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맛피아' 권성준 "미슐랭 ★보단 자유…35살엔 은퇴할래요" [설지연의 독설(讀說)]
첫 책 '나폴리 맛피아 시크릿 레시피' 출간
서른 접어들며 돌아본 '요리의 길' 10년

지난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1>에서 '나폴리 맛피아'로 우승을 거머쥔 순간, 권성준 셰프(30)의 이름은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떠올랐다. 꿈 없고 무기력하던 10대를 지나 요리를 만난 뒤, 그의 20대는 쉼 없이 이어진 질주에 가까웠다.
대학의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하고부터 그는 마치 스위치를 켠 듯 요리에 인생을 걸었다. 재학 시절 한식·중식·양식·일식, 제과·제빵, 조주, 커피, 와인, 차까지 10개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이탈리아로 유학해 요리학교 알마(ALMA)와 미슐랭 2·3스타 레스토랑에서 스타지(무급 인턴)를 거치며 기본기를 벼렸다.
귀국 후에는 서울 연희동 버거집의 헤드 셰프이자 총책임자로 운영 전반을 맡아 실전을 익혔고, 드디어 스물여섯. 자신의 식당 '비아 톨레도 파스타 바'를 열어 단기간에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 6개월 만에 문을 닫은 카페 창업 실패조차 그의 속도를 막지 못했다. 그렇게 거침없이 달려온 20대의 끝에서, 그는 결국 '흑백요리사 우승'이라는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리고 서른에 접어든 올해, 그는 자신의 첫 책 <나폴리 맛피아 시크릿 레시피>를 세상에 내놨다. 질주하던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자신의 '인생 요리' 31개를 정리한 에세이 겸 레시피북이다. 화려한 타이틀보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요리와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셰프는, 새로운 10년의 문턱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다. 서울 용산구 '비아 톨레도 파스타 바'에서 그를 만났다.


▶ 책은 처음 써본 건데, 어땠나요?
"짬이 날 때마다 조금씩 썼어요. 비행기 안에서도 쓰고, 이동 중에도 쓰고요. 글 쓰는 게 꽤 재미있더라고요. 사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그래도 매년 한 권씩은 책을 내보고 싶어요. 꼭 레시피북이 아니어도, 그냥 글을 쓰고 싶어졌어요."
▶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군요.
"요즘에는 솔직히 책을 많이 읽지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꽤 많이 읽었어요. 군대에서는 도서관에 있는 건 닥치는 대로 다 읽었죠. 원래 창작하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요리뿐 아니라 뭔가를 만들어내고, 기획하고, 감독하는 일 자체가 재미있어요. 작가 역할에도 관심이 많고요. 언젠가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공중파 서바이벌이나 요리 프로그램 같은 거요. 지금 당장은 제 역량으로 쉽지 않겠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예요."
▶ 책에서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경험을 언급하며, "이야기나 서사를 부여하고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쓰셨던데요. 작가라는 역할이 꽤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캐릭터를 만들고 서사 쌓아나가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올해 고민이 많았어요. 유튜브를 시작할까, 아니면 책을 쓸까.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긴 어렵겠다 싶어서 결국 책을 택했죠. 그런데 막상 써보니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어서, 웬만하면 1년에 한 권씩은 내보자는 목표가 생겼어요.
사실 저는 좀 일찍 은퇴하는 게 목표라, 은퇴 후에는 책을 더 많이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일단은 아무래도 요리책이 기본이 되겠죠. 제가 지금 소설 같은 걸 쓴다고 해도 그게 팔릴 것 같지는 않아서요. 당분간은 요리나 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처럼 제가 잘할 수 있고, 독자들이 관심 가져줄 만한 영역을 중심으로 쓰게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 스스로 만족하는 게 커요. 제가 한 작업에 대해 스스로 떳떳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나 책 썼어'라고 말했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하거든요. 그게 저에게는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 이 책에는 셰프님의 '인생 요리' 레시피 31개가 실려 있습니다. 운영 중인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 실제 사용하는 레시피도 공개했는데, 부담은 없었나요?
