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 부회장 "공대 진학, 억지 구호론 안돼…세상 바꿀 아이디어부터 키우자"

김진원/안시욱 2025. 11. 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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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공계 (2)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공대 키울 '자석같은 생태계' 절실
공학도들이 스타트업 창업 뛰어들면
유니콘 기업 탄생하고 '영웅'도 나와
자연스레 공학에 관심 둘 환경 조성
테크전쟁 시대, 팩트·데이터가 무기
난관 봉착해도 방정식으로 풀면 해결돼
지금은 청년들 영감 줄 콘텐츠 부족
'연구팀의 하루' 등 언론서 취재해보라
공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호기심'
답을 한 번 듣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세 번은 더 물어보는 자세 갖춰야


신학철 LG화학 최고경영자(CEO·부회장)는 LG그룹 최초의 외부 출신 전문 경영인이다. 2019년 부회장에 취임해 LG화학을 배터리·친환경 소재와 바이오 등 첨단 신산업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글로벌 기업인 3M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해외사업총괄 부회장까지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를 썼다. 3M에선 엔지니어로 입사한 뒤 영업·마케팅 등 전혀 다른 업무 현장에서 내공을 쌓았다. 낯선 땅에 홀로 버려진 듯한 어려움도 겪었지만 그를 일으켜 세운 건 팩트와 데이터에 기반한 공학적 사고였다. 신 부회장은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도 방정식으로 만들어 풀어내면 답이 있다”며 “첨단 산업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기업 경영도 공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 없이 제품 특성을 외우는 정도로는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학부장도 대화에 참여했다. 신 부회장은 공학도 출신 창업가를 ‘영웅’으로 대접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솔 기자


▷공대 위기에 대한 우려가 큰데요.

“저 같은 세대의 책임이 큽니다. 우수 인력이 공학 분야로 몰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정부, 기업, 대학 모두 힘을 합쳐 자석 같은 생태계를 조성하면 공대에 오지 말라고 해도 올 거예요.”

▷자석이라는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공학적 관점에서 인재가 모이는 과정은 ‘풀(pool) 프로세스’예요. 가만히 있어도 몰려온다는 의미죠. 반대 개념은 ‘푸시 프로세스’예요. 타인한테 특정 행동을 강요하는 것인데 현재 상황은 아쉽게도 후자에 가까워 보입니다.”

▷유인책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학생들이 왜 공대에 진학하지 않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미래가 불안하다든가, 창업해도 펀딩을 받지 못한다든가, 다른 곳보다 대우가 좋지 못하든가 다양한 이유가 있겠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창업에서 희망을 찾도록 해야 할 텐데요. 그러려면 투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대략 10억원 정도면 스타트업이 창업 후 2~3년 정도를 버틸 수 있어요. 3년이면 사업 수익성 등 존립 이유를 어느 정도 증명할 수 있는 기간이죠.”

▷낭비라는 지적도 있을 텐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1조원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1000개의 아이디어를 확보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정부나 기업이 벌이는 여러 사업 중 1조원짜리도 많아요. 10조원이면 1만 개의 미래를 위한 테스트베드를 구축하는 셈이에요.”

▷정부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네요.

“투자업계와 금융권, 기업도 참여해 자석과 같은 생태계를 조성해야죠. 많은 공학도가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들면 거기에서 유니콘 기업이 나오고, 영웅이 나오는 겁니다. 언론은 이런 사례를 재미있게 다뤄서 초·중·고 학생들이 ‘나도 한번 이 길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영웅이 필요한 시점이군요.

“약간 뚱딴지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지금 한국 사회엔 ‘영웅’이 없습니다. 현시대의 영웅으로부터 젊은이들이 영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해요. 스포츠 선수일 수도 있고, 창업가일 수도 있겠죠. 반도체산업을 일군 이들이 영웅 대접을 받을 필요도 있고요.”

▷중국이 그런 걸 잘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스타트업에서 탄생한 기업인을 영웅으로 대접해줍니다. 우리도 사회 전체에 공학이 존중받는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발적으로 인재가 모일 겁니다. 막무가내로 ‘공대에 진학하라’는 억지 구호는 이제 통하지 않아요.”

