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스페이스X 있었다면…지금처럼 공대 기피 심각했겠나"

박의명 2025. 11. 2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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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대 출신 CEO에게 듣는다
다시 이공계 (1)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수십만 명의 엔지니어가 삼성전자를 거쳐 갔지만 ‘세계 최초’ 타이틀을 보유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장덕현 삼성전기 최고경영자(CEO·사장)가 그중 한 명이다. 장 사장은 삼성전자 입사 4년 만인 2006년 세계 최초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상용화해 신시장을 개척했고, 2010년엔 세계 최초로 20나노미터(㎚·1㎚=10억분의 1m)급 낸드플래시 양산을 주도했다. 서울대 공대 시절 학점보다는 PC와 로봇 만들기에 시간을 쏟았던 그는 “앞으로 공학도에게는 훨씬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기 수원사업장에서 만난 장 사장은 “40년 전으로 돌아가도 공대에 진학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이뤄진 혁신보다 10배, 100배 많은 혁신이 눈앞에 있다”고 조언했다.

< 공대 중요성 강조한 장덕현 > 장덕현 삼성전기 최고경영자(CEO·사장)가 삼성전기 수원사업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용택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학부장도 대화에 참여했다. 장 사장 앞에 놓인 상자는 그가 삼성전자에서 삼성전기로 옮길 때 전자 직원들이 선물로 준 장 사장 사무실 모형이다. 김범준 기자


▷공대 기피 현상이 심합니다.

“공학은 어려운 학문이에요. 기본적으로 수학과 물리학을 잘해야 하죠. 여기에 전자공학 화학공학 재료공학 기계공학 등을 쌓아야 합니다. 인풋은 엄청 요구되는데 직업의 안정성, 평생 소득이 의사보다 낮다는 인식이 있을 수밖에 없죠.”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의대 선호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의대 경쟁률이 공대보다 높아요. 한국의 문제는 의대를 선호한다기보다 공대를 기피한다는 거예요.”

▷흥미로운 시각입니다.

“원래 성장 단계에 있는 국가에서 공대는 인기가 높습니다. 성장 욕구가 응축돼 있기 때문이죠. 중국과 인도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하지만 사회가 고도화하면 개인의 가치가 커집니다. 그래서 의대를 선호하는 거예요. 문제는 쏠림입니다. 미국도 공대보다 의대를 선호하지만 ‘톱클래스’ 공대는 의대 못지않게 인기가 많습니다.”

▷미국은 왜 그런가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미국 의사 중에서 아는 사람 있습니까. 거의 없을 겁니다. 거꾸로 공대를 졸업한 스타 경영인은 어떤가요. 엄청 많아요. 게다가 이들이 이룬 부는 의사와 비교가 안 됩니다.”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학에 입학할 당시 전자공학이 의학 못지않게 인기였습니다. 의학은 졸업하면 길이 비교적 명확해요. 전자공학은 뚜렷하게 보이는 미래가 없었죠. 그런데 뚜렷하지 않은 그 미래에 더 매력을 느꼈어요. 당시는 PC, 반도체가 막 등장하던 시기라 막연하지만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설렘이 있었어요.”

▷공대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1970~1980년대에는 공대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반도체, 스마트폰을 만들고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는 것이 멋있잖아요. 그런데 지난 20~30년간 우리가 젊은 세대에 가능성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요.

“완전자율주행을 예로 들어볼까요. 20~30년 뒤에는 크게 성장할 시장이라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이 이 산업을 주도하고 있지는 않잖아요. 우주항공, 휴머노이드, 퀀텀컴퓨팅 등 미래 신산업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에 스페이스X가 있다면 우주항공에 청년들의 관심이 왜 없겠어요.”

▷어떤 산업을 키워야 합니까.

“플랫폼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휴대폰이 공학의 집합체였어요. 반도체, 소프트웨어, 디스플레이, 통신 등 모든 기술이 다 들어가 있죠. 앞으로는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우주항공이 ‘플랫폼’이 될 겁니다.”

▷공대생의 역할은 더 커질까요.

“1980년대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첨단 제품은 PC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대기업과 정부에서만 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개인용 책상에 놓이게 된 거죠. 이제 혁신은 끝난 것 아니냐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스마트폰, 전기자동차가 등장하고 인공지능(AI)이 나왔습니다. 기술의 진보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기회가 많다는 말인가요.