"저는 레시피가 그렇게 큰 비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는 메뉴를 자주 바꾸는 편이라서 공개해도 전혀 상관없었고요. 사실 '정확한 레시피'라는 게 저한테는 잘 없어요. 원래 느끼는 대로, 감으로 만드는 편이라서요. 책에는 최대한 정교하게 계량해보려고 했는데, 이탈리아 요리에는 '소금 살짝' 같은 애매한 표현들이 많잖아요. 레시피라는 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셈이죠."

▶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무기력한 사춘기를 보내던 어느 순간 만화의 한 장면처럼 전구가 번쩍이는 경험을 했다"고 쓰셨어요. '요리나 해볼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고, 왠지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요.
"수능이 끝나고 적성고사를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학원에 앉아 있었는데, 솔직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성적도 좋지 않았죠. 어머니가 '이거라도 해보라'고 하셔서 적성고사 준비를 위한 학원에 갔지만, 잘될 리가 없었어요. 저는 학원을 끊어주면 가기 싫어도 일단 앉아는 있는 학생이었어요. 앉아서 잡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요리가 갑자기 딱 떠오른 거예요.
저는 그런 '감'이 좀 좋은 편인 것 같아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 나한테 맞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는 순간이 종종 있고, 그런 선택들이 실제로 잘 풀리는 경우도 많았어요. 요리가 그랬고, 해외에 나가기로 한 결정이나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것, 타투를 하게 된 것도 그렇고요. 그때는 그냥 번쩍 떠올라서 했던 것들이 나중에 돌아보면 끼워서 맞추기 같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운명적인 흐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요리로 진로를 정하고 대학의 호텔조리학과에 들어간 뒤의 노력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조리 관련 자격증은 한식·중식·양식·일식부터 제과·제빵, 조주, 커피, 와인, 차까지 10종 모두 땄다고요. 전부 대학 시절에 취득한 건가요?
"네, 대학생 때 다 딴 거예요. 사실 자격증을 많이 땄다고 해서 특별히 대접받거나, 월급이 올라가거나, 훌륭한 셰프가 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중고등학교 때 허송세월을 너무 많이 보냈다는 자각이 있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게 됐어요. 그래서 목표가 생기면 그 사이사이 생기는 한두 달의 빈틈도 못 견디겠는 거예요. 그 시간에 자격증을 준비해 땄던 거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계속 채찍질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았으니 '이제는 시간을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진 거죠. 이후에는 정말 일, 공부, 요리만 했어요. 친구도 거의 없고, 가족들과도 시간을 많이 못 보냈죠. 클럽 같은 데도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술·담배도 안 하고, 게임도 안 해요. 요리로 길을 정하고 나서부턴 그냥 오로지 여기에만 집중했어요."
▶ 방향과 목표를 정하면 그걸 이루기 위한 전략을 치밀하게 짜는 편 같습니다. <흑백요리사> 출연 당시엔 이 프로그램이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의 '요리판'이라는 얘기를 듣고, <피지컬: 100>을 열 번, 스무 번씩 돌려보며 분석했다고. 예상 미션을 대비해 일종의 '기출문제'를 만들었다면서요?
"말하자면 제작자의 입장에서 좀 생각한달까요? '내가 이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어떤 걸 참고할까, 어떤 미션을 넣을까' 이런 걸 스스로 계속 고민하고 찾아보는 거죠. <피지컬: 100>을 돌려본 건 사실 일부예요. 저는 넷플릭스에 있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거의 다 봤어요. 요리뿐 아니라 일반 서바이벌도 많이 봤고요. 그게 실제로 큰 도움이 됐어요. 서바이벌은 기본적으로 즉흥적인 미션이 계속 주어지잖아요. 그런 상황을 아무 준비 없이 맞는 사람과, 미리 시나리오를 세워놓고 들어가는 사람은 안정감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흑백요리사>를 본 시청자들이 '쟤는 왜 이렇게 침착하지? 왜 불안해하지 않지?' 하고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원래 호들갑을 떠는 성격도 아니지만, 사실은 이미 머릿속에 수많은 상황이 정리돼 있었어요. '제작진이라면 이런 미션을 내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응하겠다' 같은 시뮬레이션이요. 그게 쌓이다 보니 실제 미션에서는 더 안정적으로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다른 분야를 했어도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성향이 '요리'라는 분야와 잘 맞았던 걸까요?