▷공대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결정했어요. 그때는 계열별 모집이라 서울대 자연 계열로 입학했죠. 당시만 해도 전자전기공학과, 기계공학과가 날아다닐 때였어요. 대한민국은 고도 성장기에 있었고, 중화학공업 육성에 관한 국가적 목표도 있었지요.”

▷취업도 그쪽으로 생각했을 것 같은데요.

“공대를 나왔으니 산업 현장에 나가서 나라에 기여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처음엔 엔지니어로 첫걸음을 뗐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마케팅 세일즈 부서로 옮겼어요.”

▷당황스럽진 않았나요?

“처음엔 그랬는데 나중엔 공대에서 배운 것이 도움이 되더군요. 3M에 입사했을 때 2년간 기술지원 업무를 맡았습니다.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해주는 역할이었어요. 현장 경험도 있어야 하고, 실제 제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하는 업무였죠.”

▷문제 해결이 중요했겠군요.

“맞아요. 문제가 생긴 부분에서 고객과 함께 호흡하며 해결하는 건 기본적으로 기계공학적인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상품 기획이나 마케팅, 영업도 마찬가지죠. 나아가 경영에서도 공학적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과 같은 테크 전쟁 시대엔 공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중요해요.”

▷경영과 공학 얘기를 조금 더 해주세요.

“공학자 마인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에서 중요한 건 ‘팩트’와 ‘데이터’예요.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적인 팩트가 흔들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동일한 현상을 두고도 열한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럼 어떻게 결론에 도달할 수 있나요.

“데이터에도 공차가 있기에 어느 쪽 데이터를 제시하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대에 처음 입학해 컴퓨터 언어를 배울 때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데이터의 정합성과 적합성을 판단하는 훈련을 받았죠. 이렇게 확립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프로세스를 적용할지도 배웠고요. 같은 데이터가 열 개 있어도 어떤 프로세스를 통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에 도달합니다. 공학도로서 이런 훈련을 4년 내내 반복했지요.”

▷현장 적용은 또 다른 얘기일 텐데요.

“데이터만 따르다 보면 마땅히 돼야 할 일이 실제로는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요. 공학적 관점에서 보면 어딘가 차이점이 있다는 얘기죠. 그 차이를 현실에서 발견하는 것이 공학도의 몫이에요. 데이터 프로세스를 통해 나오는 결론과 시장, 고객이 느끼는 현실을 끊임없이 대비하면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에피소드 하나 들려주세요.

“3M에서 근무할 당시 회사의 재생에너지 사업을 주도했습니다. 태양광·풍력발전에 들어가는 기본 소재를 어떻게 하면 빠르게 개발해서 상업화할지가 관건이었어요. 계획 단계에선 우리가 개발한 제품이 성능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였는데 어쩐 일인지 시장에서 도통 채택이 안 됐어요.”

▷어떻게 해결했나요?

“성능이나 재료 등은 우리 제품이 좋은데, 고객 입장에선 가격 부담이 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공학자적인 마인드에 따르면 우리 제품이 채택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죠. 그런데 이상한 것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공학자적인 사고방식은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방정식으로 만들어 풀이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방정식으로 만들면 결국 이유가 있고 해답이 있기 마련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습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것의 근거가 되는 ‘팩트’와 ‘데이터’가 중요한데 현재 청년들이 수용할 수 있는 팩트와 데이터가 거의 없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언론에서 LG화학 신소재연구팀·차세대배터리연구팀 등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이틀만 따라다녀 보고, 이를 기사화해보세요. 이를 보고 젊은 세대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공학 인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요?

“호기심이죠. 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는 젊은 직원을 만나면 ‘3 WHY’를 떠올리라고 늘 강조합니다. 답을 한 번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꼬리를 물고 세 번 더 물어보라는 의미입니다.”

김진원/안시욱 기자

■ 신학철 부회장은…

△1957년 충북 괴산 출생
△1979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8년 풍산금속공업 입사
△1984년 한국3M 입사
△2017년 3M 글로벌 R&D·전략 및 사업 개발 수석부회장
△2019년~ LG화학 최고경영자(CEO)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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