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의 시간을 건너…‘석류의 빛깔’, ‘더 폴’ 이어 예술영화 흥행 잇나[스경X초점]

시대의 압력 속에 묻혀 있던 영화 ‘석류의 빛깔’이 26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극장 개봉했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감독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마틴 스콜세지가 설립한 세계 영화 프로젝트(World Cinema Project, WCP)의 지원으로 4K로 복원돼 한국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18세기 아르메니아의 음유시인 사야트 노바(Sayat-Nova)의 생애를 다룬 이 작품은 전기 드라마적 재현보다 은유·상징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색과 빛, 소리, 향기 등을 통해 한 예술가의 내면적 세계를 조형적으로 빚어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형식적인 이유로 영화는 1969년 공개 직후부터 소련 당국의 강한 압력에 직면했다. 당시 소련은 영화의 역할을 ‘교육·계몽’으로 규정했지만, 파라자노프는 정지된 이미지와 상징적 구성을 통해 전혀 다른 예술적 표현을 시도했다. 당국은 영화가 시인을 ‘교육적으로 소개하지 않는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작품 전반에 걸친 종교적 이미지 또한 검열의 표적이 됐다.
특히 작품이 아르메니아 민족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점이 결정적인 갈등 요소였다. 소련이 ‘민족들의 연방’을 표방했음에도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민족주의·분리주의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에 극도로 민감했기 때문이다. ‘석류의 빛깔’은 아르메니아 고유의 성화와 역사적 상징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는 소련이 원하는 통합된 국가 이미지와 충돌했다.
이후 당국은 작품에 대해 본격적인 간섭에 나섰다. 원제 ‘사야트 노바’에서 ‘석류의 빛깔’로 제목이 변경됐고, 크레딧에서는 사야트 노바의 이름이 삭제되는 등 정체성을 희석하려는 조치가 이어졌다. 모스크바 국가영화위원회는 배급을 통제하며 해외 유통을 막았고, 결국 소련 감독 세르게이 유트케비치가 재편집한 73분 러시아어 버전이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영화는 여러 형태의 ‘검열 편집본’이 공존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이번 국내 개봉의 핵심은 복원본이다. 스콜세지가 2007년 출범시킨 WCP(World Cinema Project)는 전 세계 영화유산을 보존·복원·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1991)을 포함해 총 70편의 작품이 복원됐다. 이번에 선보이는 ‘석류의 빛깔’은 유트케비치의 73분 버전이 아닌, 원본에 가까운 80분 복원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석류의 빛깔’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시각적 영감을 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국내에서 지난해 개봉해 큰 화제를 모았던 타셈 싱 감독의 ‘더 폴’ 역시 파라자노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 ‘911’ 또한 영화의 장면·구도를 참고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마돈나의 뮤직비디오 ‘베드타임 스토리’ 속 포도를 밟는 장면은 ‘석류의 빛깔’에 대한 직접적 오마주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을 수입·배급한 곳은 영화 ‘더 폴’로 18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예술영화로는 이례적 흥행을 기록한 배급사 오드(AUD)다. 오드는 타셈 싱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 ‘석류의 빛깔’을 이번에 국내에 소개하며 다시 한번 흥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서형우 기자 wnstjr140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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