“앞으로 5~10년은 지금까지 인류가 이뤄낸 것보다 훨씬 큰 혁신이 나올 겁니다. AI를 데이터센터와 챗GPT로만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인터넷 혁명이 그랬습니다. 인프라를 깔아주는 시스코라는 회사가 있어요. 그 회사 인프라를 기반으로 구글 메타 아마존 넷플릭스가 생겨났습니다. AI가 만들어 낼 응용산업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인터넷 시대에 ‘뉴이코노미’와 ‘올드이코노미’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자동차나 TV 산업을 ‘굴뚝산업’이라고 빗댔지요. 그런데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평가받는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은 ‘뉴이코노미는 없다. 새로운 기술과 올드이코노미만 있을 뿐’이라고 했어요.”

▷구산업에도 기회가 많다는 말이네요.

“우리가 지금 만들어 놓은 산업에 AI가 들어가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됩니다. 자율주행도 자동차산업의 연장이지 않습니까. 우주항공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잘하는 산업에 AI를 덧붙여서 더 고도화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할까요.

“미국과 중국에서는 로보택시가 도로를 누비는데, 한국은 거의 못 다니고 있어요. 미래 기술에 대해 규제를 완화해 줘야 합니다. 규제를 없애면서 양질의 공대 인력을 육성한 게 독일 자동차산업이 성공한 원동력이었어요.”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내부보다 외부의 변화 속도가 빠르면 그 조직은 망가진다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을 ‘국가’와 ‘교육’에 대입해 보세요. 해외 변화가 한국보다 빠르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 대학이 외국 대학보다 변화가 느리면 어떻게 될까요.”

▷구체적으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이 빠르게 성장한 비결은 뭘까요. ‘스피드’입니다. 한국은 ‘디지털 전환’을 세계에서 가장 빨리했습니다. 오픈AI는 챗GPT가 처음 나온 3년 전 직원이 100명도 안 됐는데, 수천 명의 AI엔지니어를 둔 빅테크에 어떻게 맞서는 것일까요. 한 빅테크는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라는 제목의 논문을 2017년에 발표했어요. 그걸 빠르게 상용화한 게 챗GPT입니다. 중국 딥시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이 빅테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MoE(mixture of expert)’라는 개념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한 덕이에요.”

▷한국 특유의 스피드가 많이 줄었습니다.

“20년 전 경쟁사들은 브라운관 TV를 얇게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습니다. 브라운관을 1㎝ 줄이려면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엄청난 기술이 필요해요. 한국은 브라운관을 버리고 LCD(액정표시장치)로 전환해 단번에 두께를 줄이고 글로벌 1위로 올라섰습니다. 한국이 하루빨리 스피드를 회복해야 합니다.”

▷주변 경쟁국은 어떻습니까.

“중국은 AI 전공자만 300만~400만 명이라고 합니다. 30년 전 ‘차이나 스피드’라는 말이 있었죠. ‘여유롭게 천천히’라는 의미였습니다. 지금 차이나 스피드의 의미는 ‘빛의 속도’입니다. 중국이 제품을 만드는 속도는 다른 나라의 두 배 이상입니다. 처음 만들 때는 시원찮죠. 5년 뒤에는 어떨까요.”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를 빨리 현장에 투입해야 합니다. 연구소와 공장에 24시간 불이 꺼져 있더라도 AI를 도입하면 24시간 운영되는 겁니다. 삼성전기가 제조·설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에이전트를 개발하는 것도 연구소를 24시간 돌리기 위해서예요.”

▷일자리가 많이 사라지겠네요.

“아닙니다. 사라질 일자리보다 신기술이 창출할 일자리가 더 많을 거예요.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고 나면 이를 운영할 인력이 필요합니다. 설비를 자동화하면 안전 환경도 더욱 중요해지겠죠. 그런 일로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겁니다.”

▷공학자는 돈을 많이 못 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엔지니어가 부족하던 시절엔 모든 엔지니어가 똑같은 임금·보상체계를 적용받았어요. 이제는 능력만 있다면 동료보다 몇십 배 더 받는 금전적인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흔한 말로 사장보다 많이 받는 직원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래 공학도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저는 40년 전으로 돌아가도 공대에 진학할 겁니다. 할 일이 무궁무진해요. 지금 만들어진 혁신보다 10배, 100배 많은 혁신이 눈앞에 있습니다. 도전적인 사람은 공대로 가야 합니다. 혁신을 통해 국가에 기여하면 사회적 보상이 따를 겁니다. 금전적 부도 젊은 날에 이룰 수 있고요.”

수원=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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