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기 10시 출근제’…도시 시간표를 다시 짜자 [세상읽기]

한겨레 2025. 11. 26. 07: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김희강 | 고려대 교수(행정학)

매일 아침이 전쟁이다. 아이를 힘들게 깨워 등교 채비를 서두르고, 늦장 부리는 아이의 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부모의 아침은 언제나 진땀 나는 사투다. 아이를 학교 문 앞에 데려다 놓고 다급하게 시계를 확인하며 일터로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본격적인 하루는 시작조차 안 했는데 이미 온몸의 배터리가 방전된 듯한 기분이 든다. 부모와 아이의 삶을 지배해온, 출근 시간과 등교 시간이 충돌하는 이러한 시간표의 엇박자는 결국 수많은 일하는 부모, 특히 여성의 경력 단절과 희생을 대가로 메워져왔다.

이 구조적인 엇박자에 광주광역시가 ‘초등학부모 10시 출근제’라는 의미 있는 해법을 제시했다. 광주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시행한 이 제도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임금 손실 없이 1시간 늦게 출근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단순한 유연근무를 넘어, 임금 삭감 없는 근로 단축이라는 파격적인 지원은 시행 초기부터 현장에서 높은 만족도를 얻었다. 그 혁신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 제도는 내년부터 ‘육아기 10시 출근제’라는 이름으로 정부 국정 과제에 반영되어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광주에서 시작된 이 작은 혁신이, 전국의 부모와 아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 운영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우리는 왜 9시 출근이라는 고정된 시간표에 매여 살게 되었을까? 사회학자 피오나 윌리엄스는 ‘일과 삶의 균형’을 둘러싼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며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질문을 상기시킨다. 삶을 일에 맞추려 노력하기보다, 관점을 달리해보자는 것이다. 즉, 돈 버는 일이 삶의 기준이 되게 두는 대신, 우리의 소중한 삶에 일을 어떻게 조화롭게 맞출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도시의 시간표는 그동안 돌봄과 무관한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에 따라 최적화되어왔다. 9시 정각은 거대한 생산 시스템이 돌아가기에 가장 효율적인 시간이지, 아이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등교를 준비하는 시간은 아니다. 윌리엄스의 관점에서 볼 때, 10시 출근제는 단순한 복지 혜택이 아니라 기존 패러다임의 조용한 전환이다. 돈 버는 일의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보는 사람들 앞에 1시간 멈춰 세워, 돌봄이라는 삶의 중요한 톱니바퀴에 맞추는 사회적 조정을 실행한 것이다.

시간표 전쟁은 이미 1990년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그 무렵 여성들은 ‘도시 시간표’(tempi della città, city times), 즉 시민의 삶을 틀 짓는 행정과 인프라의 시간을 문제 삼았다. 실제 이탈리아에서는 관공서나 은행이 오전 9시에 열었다가 오후 1~2시면 문을 닫거나, 중간에 긴 점심시간을 갖고 일찍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청 민원실이 몇시에 여는지, 버스가 몇시에 끊기는지, 상점이 언제 문을 닫는지, 학교가 몇시에 여는지와 같은 일상의 시간들이 시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가사와 육아로 분주한 시간과 관공서의 짧은 운영 시간이 겹쳐 공적 업무조차 보기 힘들었던 모순된 현실 앞에서, 여성들은 ‘시간에 대한 결정이 곧 가치에 대한 결정’이라는 용기 있는 화두를 던졌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결국 공공기관의 운영 시간을 변화시켰고, 여성의 생활권을 획기적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광주 10시 출근제 역시 이탈리아의 선례와 같은 맥락에서, 돈 버는 일을 기준으로 짜여 있는 도시의 시간표에 돌봄의 시간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려는 시도라 평가할 수 있다. 돌봄은 곧 시간이다. 아이와 교감하며 눈을 맞추며 대화할 수 있는 1시간, 그리고 출근길의 긴장 대신 여유를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가 이 ‘작은 돌봄 혁명’의 본질이다.

우리는 돌봄의 필요를 노동에 맞추기보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반문하며 시작해야 한다. 광주 10시 출근제는 우리의 인생 시간표를 돌봄이 중심이 되는 방식으로 다시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돌봄 시간표의 톱니가 더 커지고, 거대한 도시 시간표의 톱니가 그에 맞춰 조정되는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일과 삶의 균형이다. 광주발 작은 돌봄 혁명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시간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