"저는 어떤 일을 했어도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유는 간단해요. 어떤 분야든 100명이 있다고 하면, 그중에서 정말 '목숨 걸고 이 분야에서 꼭 탑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야 열 명일 거예요. 대부분은 그냥 하지, 끝까지 밀어붙이진 않죠. 저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하고, 한번 시작하면 정말 몰입해서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런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든 상위 10%, 그러니까 톱10 안에는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 재능까지 있는 사람은 톱3로 올라가는 거고요. 어떤 분야를 선택했든 이만큼 노력은 했을 테니까, 최소한 상위 10% 안에는 들어갔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 인생의 요리 선생님으로 영국의 스타 셰프 고든 램지를 꼽았습니다. 하루 8시간씩 그의 유튜브와 요리책을 보며 공부했다고. 고든 램지의 어떤 점이 그렇게 끌렸나요? 당대 유명한 다른 셰프들도 있었는데요.
"그 당시엔 스타 셰프가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어요. 거의 영국의 제이미 올리버와 고든 램지의 양강 체제였죠. 제이미 올리버는 좀 더 캐주얼하고 편안한 스타일이었어요. '이렇게 쉽게 하면 돼, 너희도 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 쉽게 접근하는 요리를 보여줬고요. 반면 고든 램지는 엄격하고, 기본을 중시하고, 열정이 넘치는 스타일이었어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강하고 프로다운 태도를 좋아해요. 기본기에 충실하고, 대충 하는 걸 못 참고, 목숨 걸고 완성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요. 어떤 분야든 그런 태도가 멋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원래 '근본'을 중요하게 따지는 편이고, 당시에는 파인다이닝 셰프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든 램지 쪽에 더 끌렸어요."
▶ 일에 대해 '목숨 걸고 해야 한다' '끝까지 가야 한다'는 태도를 갖고 계시잖아요. 그러면 늘 긴장 상태에 놓여 있을 것 같은데, 스트레스는 안 받나요?
"스트레스받죠. 그런데 그게 좋은 거예요. 조금 느슨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없진 않지만, 성향상 잘 안 돼요.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면 스트레스를 더 심하게 받아요. 시간 낭비를 극도로 싫어해서요.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늘 있어요. 고든 램지 영상을 열심히 본 것도 그런 이유예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최소한 램지 영상을 보고 있는 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걸 보면 영어 공부도 되고, 요리 공부도 되거든요. 그렇게 계속 보다 보니 결과적으로도 큰 도움이 됐죠."
▶ 요리사를 꿈꾸는 학생들을 향해 '대학교에서 보낸 4년간의 시간이 굉장히 유효했고, 셰프로서의 길에 큰 자양분이 됐기 때문에 이 방향을 추천하고 싶다'고 썼습니다. 바로 현장에 뛰어들거나 유학을 떠나기보단, 대학의 관련 학과에 진학하는 게 더 좋다고 보나요?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특히 어린 친구들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이런 걸 계속 물어보거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단계라면 요리를 안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정답은 없거든요.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요리는 특히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몸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벅찬데, 돈을 크게 버는 일은 아니고, 사회적 인정을 크게 받는 것도 아니고, 개인 시간도 거의 없어요.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각오와 방향성이 확실하지 않다면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맞죠.
