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은 추위 떨었는데, 장관 오니 난방 켜" 무안공항 유족들 '분노'

강주비 2025. 11. 2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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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부터 난방 요청…“예산 없다” 답만
고령·투병 유족 한파에 ‘생존권 외면’ 호소
26일 국토부 장관 방문 앞두고 난방 가동
“점검 용역 발주 지연 탓…장관 방문과 무관"
사조위 독립 개정안 소위 연기…유족 반발
26일 오후 4시30분께 무안국제공항 1층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합동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들이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방문을 앞두고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한 달여 앞둔 가운데,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공항을 지키고 있는 유가족들이 초겨울 추위 속에 방치돼 온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들은 한 달 가까이 난방 가동을 요구했지만 공항 측은 예산 부담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여 왔고, 정작 국토교통부 장관 방문을 앞둔 전날 밤에야 난방이 가동되자 유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26일 찾은 무안국제공항 2층 유가족 쉘터는 실내임에도 차가운 바람이 문틈 새로 스며들었다. 쉘터 앞 간이 의자와 벤치에는 두터운 겉옷을 껴입은 유족들이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유족들이 잠을 자는 텐트 내부는 이렇다 할 난방기기 없이 냉기를 그대로 마주한 채였다. 이날 만난 유족들은 "밤에 손발이 시려 잠을 이루기 어렵다"며 추위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유족 조미영(52)씨는 "어느 날은 담요를 뒤집어쓴 채 서로 붙어 '덜덜' 떨며 밤을 보냈다"며 "감기에 걸려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버티는 분도 있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은데 건강과 직결된 사안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무안국제공항 2층 쉘터에 상주하는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담요를 두른 채 추위에 떨고 있다. 유가족들은 11월 초부터 난방 가동을 요구했으나, 공항 측은 여건상 어렵다며 응하지 않았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협의회 제공

또 다른 유족 정진경(60)씨도 "11월 초부터 계속 난방을 요청했지만 '여건상 어렵다'는 답만 들었다"며 "텐트 안에도 바람이 들고 발이 시릴 정도라 낮에도 옷을 겹쳐 입고 지낸다. 우리가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게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매뉴얼만 운운하는 건 유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공항 측은 전기장판·손난로 등 용품을 전달했다고 밝혔지만, 유족들은 "그마저도 며칠 전에서야 제공됐다"고 했다.

유족 조병호(67)씨는 “너무 추워 ‘내가 드럼통을 가져와 장작을 피워야 하느나’는 말까지 공항 측에 했다”며 "추워 잠을 설치는 일이 많아 하루 3시간 자면 많이 자는 것이다. 몇몇 유족들은 새벽에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집에 돌아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조씨는 "난방 요청을 하면 '예산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에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6일 오후 4시30분께 무안국제공항을 방문한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유족들의 분노는 전날 밤 극에 달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방문 일정을 하루 앞두고 난방이 갑자기 가동됐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장관이 온다니 난방을 켠 것"이라며 "유족의 기본적인 생활 여건은 뒤로 미루고 장관 눈치만 본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공항 내부 청소·시설 정비 역시 장관 방문 일정과 맞물려 이뤄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족들은 "에스컬레이터 공사로 먼지와 쇳가루가 매일 날리고 바닥에 먼지가 가득 쌓였는데, 그동안 밀걸레로만 바닥을 밀던 공항 측이 전날 청소기계를 돌렸다"며 "2대 중 1대가 고장 나 있던 엘리베이터도 장관 방문 당일 오전에 수리됐다"고 입을 모았다.
26일 오후 4시30분께 무안국제공항 1층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합동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들이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방문을 앞두고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김유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협의회(이하 유가족 협의회)대표는 "공항 내부는 생활 공간이 아니라 웃풍이 심하고 밤이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11월 초부터 피해자 지원단과 공항공사 측에 난방을 요청해도 '28일부터 가능하다'며 미뤘다"며 "상주 유족 상당수가 고령이고 암 투병·투석 중인 분들도 있다. 난방을 미루는 건 최소한의 생존권조차 외면하는 행태"라고 했다. 이어 "전날 밤 난방을 돌린 건 장관 방문을 의식했다는 것 외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12·29여객기참사 피해자 지원단 유가족지원과 관계자는 "공항 측 확인 결과 난방비 부담 때문에 미룬 것이 아니라 법에 따른 연 1회 점검과 세관 청소 등 사전 절차가 필요한데, 최근 국정자원 화재로 이를 위한 용역 발주가 지연된 것"이라며 "장관 방문과 난방 가동 시점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26일 오후 4시30분께 무안국제공항을 방문한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의 반발로 면담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고 있다. 강주비 기자
한편 이날 오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에서 사조위를 독립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항공·철도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 논의가 예정돼 있었으나 연기됐다. 같은날 오후 예정된 김 장관의 유족 면담도 유족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26일 오후 4시30분께 무안국제공항 1층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합동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들이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을 향해 공청회 취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유족들은 김 장관 방문 예정 시간인 오후 4시30분 전부터 분향소 앞에서 '셀프조사 중단', '공청회 강행은 국가 폭력' 등의 피켓을 들고 국회 소위 연기와 12월4일 예정된 공청회 등에 대해 항의했다. 김 장관은 "국토부 장관은 사조위 조사에 개입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취지의 설명만 반복했고, 유족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결국 10여분만에 발길을 돌렸다.
26일 오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협의회가 무안국제공항 1층 합동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조위 독립과 공청회 취소 등을 요구했다. 강주비 기자

유가족 협의회는 김 장관 방문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현 사조위는 국토부 소속 위원들이 국토부의 잘못을 조사하는 '셀프조사' 구조"라며 "공청회를 포함한 모든 절차를 중단하고 개정안 통과 후 사조위를 총리실로 이관한 뒤 재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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