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 풀·흙 먹어…도망쳤다고 발바닥 터지도록 맞아”

신심범 기자 2025. 11. 2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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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둠의 터널에서 빼 주십시오.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가면 형을 마치고 나올 수 있지만, 이곳(부산 영화숙·재생원)은 누가 찾아와주지 않으면 영원히 나올 수 없다는 공포감에 두려웠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저희들을 구해주십시오.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들이 눈 감을 때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영화숙·재생원은 1960, 1970년대 부산지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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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숙·재생원 참상 첫 법정증언…피해자들 “억울함 풀어달라”호소

- 정부·부산시 반대신문 않고 청취

“이제는 어둠의 터널에서 빼 주십시오.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가면 형을 마치고 나올 수 있지만, 이곳(부산 영화숙·재생원)은 누가 찾아와주지 않으면 영원히 나올 수 없다는 공포감에 두려웠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저희들을 구해주십시오.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들이 눈 감을 때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부탁입니다.”

26일 부산지법 민사11부 심리로 열린 영화숙 재생원 사건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 변론기일 뒤 피해자와 변호인단이 향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신심범 기자


26일 오전 부산지법 303호 법정. 손석주(62) 부산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장은 “10원이든 100원이든, (국가가) 얼마를 보상하든 만족한다. 진상규명으로 억울함을 푸려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눈물에 젖은 그를 바라보며, 심리를 맡은 민사11부(이호철 부장판사)는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다. 방청석을 채운 피해자들은 소리 죽여 흐느꼈다.

이날 변론기일에는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4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대한민국과 부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원고(피해자) 185명을 대표해 50여 년 전의 참상을 처음으로 법정에서 밝혔다. 부랑아로 몰려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단속된 순간, 도망쳤단 이유로 발바닥이 터지도록 매를 맞아 걷지도 못한 나날, 먹을 것이 없어 풀이든 흙이든 닥치는 대로 입에 넣은 기억들이 울분에 섞여 터져 나왔다. 피고 대한민국과 부산시는 이들 증언에 반대신문하지 않고 묵묵히 청취했다.

1960년대에 영화숙에 감금된 김명식 씨는 온갖 못 먹을 것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고 증언했다.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어 논둑에 입을 댔다고 했다. 근처 낫개해수욕장에서 독을 지닌 복어를 먹곤 생사의 갈림길에 섰는데,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천대받기도 했다. 그는 “휠체어나 들것 없이 발을 질질 끌고 데려갔다. 약도 주사도 못 받았다”며 “사경을 헤매다 돌아왔는데도 영화숙에선 ‘도망했다’며 발바닥을 때렸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가까이 영화숙의 모진 생활을 견뎠다. 사건 공론화 전까진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홀로 감내해 왔다.

증인 이인석 씨는 “어릴 때 잡혀 글자도 못 배웠다는 게 제일 후회스럽다. 가족과도 단절돼 혈육의 정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당시 중구 중앙동에 자리한 ‘연락사무소’에 수용돼 있었다. 단속된 아동들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이 씨는 수많은 아이가 도망쳤으나 머지않아 잡혀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잡혀 온 아이들이 매 맞는 것을 보곤 도저히 도망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증인 장철원 씨는 ‘원산폭격’과 같은 단체 기합을 받는 횟수가 밥 먹는 것보다 많았다고 했다. 그는 “단체기합이 공포스러웠던 건 수용된 사람들이 쓰러지고 심지어는 죽는 모습까지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맞아서 죽은 친구는 실내에서 밤에 오줌을 많이 쌌다는 이유로 그런 일을 당했다. 당하지 않으려 시키는 대로 하게 됐다”고 기억했다.

다음 기일은 다음 달 24일로 예정됐다. 변론기일은 당일 피해자 최후진술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영화숙·재생원은 1960, 1970년대 부산지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월 이곳에 강제 수용된 아동들이 가혹한 인권 유린을 당해온 것으로 확인됐다며 피해자 181명의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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