저 개인적으로는 학창 시절을 조리학과에서 보낸 게 도움이 됐어요. 저는 시간 낭비를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이라 대학이라는 체계적인 커리큘럼 안에서 기본기를 단단하게 쌓고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거든요. 덕분에 효율적으로 배웠고, 자격증도 많이 딸 수 있었죠. 하지만 '대학이 답이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메타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대학교에 가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하고 자격증도 따고 경험도 쌓겠다'는 마음이라면 좋은 선택이겠죠. 하지만 '친구 만나고, 술 마시고, 놀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다면, 차라리 바로 현장에서 일부터 시작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결국 개인의 성향과 태도에 따라 선택이 완전히 달라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좋은 요리사가 되려면 칼이 아닌 책부터 잡아야 한다"고 쓰신 대목도 흥미로웠습니다. 매달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해외 요리 서적을 사 모으곤 하셨다고요. 책에서 배운 것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제가 '칼보다 책을 먼저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요리사가 육체노동의 비중이 크다 보니 많은 분이 '스킬만 익히면 된다'고 오해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몸만 움직이고 머리가 비어 있으면, 저는 '칼 잡은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고 이야기해요. 그걸 피하려면 결국 공부해야 합니다.
저에게 특히 도움이 됐던 책은 해럴드 맥기의 <음식과 요리(On Food and Cooking)>였어요. 교과서 같은 책인데, 파인다이닝 셰프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기본서죠. 이 책을 통해 음식이 과학적·화학적 원리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깊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단순히 몸으로 요리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먼저 생각하고 손이 따라가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걸 배웠죠. 실제로 이렇게 요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 요리책은 추천 리스트를 공개했는데, 평소에 다른 책도 읽으시나요?
"제가 추천할 만큼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예전에 군대에서 읽었던 책 중에 <미움받을 용기>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지금도 저는 일종의 '미움받을 용기'를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누군가 요리를 고민한다면 저는 '그런 마음이면 아예 시작하지 말라'고 말해요.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건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하는 척하면서 말하는 사람 자신에게 편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인상 깊었던 책이었죠.
책 취향으로는 추리와 판타지를 좋아해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많이 접해둬야 나중에 제가 창작하거나 새로운 걸 만들 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이탈리아로 1년 반 정도 유학을 다녀오셨는데요. 당시엔 어떤 요리사를 꿈꿨나요? "유명한 셰프가 되고 싶었다"고 쓰기도 했습니다만.
"'유명한 셰프'라기보다는 파인다이닝·미슐랭 셰프들의 정석적인 길을 따라 걷고 싶었어요. 당시 전 세계적으로 '미슐랭', '월드 베스트' 등 랭킹이 크게 주목받던 시기였거든요. 유럽 미슐랭을 한 바퀴 돌고, 남미도 돌고, 여러 나라의 파인다이닝을 경험하는 것이 일종의 셰프의 필수 코스처럼 여겨졌던 때죠. 저도 그런 흐름을 따라가고 싶었고, 나중엔 한국에 돌아와 가게를 차리는 걸 전형적인 경로로 생각했어요. 요리 공부하면서 유튜브로 봤던 스타 셰프님들 대부분도 그런 과정을 밟아왔고요. '그분들처럼 되고 싶다면 그분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저도 세계 각지를 돌며 배우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게 끊겼어요. 더는 세계를 돌며 수련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렸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고민해야 했죠. 일할지, 장사를 할지, 아니면 더 공부해서 해외에 다시 나갈지. 그 세 갈래 길 사이에서 방향을 새로 정해야 했습니다."
▶ 꿈꿔 왔던 고든 램지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려 했지만, 코로나19와 비자 문제 등으로 영국행이 무산되면서 국내에 남게 됐습니다. 이후 서울 연남동의 한 식당에서 헤드 셰프이자 총책임자를 맡으셨죠. 식당 운영 전반에 직접 관여해보니 어땠습니까.
"말씀드렸듯 그때 세 가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직원으로 일할지, 가게를 차릴지, 아니면 공부를 이어가며 해외를 다시 노릴지. 직원으로 일한다고 해도 파인다이닝으로 갈지, 캐주얼한 곳에서 책임 있는 직책을 맡을지 선택해야 했는데요. 석 달가량 일해본 결과, 한국의 파인다이닝 환경은 제 성향과는 조금 맞지 않다고 느껴서, 캐주얼한 업장에서 헤드 셰프로 가게 오픈을 경험해보는 쪽을 택했습니다.
