싶은 사람만 함께하는 과외활동이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보전원의 교원양성대학 환경교육 강좌 개설 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대학에서는 교양, 전공 등 여러 강좌가 운영 중인데, 그중 내가 맡은 교양 강좌는 '비밀의 정원'이다. 이 강의는 학교 캠퍼스 안의 다양한 식물과 곤충을 관찰하며 생태감수성을 높이고, 생태계 구성원의 하나로서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시험 대신 산책을 하고, 보고서를 쓰는 대신 텃밭을 가꾸었다. 김장 활동은 그 연장선에서 우리가 직접 기른 채소로 김치를 담가 보는 시간이었다. 교과서로 읽는 '전통'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 보는 전통인 셈.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표정만 봐도 오늘 수업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학기 동안 우리는 학교 곳곳을 함께 걸었다. 산책하고, 식물을 관찰하고, 곤충과 새, 잡초의 생태를 살피고, 식용 식물과 텃밭 활동까지, 자연을 책이 아니라 몸으로 배웠다. 지난 학기부터는 작은 텃밭(edible garden)을 가꾸었는데, 학생들은 자기 팔을 뻗어 닿을 만큼의 작은 땅을 분양받고 그 안에 자신이 키우고 싶은 작물을 심어 친환경적으로 재배해 보았다. 이번 학기에는 배추, 무, 대파, 쪽파 등 김장 채소 텃밭으로 방향을 잡았다. 개강 후 모종을 심는 시기가 조금 늦어져 우리 배추는 근처 밭에서 잘 자란 배추에 비하면 턱없이 작고 속도 덜 찼다. 그래도 초록빛이 곱게 오른 우리 배추는 약 20포기나 되었다.

그리하여 맞이한 김장 날, 실습대 위에는 비닐이 깔리고 김장 매트가 놓였다. 무채, 각종 채소, 젓갈, 찹쌀풀, 갈아 놓은 과일 등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재료들에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리면서 우리는 한껏 신이 났다. 이 활동은 정규 수업이 아닌 희망자 참여 특별 프로젝트였지만, 수강생 대부분이 기꺼이 함께했다. 지난 학기 수강생도 일부러 김장 구경을 오겠다고 찾아왔다. 그날 강의실에는 어떤 수업보다 높은 집중과 활기가 넘쳤다.

김장 날은 먹을거리가 풍성해야 제맛! 월급이 허락하는 선에서 욕심을 조금 부려 수육을 넉넉히 주문했다. 김치를 버무린 뒤 다 같이 둘러앉아 수육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 속에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온기가 스며 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김장하던 기억을 떠올린 학생도 있었고, 태어나서 처음 김장을 해본다고 웃으며 인증샷을 남기는 학생도 있었다. 그 시간만큼은 교수도, 학생도, 평가도 잠시 잊고 '같이 무언가를 해낸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한 일은 생각해 보면 아주 소박하다.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거둬 김치를 담근 것뿐이다. 그런데도 그 작은 일은 강의실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서로의 손을 빌려 함께 버무린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흙과 햇빛, 땀과 시간이 어우러진 '이야기'가 되었다. 어쩌면 교양 강좌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이런 장면 하나를 학생들의 마음속에 남겨 두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씨앗을 고르고, 흙을 일구고, 물과 햇빛을 가늠해가며 작물이 자라도록 돕는 일은 생명에 대한 책임이다. 작은 텃밭이라도 가꿔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햇빛과 비, 온도를 조절해 주는 자연의 손길에 경외감을 갖게 된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어느새 자신이 생태계의 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돌아보면 교육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이런 작은 경험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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