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새 평화안 들이밀어도…러시아 ‘콧방귀’
트럼프 “이견 몇개 조항만 남았다” 압박에도 러, 협정 거부 시사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마련한 새 평화협정안에 러시아가 반대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러·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논의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지원 조치에 속도를 내고, 미국은 “곧 종전 합의”라며 낙관론을 키우는 방식으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새 평화안으로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긴 역부족일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영국·프랑스 주도로 우크라이나 전후 안전보장을 논의하는 회의체 ‘의지의 연합’은 25일(현지시간) 정상회의 후 성명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노력을 지지한다”면서 “어떤 해법이든 우크라이나가 전면 관여하고,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장기적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지난 23일 스위스 제네바 협상을 거쳐 마련한 새 평화협정안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의지의 연합은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압박 조치를 이어가는 데도 뜻을 모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하고, 미국과 튀르키예가 참여하는 안전보장 실무협의체를 출범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의체에선 유럽이 전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군사지원의 구체적 내용이 논의될 예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 동결자산을 우크라이나에 무이자 ‘배상 대출’하는 방안도 며칠 내로 결론 내릴 것이라고 했다.
다만 유럽 국가들이 종전 후 평화협정을 지탱하기 위해 구상 중인 다국적군 창설은 각국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합의 도출에 난항을 겪어온 문제다. 러시아 동결자산 활용 조치도 러시아의 보복을 우려한 벨기에의 반대로 몇달째 논의가 공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제네바 협상 이후 종전 합의가 임박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날도 SNS 트루스소셜에서 “미국이 초안을 작성한 기존 28개 조항 평화구상은 양측 추가 의견을 넣어 세밀하게 조정됐으며, 이견은 몇개 조항만 남았다”고 밝혔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협상에 임하도록 최대한 압박하기 위한 의도적 수사라고 해석했다. 영토 문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관계 등 핵심 쟁점이 여전히 실무 단계에서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판을 키워 어느 쪽도 협상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전략이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평화구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스티브 윗코프 미 중동특사에게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라고 지시했으며, 동시에 댄 드리스컬 미 육군장관은 우크라이나와 만날 것”이라고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날 새 평화안을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초안에서) 앵커리지 합의의 정신과 문구, 그 안에 담긴 핵심 이해가 지워진다면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정된 평화안이 지난 8월 미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 때 푸틴 대통령이 요구한 내용에서 벗어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결국 종전 협상이 타결될지는 러시아 손에 달렸으며 어떤 수정안이든 러시아 동의를 얻는 것은 현 단계에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고 CNN은 전했다. 영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오리시아 루체비치는 “푸틴은 트럼프를 이용해 시간을 벌고 있다”며 “러시아가 협상에 여전히 참여하고 있다고 믿게 하면서, 미국의 제재 집행을 늦추려는 게 그의 목표”라고 분석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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