서울 연남동에서 새로 오픈하는 버거집에서 총괄을 맡게 됐는데, 사장님이 요식업 경험이 아예 없으셨어요. 공사 중인 상태에서 들어가다 보니 메뉴 개발부터 직원 채용, 운영 시스템, 개업 준비까지 사실상 모든 걸 제가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많은 분이 저를 사장으로 알 정도였어요. 그 과정이 저한테는 큰 경험이 됐습니다. 빵, 패티, 소스까지 매일 수작업으로 만들고, 파인다이닝에서 배운 방식대로 운영을 꽤 엄격하게 적용했더니 버거집인데도 퀄리티가 높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어요. 가게도 잘됐고요.
약 1년 반 정도 그렇게 운영을 맡다 보니 '아, 나도 이제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가게를 정상 궤도에 올려본 경험이 있었던 만큼, 제 가게를 시작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된 시기였습니다"
▶ 그렇게 2021년 차린 식당이 '비아 톨레도 파스타 바'였습니다. 당시 '철저하게 다른 파스타 바', '요식업 시장의 전망', '소비자 심리 분석' 등을 염두에 두고 개업 전략을 짰다고 했는데요. 전략을 세울 땐 어떤 정보를 참고하고, 어떻게 분석하는지도 궁금합니다.
"특별한 팁이 있다기보다 고찰을 많이 하는 성향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사업에서는 결국 '지피지기(知彼知己)'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뭘 잘하는지는 물론 시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소비자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방향을 잡을 수 있죠. 블로그 리뷰나 캐치테이블 예약 데이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반응을 꾸준히 살펴봤습니다. 요즘 어떤 가게가 왜 주목받는지, 어떤 요소가 소비자에게 힘을 갖는지 흐름을 파악하는 작업이죠. 그런 정보들을 모아놓으면 자연스럽게 시장의 패턴이 보입니다.
그다음엔 내가 무엇을 했을 때 가장 경쟁력이 있을지를 스스로 끝까지 따져봐야죠. 음식 실력만으로는 부족해요. 소비자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갈지, 어떤 콘셉트가 나와 맞는지를 명확히 이해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반대로 이런 고민 없이 '내가 이 음식 잘하니까 이걸로 가게 차리자'는 식이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죠."
▶ 최근 침착맨 유튜브에서 "경제를 움직이기 위해 경제 공부도 한다"고 말씀하셨던데요.
"사회 전반에 관심이 많아서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건 거의 다 챙겨 봅니다. 스마트폰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죠. 구글 검색부터 뉴스, 유튜브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 봅니다. 특히 뉴스나 유튜브는 보통 채널마다 다루고 싶은 주제나 성향이 있는데요, 저는 그런 편향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 코로나19 시기에는 식당이 오히려 잘 됐다가, 펜데믹이 끝나면서 요식업 경기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했습니다. 그때가 셰프님에게도 위기였는데, 마침 <흑백요리사> 출연 기회를 얻게 됐다고요?
"코로나 시기에는 정부가 돈을 많이 풀었고 금리도 떨어졌잖아요. 주식도 크게 올랐는데, 해외로 나갈 수도 없으니 소비가 국내에 집중됐죠. 그러다 보니 파인다이닝처럼 비교적 '사치'로 분류되는 업종들은 오히려 매출이 더 늘었어요. 저도 가게를 운영했지만, '우리나라에 이렇게 돈 많은 사람이 많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런데 2년여 기간이 지나 펜데믹이 끝나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금리가 오르고 실물 경기가 나빠지면서 사람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한 거죠. 코로나 기간 즐기던 일종의 '욜로 소비'가 한순간에 끝나 버렸달까요.
사람들이 돈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줄이는 지출이 식비입니다. 외식비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 여파가 저희 가게에도 바로 체감됐죠. 소비가 눈에 띄게 줄었고, 2023년 무렵이 저한테도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아요."
▶ 그때 식당 문을 닫는 것까지 고민하셨던 건가요?
"그때는 고민했었죠. 예약이 끊긴 건 아니었지만, 아슬아슬했어요. 코로나 때는 예약이 열리면 5초 만에 마감될 정도였는데, 그 무렵엔 천천히 채워지다가 간신히 만석이 되는 정도였으니까요. 이 흐름이라면 '내년쯤엔 다 못 채울 찰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실제로 제가 흑백요리사에 나가지 않았으면 그렇게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랬다면 가게를 접었을지도 모르죠.
다른 길도 실제로 알아봤어요. 흑백요리사 촬영 직전에는 법무사·노무사 같은 전문직 시험을 준비해볼까 싶어 알아보기도 했죠.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흑백요리사> 제작진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 비아 톨레도의 성공 이후 '사업병'이 생겨 카페도 차렸지만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고 했습니다. 이 경험이 <흑백요리사> 성공 이후에도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도록 판단하는 계기가 됐다고.
"저는 실패가 굉장히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젊을 때 작은 실패를 많이 겪어봐야 나중에 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패 경험 없이 처음부터 큰 사업을 벌이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엔 나중에 크게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도 카페를 차려 6개월 만에 문을 닫으면서 뼈아픈 경험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실패가 도움이 됐다고 느껴요. 작게라도 여러 번 넘어져 봐야 어떤 선택이 위험한지 감이 생기거든요. 실패를 두려워하면 결국 얻는 것도 없죠. 제 책의 메시지이기도 해요. '마이 파우라(Mai Paura·두려워하지 말라)'"
▶ <흑백요리사> 우승 이후 1년이 지났는데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좋았던 변화와 반대로 나빠진 점이 있다면요.
"제가 크게 바뀐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고양이랑 지내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고, 혼자 공부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편해요. 그래도 가장 달라진 건 주변 사람들이겠죠. 우승 이후 각 업계의 최정상에 있는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대기업 총수, 유명 연예인, 스포츠 선수, 아이돌 등 평생 만날 일 없을 줄 알았던 분들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죠. 그 과정에서 오히려 겸손을 더 많이 배웠습니다. 만약 그분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주변에서 받는 대접 때문에 제가 뭐라도 된 줄 착각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들만 잇따라 만나고 나니, '나는 우승 한 번 한 사람일 뿐이고, 진짜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겼고요.
나빠진 점은 원래도 밖에 잘 안 나가는 편인데, 이제는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더 나가기 싫어졌어요. 맛집을 가는 것도 시선이 신경 쓰여 잘 못 가요. 일 때문에 외출하는 것 외에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려고 밖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죠."
▶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혼자 공부하고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바빠진 스케줄로 그런 부분이 줄어든 점은 아쉽겠네요.
"그래서 올해, 특히 최근엔 '내가 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어요. 올해 정말 미친 듯이 일만 했거든요. 방송 촬영, 광고, 요리, 책 작업까지 스케줄이 쉴 틈 없이 이어졌어요. 덕분에 수입은 많이 늘었지만, 정작 돈을 써본 기억이 없어요. 친구를 만난 적도 거의 없고, 가족과 여행을 간 적도 없고, 저 혼자 여행을 떠난 적도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이 들었죠.
혼자 일본 같은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조용히 맛있는 걸 먹고, 일 생각 안 하고 쉬어보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스케줄이 계속 있고, 요식업 특성상 가게 운영을 책임져야 하다 보니 완전히 비우기는 어렵죠. 머릿속에서 일을 지우고 '편하게 쉰다'는 게 잘 안되는 구조예요. 결국 당분간은 이런 생활을 이어가야 할 것 같네요."

▶ 건물이나 주택을 사서 1층엔 가게를 운영하고, 위층에서 거주하는 형태를 꿈꿨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드디어 서울 시내에 5층짜리 건물을 매입해 내년에 이전한다고 들었습니다. 새 가게의 콘셉트나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졌나요?
"아직 구체적인 콘셉트는 고민 중입니다. 아마 1·2층을 가게로 사용할 계획이고, 지금보다 규모를 좀 더 키워 약간은 파인(fine)한 레스토랑 형태에 가까운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매장이 다이닝 바 느낌이라면, 새 매장은 보다 레스토랑다운 구조를 갖춘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정통 파인다이닝처럼 너무 무겁게 가고 싶은 건 아닙니다. 제가 지향하는 '어느 정도의 파인'과 편안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보려 합니다. 위치는 신당동이고, 내년 5월 오픈을 목표로 준비 중이에요."
▶ 미슐랭 스타에 대한 욕심도 있으십니까?
"그런 욕심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성향상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미슐랭은 단순히 요리를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각종 행사 참여, 셰프 커뮤니티 활동, 인지도 관리 등 외부 활동과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또 직원도 많이 두어야 하고, 그만큼 투자 규모도 커져야 합니다. 한국의 미슐랭 레스토랑 대부분이 투자를 받아 운영되는 이유도 그런 구조 때문이죠. 저는 그런 방식보다 투자 없이, 제힘으로, 혼자 운영하는 스타일을 선호합니다. 직원을 많이 쓰고 싶지도 않고요. 사람 많은 걸 싫어해서요. 미슐랭 스타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 어떤 식당을 지향하고, 어떤 셰프가 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그런 목표는 없어요. 어떤 요리사가 되고 싶다든가, 어떤 레스토랑을 하고 싶다는 지향점을 정해두진 않았어요. 다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유로움이에요. 그래서 투자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거고요. 자본이 얽히면 결국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움직이기 어렵고, 자유가 제한되니까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가치는 자유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기준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제가 만드는 음식,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저 자신에게 떳떳해야 하고, 직원들 역시 '나는 이곳에서 일한다'고 말할 때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외부에서 주는 '직함'이나 '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싫어요. 그런 것에 기대는 걸 경계하는 편이고요."
▶ 의외네요. 굉장히 성공 지향적이신 것 같으면서도, 막상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까요.
"타이틀을 따는 것이 곧 성공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에 미슐랭이 처음 들어온 게 제가 스무 살 때였는데, 그때부터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10년을 지켜봐 왔거든요. 그런데 미슐랭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실제로 가져가는 수익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명예도 있고, 요리가 예술적인 분야라 그 판단이 맞다, 틀리다 말하기 어렵긴 해요. 하지만 제 기준에선 사업을 하는데 적자가 나면 그건 말이 안 돼요. 오히려 실패한 비즈니스라고 저는 생각해요."
▶ 그렇다면 셰프님이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입니까.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면서 자유도 있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동시에 음식은 인정받아야죠. 저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며 살지 않아요. 항상 저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요. 제가 한 일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남들이 인정해주는지가 성공의 기준은 아닙니다."
▶ 두세 달에 한 번씩 식당의 메뉴를 바꾸고 신메뉴를 개발한다고 했습니다. 창작 과정이 쉽지는 않을 텐데, 막힐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지.
"편하게 살면 결국 정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워야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어요. 메뉴 개발도 마찬가지죠. 힘들어도 계속해야 합니다.
영감은 무조건 '양치기'라고 생각해요. 양을 늘려야 질이 나온다는 거죠. 요리를 많이 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다른 예술 분야의 자극을 많이 받으려고 합니다. 전시회나 음악회를 꾸준히 찾아다니고, 클래식 공연도 좋아해서 가능한 한 많이 보려고 해요. 잘 몰라도 자꾸 집어넣어야 뭐라도 나온다고 믿거든요.
물론 전시회를 본다고 해서 바로 요리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아닙니다. 다만 어떤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작업했는지, 그 시대와 환경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다 보면 그게 내 안에 자연스럽게 쌓이거든요. 그렇게 축적된 경험이 어느 순간 요리로 흘러나옵니다. 요리만 바라보고 있으면 한계가 생겨요. 순수예술처럼 전혀 다른 분야의 창작물을 꾸준히, 많이 넣어줘야 내 몸속에서 그것들이 녹아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죠."
▶ 셰프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언제 '이 직업을 잘 선택했다'고 느끼시나요?
"아예 없어요 그런 건. 솔직히 이 직업은 행복하면 안 돼요. 요리사는 기본적으로 힘든 직업이고, 저는 오히려 내가 힘들면 힘들수록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아져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손님이 제 음식을 맛있게 드셔주시면 만족스럽긴 하죠. 하지만 그건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이에요. 셰프는 힘들어야 해요. 행복할 수가 없어요."
▶ 책에 소개한 메뉴 중 '이건 꼭 한번 만들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요?
"토끼 요리(이스키아식 토끼 파스타·Coniglio all’ischitana)를 꼭 한번 해보셨으면 합니다. 토끼는 나폴리에서 많이 쓰는 재료인데 한국에서는 흔히 접하기 어렵잖아요. 독자들이 이런 식재료를 좀 더 경험해보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토끼 고기는 온라인을 통해 주문할 수 있어요."

▶ 서른이라는 나이에 의미를 많이 두시는 것 같습니다. 워낙 강렬한 20대를 보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책에서도 "출간될 즈음에는 고민을 멈추고 확신을 가진 채 나아가고 있기를 바란다"고 쓰셨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결론은 어느 정도 정리됐나요?
"예전부터 주변에 늘 말해온 게 있어요. '나는 35살에 은퇴할 거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기자=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저는 오히려 늦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는 지난 10년을 정말 미친 듯이 살았거든요. 제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 채 일에만 몰두했고, 그만큼 빠르게 달려왔어요. 이제 앞으로 4년, 그러니까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만 더 집중해서 일하고, 그 이후에는 조금 내려놓고 살고 싶습니다.
제가 말하는 '은퇴'가 요리를 완전히 그만둔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지금처럼 성장 욕구만으로 모든 시간을 쏟아붓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미에 가깝달까요? 35살 이후에는 내 시간도 갖고, 친구도 만나고,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고, 좀 더 '일반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 서른다섯 살까지는 '일상의 행복'이나 '보통의 삶'은 추구하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셰프님이 말하는 '성장'은 어떤 의미인가요?
"적어도 서른다섯 살까지는 제 인생에서 성장만 바라보고 살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고, 목표 역시 성장입니다. 제가 말하는 성장이라는 건, 스스로 만족스러울 때까지 계속 노력하는 과정이에요. 직업이 요리사다 보니 그 표현이 자연스럽게 '요리의 성장'으로 나타나지만, 사실 요리사로서의 성공만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요리사 권성준'보다 '사람 권성준'으로서 성장하는 것을 더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어요. 돈이나 외적인 목표가 아니라, 저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계속 노력하고, 그 과정 끝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그게 제가 추구하는 성장입니다."
▶ 서른다섯 살 정도면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제 생각에 그 이후론 인간이라는 동물 특성상 성장 동력을 내기 쉽지 않다고 봐요. 신체적으로도 분명 꺾이는 순간이 올 것이기 때문에 성장에는 나이의 한계가 있다는 거죠. 인간에게 육체적 나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35살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고요. 그렇다고 그 나이까지 '몇억을 벌겠다' 같은 목표가 있는 건 아닙니다. 금전적인 목표라기보다, 저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고 느끼는 시점을 35살 즈음으로 보고 있는 거죠."
▶ 그렇다면 35살 이후에는 다른 직업을 고민한다든지, 방향을 바꾸는 계획이 있으신가요?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저는 1년이 넘는 장기 계획은 세우지 않는 편입니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만 계획하고, 그 이후는 열어두고 있어요. 그래서 4년 뒤, 35살에 제가 정확히 뭘 하고 있을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아마 레스토랑은 계속하겠지만, 지금처럼 모든 걸 쏟아붓는 방식은 아닐 것 같아요. 조금 내려놓고, 더 여유 있게 운영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책 쓰는 게 그때도 재미있다면 글도 계속 쓸 것 같고요. 지금도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고 있지만, 은퇴 이후에는 더 '선택적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꿈이나 거창한 목표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년 후의 모습을 그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에서 최대한 시간 낭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봐요. 미래에 대한 상상은 때로는 부질없는 망상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래서 제 목표는 단순합니다. 하루하루를 최대치로 충실하게 사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목표입니다."



'설지연의 독설(讀說)'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연재 코너입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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